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쉽게 넘어버린 대기업의 문턱
3사단 백골부대 전포대장으로 2년 4개월의 군 생활을 마칠 때쯤, 전역예정인 장교들은 취업준비를 한다. 그래서 내 동기들도 이곳저곳 원서를 내고 준비하던 시절에 나는 어학연수의 꿈을 꾸며 여러 어학원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미국은 너무 비싸서 안될 것 같고, 호주나 캐나다가 좋을 것 같은데 호주는 인종차별이 좀 있다고 하니 캐나다가 낫겠지? 근데 한국인들이 너무 많다고 하는데? 뉴질랜드가 좋을까? 한 번도 해외를 나가보지 않았던 나는 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2년간 알차게 모은 돈으로 1년간의 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 신이 났다. 마치 미드 속 한 장면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내 모습을 그리며 인생 첫 해외여행이자 어학연수를 갈 생각과 곧 석 달만 있으면 전역이라는 사실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열심히 어학원 사이트를 보고 있는데, 제일 친한 동기인 치훈이가 내 방으로 훅 들어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 어깨를 잡고 흔들며, "동운아! 나 GS리테일 지원할 건데 너도 같이 쓰자"라고 했다.
어학연수 준비하는 거 알면서 왜 저러나 싶어서 "거기가 뭐 하는 덴데? 근데 나 어학연수 갈 건데?"라고 했더니, "야야 회사 지원하면 대대장님이 면접 볼 때 휴가 준다 아이가" 울산 토박이인 치훈이는 경상도 특유의 억양으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기 혼자 면접 보러 가면 심심하니까 나 외에도 다른 동기들 2명을 설득 중이었다. 딱히 회사를 다닐 마음도, 그 회사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지만 대대장님이 휴가 보내준다는 사실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그렇게 나는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모를 그곳의 입사지원서를 쓰고 있었다. 치훈이는 처음부터 자기 목표는 유통회사라면서 이랜드와 GS리테일 두 곳을 지원할 거라고 했고, 치훈이의 등쌀에 못 이겨 나도 두 회사 모두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회사 모두 서류 합격을 하게 되었고, 치훈이는 두 곳 모두 면접을 갔지만 나는 GS리테일 면접밖에 갈 수 없었다. 치훈이는 보직이 관측장교라 눈치 볼 게 없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전포대장(소대장)이다보니 부대 운영을 제치고 두 번이나 나가는 게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봉이 GS리테일이 더 높았고, 어차피 회사를 다닐 생각은 없었던 터라 그냥 이랜드 면접은 포기했다
-1차 면접 당일-
기분 좋게 보너스 휴가를 받고 부대를 벗어 서울로 오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면접 가기 전에 GS리테일이 뭐 하는 곳이고 어떤 업무를 하는지 인터넷으로 대충 훑어보고 나왔지만 그래도 대기업이라고 하는 큰 회사에 면접을 간다고 하니 살짝 긴장이 됐고, 뭘 물어볼지도 모르는데 뭘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라 정말 막무가내 정신으로 갔던 것 같다. 짧디 짧은 머리에 젤을 슥슥 바르고, 백화점에 가서 산 생애 첫 정장과 피부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늘색 파스텔톤에 펄까지 박힌 촌스러운 넥타이를 매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조별로 방을 배정해 주고 면접 전에 토론 면접 준비 시간을 15분가량 주었다. 토론면접? 나는 그냥 면접이라고 알고 왔지, 토론면접이 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던 터라 옆에 있던 지원자에게 조심스럽게 "이거 토론 면접도 보는 거였어요?"라고 물으니 그 지원자는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그렇죠"라고 답했다. 뭐 한심하게 볼 수 있긴 한데 저렇게 티를 내야 하나 싶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토론 주제는 봉투에 동봉된 채로 각 조에게 나누어졌고, 우리 조 주제는 "길거리 금연"과 관련된 주제였다. 지금이야 길에서 담배를 피우면 벌금을 내지만 그 당시엔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어차피 토론 주제는 미리 알려주지 않는 거니까 미리 준비할 수도 없는 거고,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 중 하나가 토론이었고 평소에도 어디 가서 말발로는 뒤지지 않는 터라 별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15분가량 해당 주제에 대해 의견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누가 찬성을 하고 반대를 할지 정하기로 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길거리 금연엔 반대하는 입장을 선택했다. 어차피 의견 두세 번 주고받으면 끝날 건데 상대방이 어떤 의견을 낼지 예상하면 거기에 대응하는 게 더 쉽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를 선택했다.
