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달은도인 Dec 02. 2024

홀로 집에 있는 시간.

월세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나는 37살이던 해의 11월에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다. 두 번의 이사를 거쳐 세 번째 집에 살고 있다. 처음 집은 8평의 행복주택, 두 번째 집은 6평짜리 복층 오피스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13평의 투룸 아파트다. 집도 월세이고 직업도 계약직인 만큼 언제 떠나게 될지 기약할 수 없는 불안정한 주거지만, 나는 마치 그 집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예쁘게 꾸몄다. 재주가 없어서 셀프로 페인팅을 한다거나 벽돌을 붙인다거나 할 만큼의 열성은 아니었지만,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끌어 모아 나의 집을 채웠다. 원목의 책장과 식탁, 흰색 침구, 라탄 방석, 만다라 패브릭, 하얀 광목 커튼과 꽃무늬 시폰 커튼, 초록색 갓의 스탠드, 작은 몬스테라 화분 등 그때그때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오브제들을 나의 집에 헌사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좋아하는 물건들로만 가득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나는 무척 사랑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의 집에서 함께 하는 시간들도 좋았지만 나는 혼자서 보내는 시간들을 더 사랑한다. 잔잔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두고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신다. 맛있는 음식에 맥주를 마시기도 고, 치킨을 먹으며 영화를 보기도 고, 그저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거나 식탁 의자에 앉아 무의미한 시간들을 보내기도 다. 베란다 창문 밖은 여름에는 울창한 초록을, 겨울에는 어지러이 날리는 흰 눈을 보여주었다. 나의 집에서 보내는 사계절을 모두 사랑하지만 여름을 특별히 편애한다. 에어컨을 26도로 틀어 두어도 금방 서늘해지는 아담한 집에서 초록의 풍경을 바라보며 맥주 마시는 시간을 편애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얼음 가득 채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주말의 여름 아침을 편애한다.


나는 단칸방에서 태어났다. 한 개의 방에서 다섯 명의 식구가 이불을 펴고 누우면 방이 꽉 찼다. 열한 살 이후로는 21평의 아파트로 이사 갔으나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기에 나의 방은 없었다. 언니가 결혼한 이후인 24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만의 공간'에 대한 결핍과 집착이 늘 있었다. 내게 있어 '나만의 공간'인 나의 방이나 집은 단순히 방과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보다 훨씬 크다. 나의 집은 곧 나의 우주이고 나의 세계 그 자체이다. 나 그 자체이다. 나의 정신과 마음을 물리적 실체로 구현시켜 놓은 것이 나의 집이랄까. 나의 집에서 지분이 가장 큰 것 세 가지를 꼽자면 책, 차, 찻잔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세 가지 모두 'ㅊ'이라는 자음으로 시작을 하는데 이 세 개의 'ㅊ'은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지향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 나는 언제까지나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언제까지나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탐구하는 탐험가처럼 살고 싶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차.  차나무가 인간에게 선사한 찻잎을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 내 몸과 마음에 담는 삶을 살고 싶다. 물 끓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차의 향기를 맛볼 수 있는 깨어있는 감각을 지니고 살고 싶다. 차의 맛을 사랑할 수 있는 담백하고 순수한 미각을 지니고 살고 싶다. 십 년 이십 년 차가 익어가길 기다리는 인내심을 지니고 싶다. 빈티지의 매력과 깊이를 지닌 차처럼 늙어가고 싶다.


찻잔. 무용하지만 아름답게 살고 싶다. 작지만 우아하게 살고 싶다. 차나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흔한 머그잔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행위를 뛰어넘어 마시는 행위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찻잔처럼 살고 싶다. 무의미에 의미를 불어넣는 삶을 살고 싶다.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꽤 지분이 있는 또 다른 물건들로는 종이(노트)와 만년필이 있다. 나는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아름다운 생의 순간들을 종이에 새기고 싶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방바닥에 엎드려 공책이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내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인간은 생의 초기에 자신이 지닌 순수한 꿈과 열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듯하다. 종이에 끄적이던 어린 소녀는 지금도 종이와 펜을 좋아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노트북이 종이를 대신해 주는 시대가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기는 종이에 만년필로 쓴다. 노트북으로 쓰는 일기는 아직 상상할 수 없다. 가능한 한 오래오래 종이에 만년필로 일기를 쓰고 싶다.


홀로 밤을 보내는 지금. 잔잔한 음악 사이로 시계의 초침이 똑딱이고 연한 노란빛의 조명이 달처럼 은은하게 나를 밝혀준다. 마른 목을 적셔줄 카카오루이보스티 한 잔이 담긴 유리컵. 버건디 컬러의 노트북과 베이비핑크색의 마우스. 모든 것이 나의 취향으로 고른 나의 오브제들이다. 아름다운 나의 박물관, 나의 집이여. 나의 집이 있어 나는 풍요롭고 충만하다. 어느 지역, 어느 학군, 어떤 가격으로 감히 가치를 재단할 수 없는 나의 세계, 나의 나라, 나의 왕국.


집은 나를 보살피고, 나는 집을 보살핀다. 이 얼마나 특별한 인연인가. 무생물이라고 해서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집에 깃들어 있는 영혼에게 속삭여 본다. "나마스떼." 집의 영혼은 어쩌면 전생에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던 나의 연인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이리도 든든하게 지탱해 줄 리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