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신입 연수 과정을 마치고 동기들은 각 점포에 배치되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선 처음 1년가량 직영점에서 근무를 하다가 1년 후에 GS25 가맹점을 관리하는 OFC라고 하는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엔 GS25 직영 점포에서 근무를 하면서 편의점 운영과 관련된 전반적인 것들을 배우게 되는데 사실상 편의점 알바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편의점 조끼를 입고 고객이 들어올 때마다 "어서 오세요~GS25입니다"를 외치면서 매장에 있는 상품들을 정리하고 까대기라고 하는 입고된 상품들 박스를 열고 진열하는 업무를 하기 때문에 알바와 다름이 없다. 처음 들어온 신입에게는 발주조차 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냥 열심히 맞이 인사 하면서 진열된 상품 칼각을 맞추며 시간을 때우는 일이니 세상 편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첫 배정된 점포는 월드컵 경기장역에 위치한 점포인데 그곳은 특수점포라 평상시에는 지하철 역 앞에 위치한 점포에서 근무를 하다가 콘서트나 축구 경기가 열리면 경기장 내에 있는 서른 개가량의 매장을 운영해야 했다. 노가다가 기본 베이스인 점포인 것이다.
이곳에는 점장 1명과 그 아래 선임 직원들 4명, 그리고 나와 동기 한 명이 근무했다. 동기인 종운이 형은 나보다 세 살이 많아서 편하게 형이라고 불렀고, 카리스마 있고 선배들도 호감을 갖고 대했다. 반면에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내성적인 성격에 붙임성이나 스몰토크에 취약했기 때문에 딱히 예쁨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중 선배 한 명이 유독 나를 싫어해서 더욱더 위축된 상태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그 선배를 피해 다니기도 했는데, 근무표를 보고 둘이 같이 근무를 하는 날이면 이 어색함과 한파가 몰아친 것 같은 냉랭한 기운에 근무 시작 전부터 진이 빠지곤 했다. 동기가 여러 명이었다면 좀 덜했을 텐데 단 둘이다 보니 둘을 대하는 태도가 냉탕과 온탕이라는 게 너무나 확연히 느껴졌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나는 더 소외감을 느끼게 됐다.
그런 내가 좀 안타까웠는지 종운이 형은 "야, 잘 좀 해봐 봐. 왜 이렇게 얼어있냐"라고 했고 나는 우스갯소리로 "형은 지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형이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바닥을 쳐주니까 상대적으로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라고 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처음 본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잘 대해준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그리 상처를 받지도 않았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고된 날은 가끔은 나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가? 나중에 선배가 되고 나서는 후배들 중 조용히 소외되어 있는 후배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주었던 것 같다.
사람이 긴장을 하게 되면 평소에 잘하던 것에서도 실수를 하듯, 그 선배가 있는 자리에서 나는 바보 멍청이 그 자체였다. 공격적으로 쏘아붙이는 말에 이미 주눅이 들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다 보니 답변이 늦어지고 그런 모습에 선배는 더 답답함을 느껴서 큰소리를 내는 이 악순환의 고리. 다른 선배들은 나를 그렇게 대하진 않았지만 종운이 형과 같이 있다 보면 관심도의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 그래서 차라리 몸이라도 힘들게 굴리는 바쁜 날이 오히려 좋았다. 경기가 없는 날엔 많이 한가했기 때문에 직원들끼리 사담을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고, 나한텐 그 시간이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정도라는 게 있는데 이놈의 점포의 육체적 강도는 정말 땀으로 온몸이 젖을 정도였다. 통상 경기가 있는 날에 경기장 내 재고를 3천~5천만 원 정도 채우는데 그 넓은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채우기 위해 라보라고 하는 소형 트럭에 물건을 계속 싣고 나르기를 반복하고, 진열과 재고 파악까지 하다 보면 한여름에는 탈수로 쓰러질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또 땀이 워낙 잘 나는 체질이다 보니 상하의가 비 맞은 것처럼 흠뻑 젖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어찌나 회식은 좋아하는지 저녁 10시경에 경기가 마치면 서른 개가 넘는 매장 판매량과 현금을 맞춰보며 로스는 없는지 확인하는데 단 한 번도 재고가 맞아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면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마치게 되는데 그렇게 끝나면 뒤풀이를 하러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부어라 마셔라 술을 들이부었다. 주량이 맥주 한 캔 정도인 나는 온갖 방법으로 소주를 버리기 위해 잔머리를 굴렸고,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도 10잔 중에 네다섯 잔은 마실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마시고 바로 화장실에 가서 오바이트를 하고 와서 헤롱헤롱한 상태로 한두 시간을 버틴 후 집으로 돌아가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5시간 정도를 자고 다시 점포로 출근했다.