총 5명이 들어가는데 찬성 2, 반대 2 그리고 사회자 1명으로 구성되었다. 아까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 그 지원자가 본인이 사회자가 되고 싶다고 나섰고, 다른 지원자들도 사회자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그 지원자가 워낙 강력하게 어필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 순간 "사회자를 하면 뭔가 이득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나름의 소심한 복수랄까? 그 지원자에게 한 마디 건넸다. "근데 사회자는 자기 의견 내면 안되는 거 알죠? 의견 종합만 해주시고 찬반 의견 내시면 안 됩니다" 그 순간 그 지원자 표정이 어두워진 걸 보고 이 친구가 사회자 역할도 하고 찬반 의견도 낼 생각이었구나 라는걸 알 수 있었다.
토론 면접은 나의 독무대였다. 예상대로 찬성 의견 측에서 간접흡연에 대한 얘기를 꺼냈고, 나는 간접흡연으로 인한 암 발생률 증가는 밀폐된 공간, 즉 가정에서의 사례이고 개방된 길거리에서 짧은 순간 맡은 담배 연기로 암 발생률 증가된 사례는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그런 연구가 있는지 확인된 건 아니지만 없을 것이라고 나름 확신했다. 그래서 간접흡연으로 인한 암 발생 증가로 개인의 흡연권을 국가에서 법으로 제재를 가하는 건 무리한 처사이고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피해가 실질적으로 더 크니 자동차 10부제를 도입하는 게 더 시급할 것이다라고 반박을 했다. 그러자 찬성 측에서 다시 "일본에서는 어떤 보행자가 흡연을 하면서 가다가 뒤에 오는 어린아이의 눈을 지져서 실명하게 한 사례가 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 지원자는 그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나름 신선한 의견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건 하나의 사고입니다. 골목길에서 차 사고 나면 거기에 횡단보도 설치해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그 당시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였던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언급했다. 길을 가던 두 여학생이 미군 탱크에 깔려 목숨을 잃은 큰 사고였고 그 여파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대두되었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안타깝고 끔찍한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논란인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고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게 맞을까요?"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찬성 측에선 내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토론 면접이 끝나고 1분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사실 1분 자기소개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갔던 터라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자신을 팥빙수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이력들을 나열하면서 열심히 1분을 꽉 채워서 자기소개를 했지만 내 자기소개는 20초도 되지 않아 끝났다. 말 그대로 그냥 가장 베이식하고 특색 없이 짧고 얇게 자기소개를 끝냈다. 아마 내가 1차 면접을 붙은 이유는 토론면접과 자소서 기반의 질문들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자소서였지만 잔머리가 좀 발달된 나는 이 자소서를 읽고 나에게 질문을 던질만한 미끼를 좀 던져놓았다. 그리고 면접관은 그 미끼를 제대로 물어서 나에게 질문을 했기 때문에 막힘없이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었다. 가령 그 당시 회사 CEO가 미스터 도넛이라는 일본 도넛 브랜드 라이센스를 사서 한국에 오픈을 했다는 기사를 봤었다. 어차피 회사 기사라는 게 회사에서 기자에게 돈 주고 써달라고 하는 형태일 게 뻔했고, 그 말은 즉슨 회사에서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라는 걸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스터 도넛을 직접 가서 사 먹어 보진 않았지만, 검색을 통해서 어떤 맛이고 어떤 모양과 가격인지, 어느 지점이 있는지를 대충 파악하고 갔다. 그 미스터 도넛이라는 키워드를 보자 면접관은 "미스터 도넛은 서울에도 지점이 몇 개 없는데 어떻게 먹어 보셨나 보네요?"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네! 제가 휴가 나오면 신촌에 있는 친구 집에 머무는데, 친구가 어느 날 홍대에 있는 새로 생긴 도넛 브랜드인데 맛있다면서 사다 줘서 먹어봤습니다. 저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만 먹어보았는데 미스터 도넛은 심하게 달지 않고 쫀득한 식감이 떡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너무 맛있어서 그 이후로 즐겨 먹는 디저트가 되었습니다"
단 한 번도 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했던 그 도넛을 마치 최애 디저트라고 상상하며, 자신 있게 말하는 나의 뻔뻔함에 나도 놀랐다. 나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살아왔는데, 내가 거짓말에 상당한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나 보다. 나 같은 사람이 사기꾼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랄까.
어찌 되었건 면접은 너무나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파스텔톤의 촌스런 넥타이와, 목욕탕에 비치된 젤을 듬뿍 바른 번질거리는 스포츠머리, 돋보기 수준의 안경을 써서 눈이 콩알만 한 매력 없는 나는 1차 합격을 할 수 있었다. 26세의 내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보면 확연히 그 차이가 느껴지듯 당신의 나는 외모로 누군가에게 호감을 주는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에 면접에서는 확실하게 실력으로 통과하지 않았을까?
