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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대 성자 이야기

ㅡ간택 받지 못하는 이유

by 지얼 Dec 28. 2024



오랜만에 중딩 두 명이 학원에 찾아왔다.

이들은 초딩이 때 내가 가르쳤던 여자 아이들이다.


이분들 아님......


미나(가명) 양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얘기를 한다.


미나(가명) : 쌤, (옆에 앉은 친구를 가리키며) 얘 남친 생겼어요!

나 : 남친? 우와. 좋겠다. 언제부터?

은솔(가명) : 한 일주일 됐어요.

미나 : 쌤, 존나 부럽지 않아요?

나 : (존나가 뭐냐, 존나가...) 조금. 근데 어떤 애냐?

은솔 : 좀... 잘 생겼어요.

미나 : 웩.

나 : 잘 생긴 게 뭐가 중요하냐... 성격이 좋아야지.

미나 : 그건 그래요.

나 : 만약에 두 명 중 한 명과 반드시 사귀어야 한다고 치자. 한 명은 차은우처럼 잘 생겼는데 입에 욕을 달고 사는(시바시바, 존나, 개XX 등) 애고, 또 한 명은... 얼굴은 나처럼 생겼는데, 성격도 너무 좋고 게다가 부자야. 그럼 너희들은 누구랑 사귈래?

미나 : 둘 다 안 사귈래요.

나 : 그러면 죽는다고 하면?

미나 : 걍 죽을래요. 아니, 취소요. 차은우랑 사귈래요.

은솔 : 저도요.

나 : 아.. 이 외모지상주의에 쩌든 중딩이들을 어떡하지? 생긴 게 다냐?

미니 : 당근이죠!

은솔 : 제일 중요하죠!

나 : 야. 내가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젊었을 때는 거의 차은우였거든?

미나 : 뻥까지 마세요.

은솔 : 말도 안 돼....


아, 배금주의보다 심각한 외모지상주의여.....



아래의 글은 약 10년 전에 쓴 거다.




카카오 페이의 광고를 보면,


"모바일 결재
 카드번호 입력하고
 CVC번호 확인하고
 보안카드 찾아주고
 플러그인 설치하고
 액티브 X설치하고
 공인인증 설치하고
 인증어를 설치하고
 결재완료 눌렀더니
 ............. 결재 실패

아니, 뭐가 이렇게 복잡해?"


하고 투덜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광고 속의 화자는 나로서는 대단한 인성의 소유자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나는,
시발시발시발시발......
이럴 게 빤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mp3 좀 올리려고 하니 잘 안 된다.
유튜브에서 알려준 대로 하려고 했더니.... 아차, 내 컴은 Mac(매킨토시)이구나.
유튜브의 설명을 보니 맥의 경우는 imovie가 있어야 한단다.
검색해서 찾아보니, 앱스토어로 안내하더니 imovie를 구입하란다. 젠장...

까짓 거 구입하지 뭐, 하고 클릭했더니 Apple ID가 있어야 한단다. 뭐, 하긴 당연하지. 맥 입문 두 달째라(물론 1995년 경에 잠깐 쓴 적은 있지만) 아직 ID 생성도 안 해 놓은 상태. 친구의 것을 중고로 산 거라 그가 설정해 놓은 아이디는 잘 모르겠다(어쩌면 설정했지만 잊어버린 것일지도).
맥에 익숙지 않은 상태에서 계정을 만들려니 나로서는 다소 성가시다. 네이버에 들어가서 우편번호도 검색해야 하고 대문자를 포함한 비번도 만들어야 하고 잊어버린 때를 대비한 질문과 답변도 세 가지나(대체 왜?!!!) 설정해야 하고.... 아, 귀찮아, 귀찮아!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완료한 후 결재를 하려는데... 니미럴, 비번을 두 번 잘못 쳤다고 다시 계정을 만들란다. 투덜거리면서 다시 시도. 
결재하려고 하니 카드 번호와 보안코드를 입력하란다. 카드보안코드? 이게 뭐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이래서 사회 부적응자라는 건가...). 다시 네이버로 들어가 검색해 보니 <지식IN>에 누가 답변하기를, '카드 뒷면에 적혀있는 번호 OOOO OOO'라는 거다. 다시 앱스토어로 와서 입력하니까.... 안 된다. 뭐야,.... 다시 네이버로 가서 보안코드가 뭔지 검색해 보니 다른 이가 답변하기를, 뒷면의 번호 OOOO OOO 중에서 뒤쪽 세 자리 수만 입력하면 된단다. 좀 전에 OOOO OOO라고 답변한, 누군지 모를 그 자식을 향해,
'이런 베리안스키가.......'


