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이런 실수를 하는 거야
"사회에서 똑똑한 사람도 군대만 오면 바보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는 머리가 굳어버린다. 특히나 주변의 미세한 변화나 상대방 얼굴 근육의 변화와 목소리 톤과 몸동작의 변화 등을 날카롭게 캐치하는 성향을 가진 나로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해 내는 곳과는 정 반대인 이곳에선 그냥 날지 못하는 새에 불과했다. 아니 그냥 민폐 덩어리에 불과했다.
회사를 다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는 건 사실 역량이 특출나기보다 라인을 잘 타서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정말 특출 나게 잘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대부분 회사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소위 말해 어나더레벨이라고 불릴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상사가 밀어주는 사람이 회사 내부에서도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둔갑하기 좋고, 그래서 조직에서의 정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밑바닥을 깔아주기 딱 좋다. 붙임성도 없고, 경직되어 있고, 경직되어 있다 보니 자꾸 작은 실수를 하게 되는 마치 무능력의 무한 굴레에 빠진 것처럼 계속 지하 깊은 곳으로 파고들게 된달까. 스스로도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기에 만회해 보고자 뭔가를 열심히 하지만 정말 내가 바보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내 첫 근무지인 GS25월드컵경기장역점에서의 일이다. 경기장 내부에 30개 가까이 되는 매장들이 있는데 큰 경기가 열릴 때엔 모든 점포를 오픈하지만 예상 관객수가 적은 경기나 콘서트의 경우엔 절반 정도만 운영을 한다. 그 매장엔 기본적으로 과자나 생수, 음료 등이 진열되어 있고, 경기 전 날에 자체 재고조사를 통해서 수량을 체크한다. 통상 생수가 수백 개씩 쌓여있는데 가로로 진열된 개수와 세로로 진열된 개수를 곱해서 총수량을 계산하는데 이상하게 수량을 셀 때마다 몇 개씩 틀리는 것이다.
가령 A라는 점포에 557개가 있었다고 적어놨는데 다른 사람이 셀 땐 567개인 상황. 그래서 둘이 같이 세보니 567개가 맞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단순히 숫자 세는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서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이 일에서 실수가 나니 멘탈 붕괴는 이럴 때 쓰는 말인 듯싶었다. 물론 그런 실수를 나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좀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 다른 사람이 그런 실수를 하건 말건 나는 중요치 않았다. 내가 틀리는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현금으로 계산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기 때문에 점포 내부 금고엔 10원짜리부터 500원짜리 동전까지 100만 원가량 되는 돈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동전이 떨어지면 조금 떨어진 국민은행에 가서 동전으로 교환해 오는데 동전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카트를 끌고 간다. 그리고 분명히 은행에서 눈으로 확인 후 카트에 싣고 점포에 왔는데 50만 원이 비는 것이다. 지폐라면 오다가 흘릴 수 있겠으나 동전 뭉치가 떨어지는 걸 몰랐을 리도 없고, 은행에서 실수를 한 건가 의심을 해봤지만 은행에서도 그 정도의 금액을 실수했을 리는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말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건 내 책임이니까 내 돈 50만 원을 넣어서 메꾸겠다고 했는데 점장님은 직원들 끼니 1/N을 해서 채우자고 했다. 사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내가 잘못한 건데 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인가 하는 마음에 절대 그러지 말라고 그냥 제 돈으로 채우면 된다고 했는데 점장님은 "너 저 돈이 천만 원이어도 네 돈으로 메꿀 거야?" 그리고 다른 선배들도 괜찮다며 각자 돈을 각출해서 메꾸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너무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나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숫자도 제대로 못 세고, 돈이나 잃어버리고, 이건 뭐 어디 가서 대기업 다닌다고 말할게 아니라 초등교육부터 다시 받아야 할 수준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운오리 새끼인데, 어처구니없는 실수까지 하니 이건 뭐 총체적 난국이었다. 스스로 지은 죄가 좀 있기 때문에 업무 강도가 높더라도 군소리 않고 묵묵히 했던 것도 있는 것 같긴 하다. 왜냐하면 그 매장은 법적 근로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있는 날엔 아침부터 나와서 준비를 하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정말 온몸에 땀이 흐를 정도로 그 큰 경기장 전체를 돌아다니며 각 매장별로 부족한 물건은 다른 곳에서 옮겨와야 했기 때문에 살이 안 빠질 수가 없었다. 지금 내 몸무게가 87kg인데 그 당시 내 체중은 76kg이었다.
어쨌건 그렇게 경기를 마치고 나면 뒷정리하는데도 상당 시간이 걸리고, 통상 경기나 콘서트는 저녁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새벽이 되어서 퇴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거기다가 뒤풀이는 왜 그렇게 꼭 챙겨서 하는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뒤풀이까지 거하게 치르고 나면 잠자는 시간 빼고는 그냥 계속 일을 하는 날도 상당히 많았다. 다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를 미워했던 선배도 나중에는 친해졌기 때문에 입사 2개월 차 때엔 몸은 힘들지만 이곳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실수를 했을까를 돌이켜보니, 역시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타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을 했고, 방학 때 카페에서 2개월 투다리에서 2개월 일 해 본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군 장교로 복무하면서도 몸으로 쓰는 일은 부사관들이나 병사들이 거의 도맡아 했고, 덩치는 크지만 몸 쓰는 일 자체를 많이 안 해보다 보니 그런 일을 할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일머리 같은 게 없었달까. 그리고 수직적인 분위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에 소심함과 내성적인 성향까지 더해지니... 더 말하진 않겠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미숙했던 시절은 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는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심할 것이다. 나의 경우엔 상당히 미숙했던 것 같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는 그 정도가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누구나 인생에서 스스로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남이 하는 걸 보고 훈수 두는 건 쉽지만 막상 본인이 해보면 뚝딱이가 되는 것처럼 세상 일이라는 건 정말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같다. 나도 내가 단순 수량 계산을 틀릴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