아무런 준비 없이 1차 면접을 통과해 버렸고, 그 덕에 2차 면접 때 다시 한번 서울로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입맛 없다고 안 먹는다고 하더니 막상 음식 앞에서 한 점 두 점 주워 먹는 밉상처럼, 다닐 생각도 없는 회사였는데 1차를 붙고 나니 내심 기분은 좋았다. 나를 꼬신 치훈이도 다행히 붙었는데 다른 2명은 불합격 통보를 받아서, 치훈이는 동기들 앞에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하회탈 얼굴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누가 봐도 신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치훈이는 이것저것 기출문제들을 검색하며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나는 부대 관리를 해야 했기에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건 핑계고, 성격상 꽂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터라 붙고 싶기는 한데 막상 준비하는 건 귀찮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2차 면접장을 향했다.
-2차 면접 당일-
역시나 자기소개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고, 1차 면접 때 했던 것 그대로 20초 컷으로 끝냈다. 확실히 2차 면접은 좀 다른 느낌이었던 게, 1차를 붙은 지원자들이어서 그런지 말도 잘하고 나름대로의 준비를 잘해 온 느낌이 들었다. 나는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힘을 주며 미소를 유지하며 다른 지원자가 말을 할 때 고개를 살짝 돌려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연기를 했다. 어차피 앞에 있는 면접관들은 내가 답변할 때만 나를 보는 게 아니라 계속 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생각해 낸 전략이었다. 지금에서야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 되었지만 그 당시 다른 지원자들은 그런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2차 면접 때 나의 모습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정말 형편없는 답변을 했는데 그 답변이 형편없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많은 준비를 하고 정말 붙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면 내 답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았을 거고 그때부터 멘탈이 흔들렸을 수도 있는데, 때로는 무식한 게 용감해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팀장급으로 구성된 1차 면접과는 달리 임원 면접에 5명 중 3번 째로 가장 가운데에 앉아 있다 보니 묘한 중압감을 느꼈다.
GS리테일 여러 계열사 중 편의점 사업부에 지원했기 때문에 GS25 편의점과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비교한 질문을 받았다. 사실 너무나 나올 수밖에 없는 필수 질문이었지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나에겐 나의 밑천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편의점이 편의점이지 무슨 차이점이 있겠나 싶었던 나였기에 도통 그 짧은 순간에 적절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당시 신촌에는 형제갈비 건물 부근에 굉장히 큰 세븐일레븐 매장이 있었고 친구 자취방 부근에 10평 안팎의 동네 구멍가게 같은 규모의 GS25가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븐일레븐은 규모도 크고 매장도 깔끔한데 GS25는 동네 구멍가게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내가 당시에 느낀 그대로 대답을 한 거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저렇게 답변을 하고도 붙은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 말을 들은 임원들 표정은 썩 좋지 않았고, 그 질문을 했던 임원은 혼잣말로 "뭐, 세븐이 정식 규격에 맞춰 출점하는 경향은 있지..."라고 중얼거리며 다른 지원자로 질문이 넘어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다른 임원은 "나안이 어떻게 되나?"라고 물어서 "네?.... 아! 제가 시력은 정확히 모르지만 마이너스 시력입니다"라고 답변을 했다. 대체 회사 면접에서 시력을 왜 물어보는지, 그리고 굳이 나안이라고 물어보는지 갸우뚱했지만 있는 그대로 답변을 했고 내 답변을 들은 임원은 "모르는 게 너무 많네" 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임원은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답변을 할 때 고개를 조금씩 돌려가며 아이컨택을 하면서 말을 했는데, 저 사람은 나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어차피 불합격 줄 거고 그럴 바엔 그냥 나도 패스해야지 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4명의 임원 중 3명만 아이컨택을 하면서 진행했다. 2개의 답변을 엉망으로 날려버렸지만 나머지 3개의 답변은 나름 완벽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나는 자소서를 쓸 때 미끼를 좀 여러 개 던져놓은 상태였는데 임원면접에서 그 미끼를 2개나 물어주는 덕에 그 2개를 완벽히 답할 수 있었다. 통상 자소서 기반의 질문은 일종의 현장검증 같은 것이기에 그런 유형의 질문에서 당황하면 자소서 자체의 진실성을 의심받게 되지만 잘 넘기게 되면 자소서 내용이 사실이라는 효과를 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우선 내가 고등학생 시절 학교 부근 GS25를 이용하면서 진심 어린 서비스를 느꼈고, 매장도 너무 쾌적했다 등의 내용을 자소서에 적었는데 이를 본 임원은 "광주에는 GS25가 아직 몇 개 없는데, 고등학생 때 자주 이용했나 보네요?"라고 물었다. "네, 광주에는 미니스톱과 세븐일레븐이 주로 있고 GS25는 많이 없지만 마침 저희 학교 부근에 있어 자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사실 그 편의점은 GS25가 아니라 세븐일레븐이었다. 