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에 걸렸다.
추석을 앞두고 며칠째 몸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긴 연휴를 앞두고 몸도 마음도 잠시 쉬고 싶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기침과 가슴통증이 시작되더니 열은 순식간에 39도로 올랐다. 근육통에 오한까지 몰려와 누군가 내 살갗을 스치기만 해도 따가웠다. 하루 전엔 아들이 독감으로 응급실에 다녀왔는데, 그 사이 내 몸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병원 수액실에 누워 하얀 천장을 바라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러닝을 못한 지 며칠 째지...?'
러닝을 시작한 지 100일이 지나자, 조금씩 권태가 찾아왔다. 하루가 다르게 쌓이던 기록도, 나를 뒤에서 밀어주던 각종 러닝 장비들의 부추김도 예전 같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의 시원한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며 어쩐지 내 마음도 조금 식어버린 듯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지만 한 번 쉬면 두 번, 세 번은 더 쉬워질 거라는 두려움이 나를 다시 밖으로 내몰았다. 비가 오는 날에도 러닝화를 고쳐 신으며 거리를 달리고 계단을 오르던 나였다. 그러다 아들이 아프고 나도 독감에 걸리면서 5일을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추석을 맞아 고향에서 올라온 남동생과 함께 달리기로 했던 약속은 야속하게도 이어진 비에 미뤄졌고, 그렇게 나의 '미필적 휴식'은 점점 길어져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 몸도 창밖의 날씨도 조금씩 맑아진 어느 날, 나는 다시 러닝화를 신었다. 너무 오래 쉬어서 예전처럼 달릴 수 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거리로 나섰다.
동네 지리를 모르는 동생에게 길잡이가 되어줘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동안 누나가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도 첫 발걸음이 의외로 가벼웠다. 페이스는 전보다 조금 빨라졌고 심박수도 덩달아 조금 더 높이 치솟았지만, 안개 낀 논밭 사이로 스며드는 공기는 나를 부드럽게 감쌌다. 모든 풍경이, 모든 숨이 나를 조용히 반겨주는 것 같았다.
계획에 없던 휴식과 긴 추석 연휴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몸무게와 기록, 루틴...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금세 무너지지 않았다. 달리던 시간도, 멈춰 있던 시간도 결국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멈춘다는 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예고일 뿐이었다. 아직 독감의 여파로 기침이 잦고 체력도 떨어졌지만 나는 또다시 천천히 쌓아가려 한다. 그 느린 속도 안에서도 분명 나의 리듬은 살아 있음을 믿으며 더 단단히, 그리고 더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