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순간들을 담은 젊은 의사의 에세이 (폴 칼라니티)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가슴에 사무쳐 버렸다. 이 책을 쓴 폴 칼라니티 그리고 그의 부인 루시 칼라니티의 죽음과 사랑이 내 마음속에 정말 깊숙이 들어왔다. 죽음에 대해서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폴 칼라니티와 그와 함께 했던 루시 칼라니티의 사랑을 한가득. 정말 꽉꽉 채워서 느낄 수 있었던 베스트셀러 에세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책이지만, 결국은 삶을 떠올리는 이야기들이다. 그와 동시에 사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대면한 젊은 의사 폴 칼라니티.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으나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그는 이 모든 학문의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독히도 문학을 사랑했던 그가 택한 삶의 의미를 신경외과 의사에서 찾아 장밋빛 미래를 눈앞에 두었을 때 암이 그를 찾아왔다.
독자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 책 앞에 앉아야 할 것이다.
용기가 어떤 것인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용감한 행동인지 목격하게 될 것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옮긴이(이종인)의 말 중
의사이자 암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보인 폴은 힘든 투병 생활 중에서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고, 루시와 아이를 가져서 낳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매우 굳건히 도 지켜내었다. 의사로서 누구보다 종양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그는 처절히 도 맞닥뜨려야 하는 죽음 앞에서 솔직하게 두려움을 자각했지만, 계속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투병을 하는 2년 동안 그의 기록은 찬란했고, 이렇게 책으로 남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많은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게 될 폴 칼라니티.
떠난 그를 대신해 이 책을 마무리하며 에필로그를 적은 와이프 루시의 말들은 모두 사랑이었다. 지극한 사랑.
눈물을 펑펑 쏟으며 루시의 에필로그를 읽었지만, 너무 마음이 따스해지는 그들의 사랑을 느꼈다.
오래오래 내 가슴에 사무칠 폴 칼라니티와 루시 칼라니티. 언젠가 숨결이 바람 될 때 그들처럼 사랑으로 남고 싶다.
저자 : 폴 칼라니티
출판 : 흐름출판
발행 : 2016.08.22.
목차
프롤로그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에필로그 : 루시 칼라니티
P.284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 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소명, 소명의식에 대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유난히 의사라는 직업엔 소명의식이라는 단어가 함께일 경우를 참 많이 봤었다. 소명의식 없이는 하기 힘든 직업이라는 말과 함께.
책 속에 폴이 표현해 둔 레지던트 기간의 생활은 정말 모든 것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그렇게 힘들고 힘든 기간을 배우고, 버텨야만 전문의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다. 절대, 연봉과 근무 환경 그리고 근무시간을 고려한다면 의사란 직업이 마냥 좋아 보일 수많은 없었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러한 환경들로 인해 의사들 중에서도 기피하고 선호하는 과가 생긴다고. 소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폴 칼라니티가 더욱 대단해 보였다.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때로는 그 소식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뇌파가 일시 중단되며 고통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을 '심인성' 증후군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경험하기도 하는 졸도의 심각한 형태이다.
Disaster의 어원이 너무 슬프면서도 아프다. 얼마나 수많은 재앙과 같은 진단을 환자들에게 알리며, 그 눈빛을 보았을까.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슬픈 눈빛만을 보내오는 환자를 바라보아야 하는 의사 역시 사람이니 슬플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인도해 나가는 의사 선생님들에게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의사 선생님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나오는 선생님들 같을 순 없고 어쩌면 현실과 다를 지언정존경받아야 하는 직업일 수밖에 없다 느낀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 안 내가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마치 모래 폭풍이 그동안 친숙했던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
죽음에 대해서 끊임없이 궁금해하던 한 의사가 만난 죽음. 매일 같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에 머무르며 누구보다 죽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던 그 역시, 본인에게 다가온 죽음을 맞닥뜨리고는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폭풍이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 허망한 기분.
솔직한 그의 모든 심정 또한 책 속에 잘 표현되어 있어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제법 있었다. 따스한 한 사람을 이토록 허망하게 만든 죽음은 우리랑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란 걸 수없이도 깨닫게 해 주면서 말이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그 언젠가에 혹여나 감당하지 못할 병을 만난다면 꼭 이런 마음을 가진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실제 표현은 무뚝뚝하고 따스해 보이지 않더라도, 이런 의사 선생님이 와닿을 수만 있다면 너무너무 믿고 의지하고 싶을 것 같다.
꽤 오래전에 실제 충격적인 진단의 가능성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던 경험이 있었다. 누구보다 이런 상황의 환자를 많이 만날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건넨 첫마디는 '걱정이 많으셨죠'였다. 따스한 말로 시작된 선생님의 말에 눈물이 흘러버렸지만, 안심이 되었다. 결론적으론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소견을 주셔서
에피소드처럼 마무리된 경험이었지만, 가능하면 큰 병원 가야 할 병은 만나고 싶지 않아, 정말.
비록 지난 몇 년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을 힘겹게 맞추며, 감사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한 시기였다.
폴의 아내 루시가 표현한 에피소드는 지독히도 슬프지만 사랑이 충만하다. 극한의 상황이 되어 느끼는 진심이라서 더욱 와닿았고, 그런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깨달음도 더 크다.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이 균형을 맞추긴 어렵지만, 깊어진 그들의 감사와 사랑에 감동이 더 컸다.
그리고 이렇게 멋진 아빠가 온 마음으로 사랑해 줬다는 걸 먼 훗날 딸 케이디가 알게 될 때까지 오래오래 이 책이 사람들에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의사 선생님께서 곧 오실 거예요."
그 말과 함께 내가 꿈꿔왔으며 곧 실현되려던 미래, 그리고 오랜 세월 부단히 노력하며 도달하려 했던 삶의 정점은 사라지고 말았다.
때때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고통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평소에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습하고 후텁지근한 날처럼, 공기의 무게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여름날의 정글에 갇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환자의 가족이 흘리는 눈물을 비처럼 맞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 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폴은 암 진단을 받은 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는 우리가 욕실 거울에 걸어둔 그림을 보면서 울었다. 그 그림에는 '내게 남은 모든 날을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어'라고 적혀 있었다.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나는 폴이 세상을 떠나면 내 인생에는 오로지 공허와 슬픔만 남을 줄 알았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똑같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는, 또 끔찍한 슬픔과 비통함의 무게를 못 이겨 때로 몸을 떨며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큰 사랑과 감사를 계속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 순간 그가 사무 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