자소서에 MSG를 좀 첨가했고, 그걸 물어볼 수 있기 때문에 면접 가기 전 그곳은 세븐이 아닌 GS25 다라고 아예 뇌리에 박아버렸다. 거짓말도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진실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진실인 것처럼 말을 했다. 어차피 그 임원이 거기가 세븐인지 GS25 인지 바로 확인할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다른 임원은 "초등학교 때 향교를 다녔다고 되어 있네요? 요즘 학생들은 이런데 잘 안 가는데 어떻게 향교를 다니게 됐어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는 몰라도 한자는 알아야 한다는 교육 방침으로 한자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시키셨다. 그래서 방학 때 향교라고 하는 훈장님이 한문을 가르치는 곳으로 가서 한문을 배웠는데, 사실 여기서 MSG가 살짝 들어간 부분은 바로 예절교육이다. 그곳은 한문만 가르쳤지 예절교육은 가르치지 않았는데 향교와 훈장님이란 이미지에 예절교육이 붙어도 이질감이 없을 것 같아 어려서부터 예절교육을 받았다는 내용을 썼었다. "어머니께서 예절교육을 중시하셔서 어려서부터 향교를 다니며 한자와 예절 교육을 받았습니다"라고 이번에도 뻔뻔하게 지어낸 이야기를 진실처럼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 임원은 "어쩐지 예의가 바르더라" 라며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셨다. 내 전략이 정확히 먹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4명의 임원 중 가장 높은 부사장님이 갑자기 중국어로 질문을 했고, 너무나 기본적인 수준의 중국어였기에 바로 중국어로 답변을 했는데 흡족해하시면서 "군생활 하면서도 중국어 공부는 꾸준히 했나 보네"라고 말씀하셨다. 중문과 전공자에게 그런 질문은 너무나 쉬운 난이도였지만, 아마 그 부사장님이 그 당시 중국어를 공부하고 계신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질문이라기보다 자기 중국어 실력 뽐내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게 3개의 질문에서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싶었지만 나머지 지원자들도 막힘없이 답변을 잘했던 터라 합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마지막에 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느낀 점을 물어봤을 때의 답변이 그분들께 좀 인상적이지 않았나 싶다. 통상 면접관들은 준비해 온 정답 같은 답변을 싫어하는데 나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날 것 그대로를 보여줬었고, 그 답변 또한 소대장으로서 병사들과 하나 되어라는 예상가능한 답변이 아닌 답을 내놓았다.
"저는 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제가 리더십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80명이 되는 병사들을 똑같은 눈으로 바라봐야 하지만 더 마음이 가는 병사가 있고 마음이 덜 가는 병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리더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리더가 어떤 심정으로 조직을 이끄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조직에서 최고의 팔로워로써 리더를 도와주는 팔로우쉽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을 했을 때 묘하게 흡족해하는 표정을 보면 아마 내가 합격한 이유는 저 답변이 킥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정말로 나는 군 복무를 하면서 리더십이 부족한 사람이고, 리더의 자리에 있다는 게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리더의 깜냥은 안되지만 최고의 조력자로서 리더를 도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면접은 끝이 났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다행히 치훈이도 합격했고, 나머지 2명의 동기들도 다른 회사에 합격해서 전역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한 군생활을 하며 전역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학연수를 너무 가고 싶었지만, 어학연수는 회사를 다니다가 갈 수도 있는 거니까라는 이유로 미루게 되었다. 사실 부모님이 그렇게까지 좋아하실 줄은 몰랐는데, 합격 소식을 전해드리자 거의 울먹이며 너무 좋아하시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니 입사를 포기하고 어학연수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합격 통보를 받은 후 나는 아직 군대에 있었지만 회사에서 집으로 보내준 화분을 보며 부모님은 아들이 대견하다고 느끼셨다고 한다. 효도라는 게 뭐 별거인가. 부모님이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어학연수야 뭐 회사 다니다가 안 맞으면 나와서 가고 되는 거니까! 그리고 26살의 어린 나이에 큰 회사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 순간 어학연수는 하늘 위의 구름처럼 흩어져버리고, 군인에서 회사원으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세계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해외에 나가있던 유학생들이 대거 한국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생겼고 그 순간 나는 어학연수를 가지 않고 회사를 가길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지만 얼떨결에 대기업에 문턱을 넘어서게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운오리새끼로 찍혀 갈굼과 핍박을 받으며 회사 생활을 하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었다.
처절하게 참고 버티며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되기까지, 스물여섯의 치열했던 회사 생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