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샤파

by 머머씨

국민학교 때 친구들 집에 가면 꼭 기차 모양의 연필깎이가 있었다. 연필을 꽂고 손잡이를 돌리면 드르륵-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매끈하고 뾰족한 연필이 튀어나오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엔 연필깎이 따윈 없었고 대신 아빠가 매번 장롱 위에 올려놓은 접이식 검정색 도루코 칼이 그 역할을 했다.

서걱, 서걱.

밤마다 퇴근한 아빠는 비장하게 칼을 뽑아 들고 신문지를 활짝 펴놓고는 나와 동생의 뭉툭해진 연필들을 깎기 시작하셨다.

기계가 아니다 보니 결과물은 늘 들쑥날쑥


어떤 건 나무를 너무 많이 깎아 심만 길쭉하게 튀어나와 있고 어떤 건 심이 뭉툭해서 글씨 쓰는 맛도 안 났다. 숙제하려고 필통을 열면 그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연필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자.


혹여라도 아빠 퇴근하기 전에 연필심이 전부 부러질까 봐 조마조마하며 아껴 쓰던 그 시절


어딜 봐도 송곳처럼 매끈하게 빠진 친구들 연필이랑 비교돼서 하루는 내가 입이 대빨 나왔다.


"연필깎이 사줘! 이게 뭐야 삐뚤빼뚤하고"


내가 투정을 부리면 아빠는 나무 부스러기가 묻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으셨다.

"손으로 깎아야 공부가 더 잘되는 거야"


지금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귀여운 변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그 늦은 밤, 신문지 앞에서만큼은 세상 진지한 조각가였다.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피곤해 죽겠을 텐데도 검정 흑연 가루를 손에 잔뜩 묻혀가며 내일 딸내미 아들내미 기죽지 말라고 꼼꼼하게 눌러 깎던 그 손길, 기계처럼 매끈하진 않았지만 아빠가 깎아준 연필은 쉽게 부러지지 않았다.

그 못생기고 투박한 연필심으로 나는 꾹꾹 글씨를 눌러쓰며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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