어떤 날은 너무 깊게 잠들어서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점포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 훌쩍 넘어서 눈을 떴다. 엄청난 양의 부재중 통화를 확인하고 머리가 멍해진 순간, 전화벨이 울리는데 그 선배였다. 하... 그 짧은 순간에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걸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명품 연기를 시전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동원 씨 어디예요? 지금 장난해요?"라는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어?... 어... 여기가 어디지... 아... 죄송합니다"를 마치 방금 잠에서 깬 목소리로 내뱉었다. 내가 어딘지 모르겠단 말에 걱정이 됐는지 소리를 지르던 그 목소리는 차분한 어조로 바뀌며 "어? 무슨 일 있어요? 어디예요?"라고 물었다. "아.. 저.. 여기 길바닥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라고 내뱉는 순간 전화기 너머로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세상 스위트한 목소리로 "집에 가서 씻고 천천히 와요"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좀 여유롭게 샤워를 하며, 어찌 되었건 내 연기라 통했구나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며 느지막이 출근을 했다.
점포에 들어서자마자 선배들이 깔깔대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기억이 없다고만 말했더니 "이 사람 이거 골 때리네" 라며 한참을 웃어댔다. 이게 이렇게 웃을 포인트인가 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이 날의 에피소드 덕에 그 호랑이 선배는 나를 4차원 캐릭터 보듯 신기하게 보며 전에는 없던 친근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운오리새끼에서 그냥 오리새끼로 업그레이드된 기분이랄까? 나중에는 서로가 굉장히 친해져서 휴무날에 만나서 술도 마시고, 급속도로 가까워졌는데 그제야 살포시 그날의 기억은 사실 내가 연기한 거고 난 길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더니 "와~개XX네" 라며 친근한 욕설을 남기며 술잔을 기울였다.
3개월가량 이 점포에서 근무하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지만 결국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니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함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보다 더 힘든 곳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후에 갔던 점포에서 만난 점장은 내가 지금도 치를 떨고 싫어할 정도인데 우리의 악연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미운오리새끼가 아니라 그냥 버림받은 오리새끼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다룰 텐데, 아마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서 혈압이 오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미운오리새끼들이 있다. 보자마자 호감이 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게 계속되면 무리에서 소외되는 그런 미운오리새끼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기대와 응원을 받는 사람은 더욱더 탄력을 받고 능력을 뽐낼 수 있지만, 무시와 갈굼을 당하는 사람은 잘하던 것도 못하고 그 모습이 그 사람의 능력의 전부로 평가받고 더욱더 소외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적어도 내가 가 직영점에서 근무한 7개월간의 기간에는 그 어느 곳에서 나의 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후배들 중에서도 선배들에게 인기가 없거나 살짝 소외되어 있는 사람을 찾아서 말을 걸어주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고 했던 것 같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이런 걸까? 요즘 유행하는 럭키비키 마인드로 해석을 해보자면, 비록 갈굼과 소외됨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 시간을 버티면서 오히려 강해질 수 있었으니 이거야말로 럭키비키?
혹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그 과정을 겪는 독자가 있다면, 그 힘든 상황은 나를 무너트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강하게 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무던하게 버텼으면 한다. 다만 그 수위가 심한 정도라면 때려치울 각오로 싸대기를 한 대 날려주는 패기나 빅엿을 선물해 주기 위해 신고를 하는 당당한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절대 자기를 놓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과 더불어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나는 당신의 가치 있는 사람이자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