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주도우다 (현기영)

by 카마

제주도우다를 읽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20살 즈음에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 느꼈던 먹먹함과 갑갑함이 다시 한번 나의 가슴을 감싸오는 것을 느꼈다. 태백산맥을 읽고, 무엇이 빨치산을 만들었고, 그들이 왜 빨치산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통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비극에 대해 알게 되었었다.

이번에 읽은 ‘제주도우다’를 통해 희미하게 알고 있었지만, 더 알려하지 않았던, 제주도 4.3 항쟁의 비극에 대해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왜 산으로 올라갔고, 얼마나 참혹한 생지옥을 맞게 되었는지, 그 처절함에 대해 알게 되었다.

탐라국이 복속된 이후부터 제주도 거주민이 겪어 오던 탄압과 굴종의 삶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극에 달했고, 조국의 광복 이후 글자 그대로 빛을 회복하여 새 시대의 찬란한 태양과 함께 희망 가득한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했으나, 전례 없는 폭력과 폭압 속에 빨갱이로 몰려 쓰러지고, 죽고, 도망치고, 죽고, 대부분이 죽어 나갔다. 그들의 삶은 송두리째 뿌리까지 뽑히고 제주도민의 10분의 1 이상이 살해당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되던 무자비한 악행과 살생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이 그런 광기를 만들었고, 누가 그러한 미친 짓을 자행하도록 했단 말인가.

작가는 제주도 출신으로 뼛속 깊이 새겨진 집단적 트라우마를 파헤치고, 세상에 낱낱이 드러냈다.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둠이 깃든 현실이 눈에 띄면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몸을 다른 방향으로 뒤튼다. 가슴 아픈 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감정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암흑의 현실과 마주하는 건 너무나도 두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용기를 냈고, 피눈물을 흘려가며 매 순간 치열하게 싸우며 글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소설의 뒷부분을 읽을 때는 그 처절함에 몸서리치며 고통스럽게 페이지를 넘겼다. 글을 읽는 나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작가는 어땠을까, 그들은 얼마나 피눈물 흘렸을 것이며 억장이 무너졌을까.

소설 속 그들의 삶이 거대한 흐름 속에 흘러가는 한 줄기 강물 속 물 한 방울, 한 방울로 보였다가, 불어나는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빗방울들로 보였다가, 거대한 물줄기로 합쳐 보였다가, 작열하는 태양에 불타고 깡그리 말라 버린 희미한 물줄기로도 보였다. 거시와 미시를 넘나드는, 미시를 통해 큰 흐름을 보여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남도를 배경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저변을 흐르는 삶과 역사를 보여주는 소설로 태백산맥이 있다면, 제주도의 근현대사의 피투성이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는 소설로는 ‘제주도우다’가 있다. 우리가 선뜻 보려 하지 않았던 피 묻은 제주 근현대사를 볼 용기가 있다면, 이 소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