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위에 은혜(요 1:14-18)

by Those Dim Reflections

누군가가 전에 없던 세계를 경험하고서 터뜨린 말로 내 기억에 가장 오래된 것은, 내 고향 섬에 처음 전기가 들어오던 날 밤, 돌담 너머로 불야성을 이룬 마을을 보고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와,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당시 전력으로 불을 밝힌다고 해봤자 겨우 5촉 아니면 10촉짜리 전구 하나씩 대청마루에 단 것이 전부가 아니었을까마는, 오랜 세월 익숙했던 어두컴컴한 호롱불에 비해 그날 할아버지 눈에 비친 세상은 신세계였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보다 족히 7~8년 앞서, 인류 최초로 지구 바깥의 땅에 발을 내디딘 한 사람이 그때의 감동을 담아낸 말은 어떤가? "개인으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엄청난 도약입니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 말을 한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Neil A. Amstrong)은 나중에 인터뷰 때 이런 말도 보탰다. "달에서 본 지구는 작고 푸르게 떠 있었고, 그 순간 인류의 모든 역사와 존재는 한 점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때 자기는 완벽히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서 이렇게 쓴 것은 어떤가?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그가 목격하고 자세히 살핀 이는 사람의 몸을 입으셨던지라 그냥 보아서는 그 비범함을 쉬 알아챌 수 없었을지라도 그가 어디서 오신 분인지를 알 때는 놀라 까무러칠 일이었다. 이 대목까지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 첫 장에서 설명한 말씀이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자 "곧 하나님"이신 분이었다. 이런 분의 영광이 인간의 육체라는 질그릇에 담기지 않은 채 적나라하게 보였다면, 실제로 사람은 최소 까무러침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름 아닌 요한이 그 실례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대로, 그가 환상 중에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을 뵈었을 때, 경외감에 압도되어 그만 초주검이 되고 말았다.(계 1:17)

그러니 사람의 눈에 차마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자들과 함께 이땅에 거니신 동안에 얼마나 놀라운 신세계를 그들에게 열어주었는가? 그것은 이 세상 사람이 제아무리 위대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한들, 그것과 비할 수 없었다. 겨우 10촉짜리 전구 수십 개를 보고 놀란 나의 할아버지가 그런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면, 생명의 빛으로 이땅을 비추신 말씀 앞에 어떤 경외감이 들까?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발을 딛은 것만으로도 암스트롱이 신세계를 운운했을 것 같으면, 정말이지 미친 과학적 발전으로 저 수백만 광년이나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M31) 속 어디를 사람이 살아생전에 탐험할 경우의 감동은 어떨까? 그러나 그것도 결코 성육신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은, 그것도 어디까지나 같은 피조물인 사람과 은하의 만남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조자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사람이 그의 영광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간이나 공간의 차이가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의 문제다. 그 차원을 초월하여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세계로 오시고, 그것도 "장막을 치고 사셨다"고 하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이 사건이 끼친 새로운 세계관을 이름하여, 사도 요한은 "충만한 은혜와 진리"라고 한다. 이것은 구약성경을 통해 알아온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출 34:6, 시 25:10 등)의 새 버전임이 틀림없다. 그 당시로도 이미 드러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이제 더 나아갈 수 없는 극한의 경지로 표현되었다. 그것이 "은혜와 진리"며 또 그것의 충만이다. 그러니 구약에서 깨달은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하심을 이 성육신하신 독생자 하나님까지 만난 후에 술회하려니, 이만한 설명도 없다.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발견한 은혜가 과거의 모든 은혜를 이긴다(overcome)고 하니, 우리는 어떤가? 그를 만난 후로, 우리의 세계관은 이 주체할 수 없는 은혜로 충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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