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는 학창 시절을 함께한 영혼의 단짝이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꼭 붙어 다녔다는 절친 애경이모
성인이 된 이모는 서울에서 마트를 하던 아빠 가게의 캐셔로 일하셨는데 그때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자신의 베프인 우리 엄마를 아빠에게 소개해 주셨다.
엄마와 아빠를 이어준 사랑의 큐피드이자 내 어린 시절 앨범 속에 엄마와 가장 많이 웃고 있는 사람. 이모는 진짜 예쁘셨다. 배우 조윤희를 보면 딱 아줌마가 생각날 정도로 청초하고 고우셨던 분.
그분은 엄마의 찬란했던 청춘 그 자체였다
이모에겐 내 남동생보다 한 살 어린 아들 윤준이가 있었다. 눈망울이 사슴처럼 똘망똘망하고 피부가 우유처럼 뽀얗던 아이
엄마들의 우정만큼이나 우리도 그 녀석을 막둥이 친동생처럼 아꼈다. 내 친동생이 친외가 합쳐서 제일 막둥이여서 유독 정을 많이 줬었다. 집이 꽤 멀었는데도 굳이 우리와 같은 미술학원(유치원)에 이모가 손수 운전해서 데려올 정도로 두 집은 마치 한 몸처럼 지냈다.
하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우리 가족이 흩어지면서 그 끈끈했던 인연도 놓치고 말았다. 6년이라는 긴 공백 끝에 내가 6학년이 되어 엄마와 다시 살게 되었을 때도, 어쩐 일인지 윤준이를 다시 만날 기회는 닿지 않았다. 다만 학교에서 꽤나 똑똑해서 소문난 엄친아 우등생이 되었다는 얘기만 스치듯 들렸을 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뜬금없는 이모의 비보가 들려왔다.
그 고우셨던 분이 엄마의 지극정성 수발에도 불구하고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와 홀로 남은 윤준이는 결국 미국에 있는 아빠를 따라 먼 타국으로 떠났다는 소식뿐이었다.
친구를 허망하게 보낸 충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죽음이 엄마를 각성시켰던 걸까
엄마는 그 후로 건강 염려증 환자처럼 검진에 집착하셨고 덕분에 난소에 자리 잡은 혹을 초기에 발견해 1차 수술을 하실 수 있었다. 나는 그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먼저 떠난 친구가 내 몫까지 건강하라며 엄마를 지켜준 것이라고. 나는 이모가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의 수호천사였다고 믿었다.
하지만 운명은 야속했다. 수호천사가 벌어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차 수술 2년 후, 엄마는 난소암 재발 판정을 받으셨고 길고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엄마도 친구의 뒤를 따라 하늘로 떠나셨다.
지금쯤 두 분은 아픔 없는 그곳에서 못다 한 수다를 떨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지금 윤준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미국 어딘가에서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까? 한국에 있던 어린시절 형누나를 기억할까? 내 기억 속 윤준이는 여전히 똘망똘망한 눈으로 누나누나 하면서 나를 올려다보던 꼬마인데 세월은 참 무심하게도 흘렀다.
중학교 때부터 고단했던 엄마의 곁을 지켰던 예쁜 친구 애경이모. 그리고 내 기억 속 영원한 막내 윤준이
연락 끊긴 지 오래지만 문득 그 시절 엄마와 함께 환하게 웃던 아줌마의 미소와 우리 남매를 졸졸 따라다니던 윤준이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윤준아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