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어른을 향한 글방선생님의 어린이 에세이 (김소영)

by 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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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게이지만 이 책을 이제라도 만나서 너무 다행이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너무 다행이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기다려 주는 순간에는 작은 보람이나 기쁨도 있다. 그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하고 싶었고, 고민이 될 때는 육아서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책도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다가 끊임없는 감탄을 반복했다. 육아 지침서 보다 훨씬 어린이를 이해하게 되는 책.



아이의 어떤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땐, 아이의 입장이 되어봐야지. 늘 이렇게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참 어려웠다. 실제로 책 속에는 '부끄럽지만'이란 표현으로 시작되는 문구가 많은데, 사실 나도 그렇다.

부끄럽지만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어린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이가 주는 소음과 그들의 투정을 성인의 시선에서만 바라보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나도 한때 아이였다는 사실을 너무나 까맣게 잊고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많이 부끄러웠다.



이 책은 어린이가 어른을 얼마나 성심껏 대해 주고 있는지 말해 준다. "바쁘다, 중요하다, 힘들다"라며 다그치는 어른을 힘껏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어린이는 더없이 다정한 사람들이다. 김소영의 글은 어린이만큼이나 따뜻하다. 좋은 날을 상상하며 애쓰다 멍든 그 작은 마음의 한 자락까지 놓치지 않고 다가간다. 그러나 그의 글은 타협 없는 엄격함을 가졌다. "어른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책의 어느 장면을 읽어도 이 질문만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멋지고 위엄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어른이 무례하다는 것을 이만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 김지은(어린이문학 평론가)



순수하고 착한 어린이의 마음을 더 큰마음으로 받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비단 나의 아이뿐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자라는 세상에 절망보단 희망을 알려주고 싶다. 때로는 떠들고 시끄럽고 정신없게 만드는 아이들 모두 너무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을 잊지 않고 싶다. 해맑은 어린이들의 미소를 더 많이 보고 싶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나의 어린 시절이었고, 함께하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라는 것도.

따스한 글 속에 녹여낸 작가님의 이야기를 부디 더 많은 어른들이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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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소영

출판 : 사계절

발행 : 2020.11.16.


들어가며.

1부. 곁에 있는 어린이

2부. 어린이와 나

3부. 세상 속의 어린이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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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나 사이의 우정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답이 이미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더 많은 쪽에서 필요한 쪽으로.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 없다.


김소영작가님은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만난 아이들의 일화를 이 책 속에 많이 담아두었는데, 코로나로 한동안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을 때 이런 마음을 느끼셨다고 한다. 마음 깊이 와닿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이 글을 읽으니, 매일매일 흐르는 사랑을 나 또한 느꼈다.

내가 사랑을 나누어 주기에 때로 너무 지쳐서 쉬고 싶을 때, 아이로부터 내 쪽으로, 더 많은 쪽에서 필요한 쪽으로. 나에게 그렇게 사랑이 흘러왔고, 고여있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없던 힘도 끌어내는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고.



부모님들은 각자 자기 방식으로 아이를 돌보고 사랑을 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부모님들만큼이나 아이들도 부모를 사랑한다. 부모님보다 아이들을 더 자세히 보는 입장이라 그럴 수도 있는데, 사실은 아이가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나이가 더 어린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은 미워하면서 사랑한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고 할까.


내가 나의 아이만큼 어렸던 시절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겠지. 그렇지만 온전히 나에게 와닿는 사랑이 가장 큰 시기는 요즘이라고 느낀다. 매일 엄마를 두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두 아이들에 행복한 웃음을 짓는 날이 많아진다는 것. (얘들아 미안하지만 사실 조금은 힘겨울 때도 있어) 절대적인 그 아이들의 사랑에 내 마음도 날이 갈수록 더 풍성해진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이 흐르고 있다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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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것임을 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어느 순간까지는 아이 몫의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도 감수하는 것이 양육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까지가 양육이 아닐까 하고,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아마 그만큼 무겁지 않을까 그것 역시 짐작만 해 본다.


저자 김소영 작가님은 아이를 키우지 않으신다. 아이가 없었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 모습에 감동스러울 만큼. 그런 분이 이렇게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떠올려보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많이 와닿았다.

내 위주의 시간이 전부이던 내 삶이었는데.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잘하고 있다고 위로받는 것 같아서, 마음을 토닥토닥해 주시는 것 같아서 괜히 울컥했다.

어떤 생명에 온전한 책임을 다한다는 것.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함께 잘 걸어가 보고 싶은 길이길.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 좋아해서 그러는 걸 가지고 내가 너무 야박하게 말하는 것 같다면, '좋아해서 괴롭힌다'라는 변명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불러왔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여느 아빠들처럼 남편도 아이들에게 장난을 많이 친다. 친근함과 사랑스러움의 표현이지만, 때로는 내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있으니깐. '그러지 말라'라고 주의를 주면 본인의 육아 방식을 운운하지 말라며 싫어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어줬다. '좋아해서 괴롭힌다'라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가끔씩 배우자와 육아에 대한 의견 충돌이 있을 때면, 우리는 누가 옳다고 따져서 싸우기보다 근거를 찾아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 보자 노력한다. 각기 다른 아이들을 대하는데 어느 문제 하나 명확한 정답이라고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부모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걸. 투닥투닥이며 동지애를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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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ARK



- "나눠 줘요!"는 '곱고 바른말'이고, "같이 놀자""반겨 주자"는 '상냥한 마음씨'다. 사전 뜻 그대로다.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 복잡한 감정들을 곱씹으며 집에 갔다가 다음 날이면 모든 것을 깨끗이 잊고 어린이는 다시 놀이터로 달려 나간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어린이가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잊고 자기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노는 그 순간이 어린이의 현재를 빛나게 한다. '놀기'에는 아주 큰 소득이 있다.


- 자매, 형제의 정이란 참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쌓이는 모양이다. 싫어하면서도 껴안고, 껴안으면 웃음이 나고, 그렇다 고 다 풀리는 건 아니고, 그래서 늘 할 말이 남아 있는 사이. 어린이에게 자매, 형제는 부모라는 절대적인 조건을, 지붕을 공유하는 동지다.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만나 평생을 알고 지내는 친구이기도 하다.


- 기차에서 아기가 울면 '아기가 피곤한가 보구나' 하고, 식당에서 아이가 보채면 ‘집에 가고 싶은가 보구나' 하고 말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내가 편안해졌다. 눈살 찌푸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 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고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새 종이를 주고, 다음에는 더 잘 그리도록 격려할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 실제로 어린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새 종이를 주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도 전에 어린이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새로운 그림을 시작한다.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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