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했다.
그다지 힘든 일도 없었는데,
회사라는 공간 자체가 내 체력을 앚아가는 곳인가 보다.
몸도 마음도 건어물처럼 말라비틀어진 채 집에 들어섰는데,
딸아이가 신나게 달려와 내 품에 안기며 말했다.
“아빠, 어제 약속한 보드게임! 빨리 같이 하자!”
사랑스럽지만... 솔직히, 좀 쉬고 싶었다.
“지금 땀냄새 나니까, 일단 씻고 나올게.”
깨끗이 씻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지 그 생각뿐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쇼파에 몸을 던졌다.
역시나, 나오자마자 딸이 보드게임을 들고 다가왔다.
나는 쇼파에 누우며 말했다.
“윽. 아빤 죽었다.”
죽은 듯 눈을 감았다.
그때, 딸아이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빠, 그런 말 하지 마!”
순간 당황했지만, 나도 모르게 장난기가 올라왔다.
장난도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작은 토론은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왜? 아빠 목숨은 아빠 꺼 아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러자 딸이 소리쳤다.
“아니야! 아빠는 내 꺼도 되고, 엄마 꺼도 되고, 오빠 꺼도 돼!
그러니까 아빠는 아빠 꺼면서, 우리 모두 꺼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째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의 말은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작은 철학처럼 들렸다.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내 목숨은 내 것’이라며 스스로의 결정권을 주장하지만,
실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속해 있기도 하다.
아이는 그걸 본능처럼 알고 있었다.
‘아빠는 나의 일부이고, 엄마의 일부이고, 우리 가족의 일부’라고.
그러니 혼자가 아니고, 마음대로 아프거나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그 작은 한마디에 위로받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에.
그래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장난처럼 시작된 대화에 진지하게 남았다.
장난처럼, 아이의 교육을 위해 던졌던 내 말이,
작은 철학자의 외침으로 되돌아왔다.
“아빠는 우리 모두 꺼야.”
아이들은 종종,
어른들이 잊고 있던 말을 대신 꺼내준다.
언뜻 보면 가볍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안엔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