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방 속 편지

지혜에게

by 다정한 지혜씨

편지는 5학년때 극기훈련을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유스호스텔로 가는 버스 안에서 무심코 짐 가방을 열었을 때 당황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가지런한 옷가지와 속옷, 파우치 안에 담겨있는 비상약과 세면도구, 지퍼백 안에 소량의 간식과 물, 그리고 대망의 하얀색 편지봉투를 봤을 때 난 내 가방이 맞는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했다.


극기훈련을 가기 전날 난생처음으로 짐가방이란 것을 싸야 했을 때 난 적잖이 당황했다. 알림장이라고 받아온 회색 갱지에 적혀있는 준비물을 겨우 챙기고 짐가방이라고 할 수 없는 검은색 큰 배낭가방에 모든 걸 다 때려 넣은 뒤 잠을 잤다. 이불 안에서 곤히 잠든 내겐 오직 여행을 앞둔 설레는 마음만이 존재했다. 그때 난 한창 유행했던 s.e.s의 노래에 맞춰 두 명의 친구들과 한 달가량을 춤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고 팀복인 하늘색 치마와 흰색반팔, 양갈래로 땋을 머리끈만이 제일 중요한 준비물이었다. 아무 걱정 없는 나를 보며 언니는 그날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방을 열어본 순간 '언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어린 동생을 한 뼘 더 자라게 해 준 보물 같은 선물이 눈앞에 있었다. 어린 언니가 어린 동생에게 전한 진심이 적힌 편지 안에는 반 친구들과 더불어 담임선생님까지 울릴 정도로 슬픈 내용만이 가득했다. 나를 향한 애정과 마음이 담긴 편지는 결국 사랑의 편지가 되어 극기훈련 내내 우리 반을 모자라 다른 반에까지 돌려졌다. 만약 그 시절 내가 백일장에 글을 투고할 수 있었다면 내 글대신 언니가 쓴 편지를 냈을 것이다. 언니의 편지는 그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됐다. 6학년 수학여행과 중2, 중3, 고등학교 때 각종 여행을 난 언니의 편지와 모든 여행을 함께 다녔다. 학교에서 보내주는 친구들과의 추억보다 난 언니의 편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설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이 끝남과 동시에 언니는 시집을 갔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이별에 난 한동안 방황했던 것 같다. 엄마 같던 언니가 곁을 떠나니 허전함이 상당했다. 그렇게 한동안 편지가 끊겼고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신혼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 오랜만에 언니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수많은 축하편지 속 언니의 글씨체를 발견한 순간 난 또다시 울보가 되고야 말았다. 언니는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내 짧은 생을 응원하고 인정해 주는 긴 장문의 편지를 전했다. 가장 애정하는 사람에게서 꾹꾹 눌러쓴 진심이 담긴 편지를 받을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그 이후 내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 아이가 자라 첫 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때도 언니는 편지를 보내왔다.


'흘러가는 대로 두자,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챙기며 살자, 사랑해 내 동생, 항상 힘이 되어주고픈 언니가.'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줄 언니의 편지가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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