쌀밥은 사랑하는 이를 닮았다
생쌀을 두 어컵 퍼서 밥솥에 옮겨 담는다.
싱크대 속에서 쏴아아-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튀는 물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J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쌀이 담긴 밥솥을 기울이며 꾹꾹 문질러 깨끗이 씻어낸다. 작은 쌀가루, 곡식 껍질들이 물을 타고 씻겨 내려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 외에 내게 흰쌀밥을 지어준 이는 J가 처음이었다. 그런 J의 옆모습이 이질적이면서도 포근하게 느껴져, 한참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니?”
웃음 지으며 내게 묻는 그에게, 괜스레 장난치듯 대답한다.
“그냥, 죽 만들까 봐 걱정돼서.”
흰쌀밥은 왠지 다른 음식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미각을 정신없이 들었다 놨다 하는 시중의 사치스러운 음식들과 다르게, 고요하게 마음속 깊은 곳부터 덥혀주는 느낌.
온갖 가볍고 자극적인 레시피가 판치는 요즈음, 아주 오래전부터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와 우리 곁을 지켜주는 진중하고 책임감 있는 음식이랄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가깝지 않은 상대에게는 쌀밥을 지어 대접하지 않는다. 집에 초대한 낯선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보기에 좋은 화사한 음식, 이를테면 파스타, 카나페, 미디엄웰던의 스테이크를 구워줄지언정, 쌀밥을 내오지는 않는다.
쌀밥은 우리들의 삶이자 일상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의 고유한 정서 속 가장 깊숙이 침투해 있는 주식이기에, 쌀밥은 주로 가족에 버금가는 가까운 이들과 함께 오손도손 지어먹기 마련이다.
쌀을 깨끗이 씻은 뒤, 밥물을 잘 맞춰 짓는다.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서는 정성과 기술이 필요하다. 제대로 쌀을 씻어내지 않으면 밥을 씹다가 곡식 껍질을 삼킬 수도 있고, 밥물의 양이 많거나 모자라면 식감이 질어지거나 거칠어진다.
정성껏 지어 그릇에 곱게 퍼 담은 쌀밥에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갓 지은 밥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면, 유난히 외롭고 공허했던 마음이 채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밥솥에서 김이 치익-소리와 함께 빠져나온다. 수증기와 함께 폴폴 솟아오르는 쌀밥의 내음이 집안 곳곳에 스며든다.
밥그릇 두 개, 수저 두 개.
J의 어머니표 밑반찬 두어 개.
밥이 다 되었다는 알림과 함께, 덜컥- 뚜껑을 열어보면 보이는 눈부시게 하얗고 반질반질한 쌀밥의 외형.
“너 얼마나 먹을지 몰라서, 내 것만 퍼뒀어.”
조용히 내게 밥그릇을 내미는 J.
원래부터 세심한 성격이었던 그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진다.
먹을 만큼, 먹고 싶은 만큼 먹어.
조심스레 건네받은 주걱으로 그가 지은 쌀밥을 퍼 담는다. 김이 가득 피어오르는 쌀밥을 한 숟갈 퍼서 입에 푹 떠 넣으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온기.
꿀떡-삼키면 목뿌리를 타고 내려가 몸을 따끈히 데워주는 그것은, 어느새 가슴 한켠에 따뜻하게 자리 잡아 노곤함을 선사해 준다.
“맛있다, 밥 잘 짓네.”
J에게 살며시 기대며 또 한 숟갈을 입에 갖다 댄다.
화려한 음식이 아니어도 괜찮아,
네가 내게 오직 흰쌀밥만을 지어 먹여준다 해도, 이 따뜻함이 유지되기만 한다면.
언젠가 우리 관계가 오래되어 식은 밥처럼 딱딱해지더라도, 다시 찬찬히 물을 부어 시간을 들여 정성껏 불을 지펴주자. 그럼 언제나, 몇 번이라도 애틋한 흰쌀밥을 먹을 수 있을 거야.
아직 갓 지은 밥의 따스한 내음이 남아있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생각해 본다.
저는 흰쌀밥을 자주 지어먹습니다. 담백한 벼맛이 생생히 느껴질 때까지 꼭꼭 씹어 먹는 것을 특히나 좋아하지요. 따뜻하고 슴슴한 맛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먹을 때에도 밥을 말아먹지 않고 따로 천천히 음미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덕분에 종종 주위에서 특이하게 바라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