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의 최고의 순간은 언제입니까
본격적으로 클래식 덕질을 시작한지 3년차가 된 지금, 누군가가 클래식과 케이팝, 락 중 무엇을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오늘 출근길에도 실리카겔과 서태지를 번갈아가며 들었다..)
다만 분명한 건 클래식 덕질은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개이득이라는 것이다.
클래식은 말하자면 망할 일 없이 적금처럼 길게 두고보는 배당우량주, 미국 지수추종같은 주식이다. 빨리 들어갈수록 이득이요 세월이 내 편이다. 묵을수록 맛있다.
1. 아이돌 마의7년 vs 브람스 교향곡 1번의 170년+a
- 나의 아이돌 돌잡이는 에프엑스였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 그룹의 팬들이 얼마나 비운의 덕질을 했는지…에프엑스의 한국 단독콘서트는 단 한 번 뿐이었으며, 이조차 마지막 앨범이 나오고 나서야 열렸다. 다섯 멤버가 말 그대로 뿔뿔이 흩어진 지금 다시 그들의 라이브를 듣는 건 영영 불가능하다. 영원히 언젠가의 음원과 단 한번 경험한 라이브의 추억을 더듬으며 살아갈 뿐이다. 결국 그들의 09년 데뷔부터 16년여경 사실상 해체까지 내가 에프엑스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던 건 겨우 8년 남짓의 시간이었다. 비단 에프엑스 뿐 아니라 아이돌계에는 '마의 7년'이라 불리는 징크스가 있다. 일반적인 계약 사이클인 7년차 때 사고치는 멤버, 탈퇴하는 멤버때문에, 그게 아니더라도 재계약을 하지 않아 결국 그룹이 와해되는 일이 흔하디 흔하다.
반면 클래식은 어떠한가? 나의 클래식 돌잡이었던 브람스 교향곡 1번만 해도, 첫 충격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이후 런던 필하모닉, 정명훈&원코리아 오케스트라 등 또 다른 최고의 지휘자와 악단들의 실황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연찮게도 그 기회들은 일상이 어지러운 순간마다 찾아와서 좀 더 큰 관점에서 내 삶을 되짚어볼 수 있는 감사한 계기가 되었다.
더 엄청난 점은 내가 죽을 때까지 이 곡은 계속해서 또 다른 맛으로 최고의 악단들에 의해 연주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첫 예습때 거의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들어놨기 때문에 더 이상 곡의 참맛을 알아가는 예습의 고통도 없이 나는 그냥 공연날, 혹은 딱 브람스 1번이 땡길 때 준비 없이 브람스 1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며 감상할 수 있다. 비단 브람스 1번 뿐 아니라 충분히 연습한 수많은 곡들이 플레이리스트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고, 예습의 부담이 없는 공연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대략 50년이라 친다면 나는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브람스 1번을 어딘가에서 들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아가 서른 살에 듣던 브람스 1번과 황혼을 지나 인생의 막바지 시점에 듣는 브람스 1번은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 감상이 너무 기대되어서 늙는 것도 두렵지 않다. 언젠가 찾아올 그 순간을 상상만 해도 너무 벅차고 기대된다…!!!!!
2. 3분 vs 1시간
요즘 케이팝은 점점 더 경쟁하듯 짧아져 이제는 3분을 채 넘기지 않는 곡도 많아졌다. 그러나 클래식은 어떠한가? 3분 남짓한 소품곡은 물론이요, 웬만한 건 40~50분 남짓이고, 약간 힘주면 한시간을 훌쩍 넘긴다. 물론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처럼 15시간을 넘어가는 화끈한 곡도 있다! 음악 디깅은 귀찮은데 좋은 음악은 듣고싶어서 계속해서 음악 재생창의 다음곡을 연타한 기억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당장 클래식 들을 타이밍이다. 마음에 쏙 드는 넷플릭스 시리즈처럼 잘 고른 클래식 한 곡은 나의 한시간을 능히 든든하게 채워줄 수 있다. 이 장점이 가장 빛을 발하는 건 바로 장거리 비행 때다. 근 1년동안 유럽을 두 번, 아프리카를 한 번 다녀왔다. 그 모든 시간동안 나를 든든히 지켜준 건 다름아닌 여러 곡의 교향곡들이었다. 간단히 산출해도 비행시간 9시간이 남았다면 교향곡 겨우 9번 들을 시간밖에 안 남은 것이다.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이 든든한 국밥같은 클래식의 길고 긴 러닝타임에서 오는 도파민도 급이 다르다. 더불어 자고로 단편영화와 장편영화의 무게감이 다르듯 한시간을 달려 완성하는 피날레의 전율은 3분따리 음악이 선사할 수 없는 별도의 경지다. 기본적으로 클래식은 결국 음악적 갈등(?)의 해소로 나아가기 때문에 모든 교향곡은 우리가 작게는 일상에서, 크게는 인생 전체를 둘러싸고 마주하는 고난과 해소의 과정을 닮았다. 거기서 오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고조는 이를 빌드업하는 절대적인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3. 2025년 오늘날을 살아가는 특권
- 클래식 교양서를 찾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건 바로크시대 때만 해도 연주회는 항상 새로운 곡을 선보이는 공연이었다는 점이다. 매 공연이 신곡발표회라니! 그럼 ‘아는 곡’을 듣는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것 아닌가?!?!? 더불어 이런 연주회는 일반 콘서트홀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왕궁, 귀족 등 선택 받은 계층만 참석할 수 있었으니 지금의 나같은…노비(회사원의 다른 말. 무한도전 관상편 참조)는 꿈도 못꿀 자리였을 것이다.
바로크 시대까지 가지 않고, 9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mp3가 없어 음반으로만 클래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의 선택지는 또 얼마나 좁았을 것인가? 그래서 클래식 어르신들이 그토록 ‘명반’ 싸움을 하는 것 같다. 애초에 선택지가 별로 없었기에 다양성을 즐기기보다는 최고를 듣고 싶은 방증인 것이다.
그러나 2025년 지금은 어떠한가? 당장 라디오프랑스의 실시간 중계를 들으면 프랑스에 가지 않아도 박수소리까지 생생한 실황을 들을 수 있고, 고리짝적 앨범부터 엊그제 나온 앨범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애플뮤직이든 가성비 유튜브든 찾아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 클래식을 해설해주고 읽어주는 유튜브도 이리 많으니 말 그대로 20125년 지금 당장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유래 없던 특권이다. 내가 수십, 수백번 브람스 1번을 들을 수 있던 것, 그 수많은 클래식 곡을 다양한 버전으로 예습할 수 있는 것도 지금 이 시기에 클래식에 빠진 자의 엄청난 특권인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클래식 파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