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안다.
옷걸이, 책, 숟가락, 효자손 등이 보이면 숨기기에 바빴다. 지금까지도 남을 약 올리는 것을 즐기는 난 착한 언니도 화를 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평소 천사 같던 언니는 화가 나면 아주 많이 무서웠다. 번뜩이는 눈으로 혼낼 물건을 찾는 언니는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서웠다.
시집을 간 뒤 형부랑 찾아온 언니를 봤을 땐 반갑기는커녕 낯선 기분에 혼란스러웠다. 내가 알던 언니는 그곳에 없었다. 호랑이 같던 언니 눈이 순한 양처럼 변해있는 걸 발견하자 분노가 차올랐다.
언니는 그날 이후 이십 년을 넘게 순한 양으로 살았다. 난 그 사실이 싫었다. 순한 양은 우리 언니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언니가 나타났다. 그제야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 있었다.
몇 해전, 아빠의 생일날 우리 가족은 다 같이 갈빗집에서 모였다. 식사를 든든히 하고 갈빗집 앞 주차장으로 갔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싸움이 난 것이었다. 주차시비로 번진 싸움은 결국 삿대질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호랑이 눈을 가진 언니를 소환했다. 언니는 죽었던 것이 아니라 숨어있던 것이었다.
언니는 아빠에게 삿대질과 고함을 내지르는 여자를 향해 분노를 뱉었다. 반가웠다. 살아서 펄쩍펄쩍 날뛰는 언니를 보니 그제야 내 숨통도 틔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점점 커지는 싸움에 정신이 번쩍 들며 등에 한줄기 땀이 흘렀다.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내가 나설 차례였다. 배가 부른 임산부에게 모질게 대할 어른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던 나는 일부러 등을 더 젖히고 배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죄송하다는 한마디에 모두가 조용해졌고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여전히 사과를 왜 하냐며 씩씩 거리는 언니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신나게 이야기했다.
"우리 언니, 아직 안 죽었네, 살아있었네."
멋쩍은 듯 웃어 보이는 언니가 사랑스러웠다. 물론 형부는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며 고개를 흔들거렸지만, 그 사실 또한 내겐 기쁨으로 다가왔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고 사는 사람이 우리 언니였다.
사실 시집을 가기 전까지 난 언니를 맘 속 깊숙이 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시댁과 시부모가 그리 어려운 대상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집을 가고 나선 알았다. 불편하진 않지만 끝끝내 좁혀지지 않는 어려움이란 상상 그 이상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음 주면 설이 돌아온다. 여전히 언니는 5일을 쉬는데 4일이나 시댁에 묶여있는 신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언니는 양의 눈을 한 호랑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