어쨌거나 낑낑대면서 겨우 입력 완료.
 imovie를 구매하려고 클릭을 하니까,

젠장, 이 매킨토시발.......


K대(군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인가 이제 막 일병 계급장을 단 나는 최 병장 님과 함께  대대의 작전교육과 소속으로서 야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비문(비밀문서)들 중에는 지뢰가 설치된 지역을 표시해 놓은 문서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그 문서에 명시된 좌표를 읽어주면 최 병장 님은 그걸 듣고 커다란 지도에 지뢰가 매설된 장소를 표시하는 작업이었다. 단 하나라도 누락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마치 전화번호부처럼 빽빽하게 나열된 좌표들을 집중하여 체크해야만 했다. 그런데.... 작업을 개시한 지 두 시간여 흘렀을 즈음, 피곤이 몰려온 나는 그만 깜박 졸고 말았다.  최 병장 님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피곤하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참고 하자."

"네. 죄송합니다."

"자, 어디까지 불러줬지?"

"........."

"왜? 잊어버렸어?"

"죄송합니다. 깜박 졸아서 어디까지 했는지 그만....."

"그래?"


야, 이 씨足놈아!!!


보통의 인간이라면, 특히 K대에서는 이런 반응을 보여야 정상(?)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성자 최 병장 님은 일말의 갈굼이나 불평도 없이 단지 차분하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래?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하자."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천사는 지상에 내려와 사람이 된다. 

글타.

이것은 픽션이 아니다. 믿기지 않지만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배가 고파서 먹을 거 좀 있나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냉장고 쪽으로 시베리안개스키가 다가온다. 종종 냉장고에서 치즈를 꺼내 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걸 기대한 거다.

냉장고 안의 음식들을 뒤적거리는데, 김치통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뚜껑이 열리고 김치들은 바닥에 널브러진다.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냉장고 바로 앞에서 앉은 자세로 혀를 내밀며 헥헥거리는 조건반사적 시베리안개스키처럼, 김치통이 떨어져 김치가 널브러지는 순간,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한마디가 나지막이 튀어나온다.


에이, 시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시베리안개스키가 벌떡 일어나더니 저 멀리 가버리는 것이었다!

시베리안개스키에게 '에이 시발'은 아마도 이런 뜻이었으리라.


저 인간 화났음

경계경보 발령


실제로 견공들은 인간의 말을 몇 가지 정도 알아듣는다. 예컨대 '앉아'나 '엎드려' 같은 명령어나 '산책'이나 '물' 같은 단어들. 반복 학습의 결과다.

'시발' 따위의 말도 마찬가지였겠지.

졸라 반성.... 아니, 반성한다.


중딩이 여학생들에게 욕쟁이 차은우 운운하기 전에, 욕하는 오징어로서의 자신을 돌아봤어야 했다. 성격도 좋고 욕도 안 하며 부자인 나조차도 욕쟁이 차은우에게 밀리는 판에, 성격 까칠하고 육두문자와 욕지거리 애용자인 데다가 심지어는 개털인 내가 간택받을 확률은?

 



그러니 중딩이들아.

너희들도 언젠가는 그 누군가의 와이프가 되겠지.

이 점을 명심하거라.

너희들이 사귀거나 결혼해야 하는 대상은 

차은우가 아니라

거의 성자였던 최 병장 님 같은 남자라는 것을.


이상 꼰대의 변.




https://youtu.be/baaNwRAhHBo?si=yRyBrA52EhR-r2Y3

(여자)아이들 짱!!



사족 :

"욕쟁이 차은우"는 실제로 차은우가 욕쟁이라는 뜻이 아님.

'차은우 같이 잘생겼지만 욕을 존나 잘하는 남자'라는, 함축의 의미임.

그리고,


"욕쟁이 지얼"은 걍 실제로 욕쟁이라는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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