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500년 아귀의 업이 끝난다.
아귀도의 하루는 인간의 10년에 해당하니, 인간의 세월로는 무려 182만 년.
인류의 역사보다도 길고 아득한 시간이었다.
생전에 지은 죄가 결국 이 길로 이끌었다.
한 숟가락 나누는 것이 아까워 부른 배에 한입 더 우겨넣었고,
재물을 움켜쥔 채 베풀지 않았으며,
남의 손에 쥐어진 재물을 탐했다.
인색함과 탐욕, 그것이 끝없는 허기로 이어졌다.
불길처럼 타는 목구멍은 죄업을 매 순간 상기시켰다.
먹을 수 없는 음식, 삼킬 수 없는 물, 모두 내 업보였다.
허기와 갈증, 불길 같은 고통 속에서 반성이 이어졌다.
업을 뉘우칠 때마다, 지난 생의 탐욕을 자책했고,
목구멍의 불길보다 더 뜨거운 후회를 삼켰다.
참회의 무게가 형벌을 누그러뜨렸으며,
사람들이 올린 작은 공양과 자비의 기도가 죄업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했다.
그래서 내일, 드디어 나는 아귀의 굴레를 벗어난다.
그러나 굴레를 벗어난다 해도 마음은 무겁다.
인간 세상이야말로 더 큰 아귀의 굴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과연 다시 태어나야 할까?
욕망과 집착에 흔들리며 허기보다 깊은 공허 속에 빠져드는 그곳이 진정 해방일 수 있을까?
아귀의 형벌 속에서 바라본 인간 세상은 겉으로는 풍요롭고 밝아 보였다.
식탁은 차고 넘쳤고, 불빛은 화려했다.
그러나 속은 아귀보다 더 공허했다.
아귀는 오직 하나, 배고픔에만 묶여 있지만 인간은 욕망에 옭아매여 몸부림쳤다.
돈 몇 푼을 위해 서로를 속이고,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거짓을 꾸며냈다.
사랑이라 부르는 욕망조차 불안과 집착으로 옥죄었다.
심지어 누군가의 시선 한 번에도 흔들리며, SNS의 ‘좋아요’ 하나에 웃고, 댓글 한 줄에 절망했다.
굶주림 하나에만 매달린 나보다, 그들의 모습이 더 아귀 같았다.
그래서 환생을 망설였지만,
동시에 그들 속에서만 빛나는 따뜻함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백중날 차려진 음식, 제사의 공양, 굶주린 혼을 위로하는 작은 기도.
그 마음 덕분에 불길이 잠시 잦아들었고, 타는 목구멍이 식으며 따뜻한 자비가 느껴졌다.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기도했던 옛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연민은 아귀에게도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아귀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탐욕의 끝을 경계하라는 경고,
죄의 대가 속에서 반성을 배우는 존재,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두려움이 남아 있다.
내일이면 아귀의 삶을 마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겠지만,
과연 인간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 탐욕에 사로잡혀 아귀의 굴레를 되풀이할까?
다음 생에는,
먼저 한 숟가락을 내려놓아 굶주린 이를 제도하리라.
움켜쥔 손을 풀어 재물을 베풀고, 탐욕의 굴레를 끊어내리라.
가진 것에 만족하며, 주위를 둘러 자비의 눈길을 베풀리라.
이것을 굳게 서원한다.
불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홍서원'의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의 구절이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원래 글을 쓰고 난 후에 마치 내 생각을 강요하는것 같아서 사견은 적지 않습니다만,
어쩐일인지 머리에 남고, 가슴에 남는 말이 되어버려 적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사홍서원에 대해 한번만 봐줬으면 하는 마음.
그게 가득하여 설명을 달아봅니다.
사홍서원 (四弘誓願)
대승불교의 근본이 되는 원이며, 모든 보살(菩薩)이 다 함께 일으키는 원이라고 하여 총원(總願)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불교의식 및 법회의 시작에 삼귀의(三歸依:불·법·승 삼보에 돌아가 의지함.)를 하고 마지막으로 사홍서원을 외워 끝을 맺게 된다.
국가 및 종파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외우는 사홍서원은,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중생무변서원도는 중생의 수가 한없이 많지만 모두를 교화하여 생사해탈의 열반(涅槃)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고, 번뇌무진서원단은 다함이 없는 번뇌를 반드시 끊어서 생사를 벗어나겠다는 것이며, 법문무량서원학은 한량없는 법문을 남김없이 배워 마치겠다는 것이며, 불도무상서원성은 위없는 최상의 불도를 마침내 이루겠다는 맹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116-
아쉽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이방인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1부를 마무리 합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방인들이 하고싶은 말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조금 더 가다듬어 나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화 에필로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