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벽지보다 어려운 것이 바로 필름이었다.
필름이야말로 절대적 심미안을 요하는 분야랄까.
나는 거실의 TV 벽면 쪽과 각 방문을 필름으로 포인트 주기로 했는데 이 위치는 집 전체의 이미지를 결정할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였다.
내가 원하는 느낌은 이랬다.
원목 계열의 누런 우드 Wood 색감은 우선적으로 배제하고 집안 전체를 베이지 톤으로 가되 너무 허옇거나 너무 노랗지 않아야 했다.
따라서 필름은 우드이긴 하지만 오크보다는 진하고 월넛보다는 밝은, 채도가 너무 높지 않으면서 베이지와 그레이 그 사이 어딘가 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대놓고 우드 결을 흉내 낸 옹이 모양 등이 있어서는 안 됐다.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주변인들이 초점 없는 눈으로 애써 웃음을 보이곤 했다.
'뭔 말인진 모르겠지만 잘 됐으면 좋겠다..'
필름을 찾는 긴 여정이 시작되고 샘플북에 붙어있는 한 뼘 크기의 자그마한 샘플에 만족을 못 한 나는 직접 샘플을 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대부분 업체에서 자기네 샘플을 약 A4 정도의 사이즈로 제공해 주고 있었다.
혹시 필요한 분들을 위해 팁을 드리자면 구하고자 하는 업체의 공식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시라. 대다수가 샘플 신청이라는 메뉴가 있고 원하는 샘플 넘버 No. 와 받을 주소를 입력하면 수 일 내로 집으로 배송이 온다.
그렇게 해서 얻은 샘플지를 잔뜩 들고 미팅에 나타난 나를 본 실장의 표정이란..
오늘날 각종 매체 등을 통해 수많은 시공 사례 사진들이 쏟아지지만 알다시피 사진이라는 것은 빛에 따라, 카메라 렌즈에 따라, 각도에 따라서도 색감이 다르게 찍히기 마련이다. 과연 이 중 어떤 게 TRUE 값일까. 비록 A4 사이즈의 샘플을 얻었다만 그 몇십 배에 해당하는 벽 전체를 감았을 때의 느낌은 어떨 것인가.
이 즈음엔 눈을 감아도 필름지가 떠다니고 꿈에서도 필름지를 골랐다. 세 차례의 미팅을 하며 1kg가 또 빠졌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은 분들은 인테리어를 하세요.
이렇게 나의 살을 깎아 바닥과 벽지, 필름까지 끝이 났다.
하지만 아직 안도하기엔 일렀으니. 가구가 남았지 않은가.
바닥재와 벽장재가 얼굴의 바탕이라면 가구 디자인과 색감은 눈 코 입을 그리는 느낌이랄까. 나는 제작 가구로 방 2개에 붙박이장과 드레스룸, 주방 가구 전체를 하기로 했는데 특히나 주방의 레이아웃은 정말이지..
그뿐이 아니다. 체리색 샷시를 대신할 깔끔한 화이트 계열의 필름과 곳곳의 타일들(욕실, 주방, 베란다 등), 방문 손잡이, 욕실 수전과 도기류, 전기 배선, 조명 위치와 전등 스위치 하나까지 모두 골라야 비로소 끝이 나는 것이다.
가구 미팅을 할 때 즈음엔 고질병이던 허리 디스크가 도져 주사를 몇 방 맞고 갔더랬다. 한쪽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힘겹게 사무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실장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