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발소리
사회생활을 하느라
이별을 하느라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느라
짝사랑했던 언니를 놔버렸다.
언니가 찾아왔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를 많이 원망했다.
유독 가느다란 손목에 감겨있던 보호대 안에 가로로 긁힌 빨간 선들이 보았을 때 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때 나는 내 안의 상처만 들여다보느라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옆을 보지 못한 채 살았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앙상한 모습을 한 채 머리를 짧게 깎고 나타났다.
머리카락을 자른 게 아닌 깎은 듯한 모습에 나와 엄마는 망연자실했다. 분명 우리 언니였지만 우리 언니가 아니었다. 원래 말수가 없던 언니는 그날 이후로도 한동안 고요했다.
친정집에 한달살이를 했을 때에 일화로,
엄마는 언니가 집안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발소리가 나지 않은 인간은 네 언니밖에 없을 거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날 괴롭혔다. 모진 시집살이에 발소리, 숨소리조차 숨기고 살았던 언니의 청춘이 가여웠다. 엄마는 언니가 집으로 돌아간 후 그동안 머물렀던 흔적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고 결국 삶은 제자리를 찾았다. 아이들을 챙기고, 남편과 시댁을 섬기는 언니는 다시 착한 딸과 순종적인 며느리로 돌아왔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사람처럼.
시간이 지나야 만 해결되는 일이 있고 상황이 변해야만 해결되는 일이 있지만 언니의 경우는 둘 다였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내겐 사람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걸음걸이와 신발 바닥에 뭐가 붙어있는지, 눈가와 입가가 묘하게 내려가진 않았는지, 피부상태는 어떤지 살펴보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된 것이다.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언니를 살피다 보면 어느새 언니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그렇게 가끔 보는 언니의 얼굴에서 예전에 못 보던 웃음을 발견할 땐 더없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