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알쓸별잡 과학자의 에세이 (심채경)

by 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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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님. 알쓸별잡과 알쓸인잡을 보진 못했지만, 똑똑하고 글도 잘 쓰시는데 미모까지 다 가지셨다!


책을 읽는 내내 한창 별이 궁금하던 10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한가득이었다. 별똥별이 많이 떨어진다는 그 어느 날에 2층 집이었던 우리 집 거실 창밖으로 보이던 1층 지붕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친구들과 밤새 별을 보았던 적이 있던 그런 날들. 인기 많았던 천문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서 필기시험을 치고 면접까지 보았던 나날들.


어렸던 그날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길 좋아해 구름 사진도 많이 찍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알고 있는 몇몇 별자리를 찾길 좋아했다. 불빛이 적은 어느 시골에 가면 꼭 한참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찾아보곤 했다. 우유니에서 밤하늘의 별이 호수 가득 비쳐 우주 공간처럼 느껴지길 기대하기도 했었다. (결국 흐린 날씨 탓으로 만나지 못했지만) 가끔씩 몇 년 혹은 수십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밤하늘 행사가 있으면 지켜보길 좋아하는 정도. 지금의 나의 밤하늘에 대한 관심은 그 정도 즈음일까..




오늘 내가 할 일은, 애써서 받은 그 '연구 면허'가 별무소용인 종잇장이 되지 않도록 연구자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뿐이다. 평가하고 평가받는, 누구 나와 같은 그 삶 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뿐이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이 책이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22년 여름 우리나라 최초로 달 탐사선 '다누리'가 발사되었고, 그해 12월 정상적으로 임무 궤도에 진입 후 다음 해부터 열심히 달 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그만큼 현생에 바빠서 한때 관심 있던 분야의 대단한 업적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간의 아쉬운 지적 탐구에 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책을 보면서 열심히도 검색을 하고 소주제로 언급되고 있는 천문학적 지식을 탐색했다. 학교를 졸업하며 잊고 있었던 초승달과 그믐달이라던가, 명왕성이 왜 태양계 행성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이란 사실을 발견한다던가, 슬플 때 해지는 걸 보기 좋아하는 어린 왕자를 위해 하루에 두 번 일몰을 볼 수 있는 수성을 알게 된다던가, '유니버스' '코스모스' '스페이스'라는 우주라는 단어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등..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설레고 즐거웠다. 그리고 느꼈다, 어린 시절의 나만큼 여전히 천문학에도 제법 관심이 많은 나라는 것을.


이렇게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며 행복한 순간들이 매일매일 쌓여가는 현재가 참 좋다.

독서의 즐거움, 이 좋은 걸 나만 느끼기 너무 아쉬운 여름날, 이번 주에 새로 빌릴 책들이 다시금 너무 기대된다.





Screenshot 2023-11-01 at 15.30.12.JPG 알쓸인잡에 소개된 심채경 박사님



저자 : 심채경

출판 : 문학동네

발행 : 2021.02.22.


프롤로그.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1부. 대학의 비정규직 행성과학자

2부. 이과형 인간입니다

3부. 아주 짧은 천문학 수업

4부. 우리는 모두 태양계 사람들

에필로그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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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과학자란 직업에 대해서 저자인 심채경 박사님도 말하고 있지만, 정말 저게 뭐길래 저리 몰두할 수 있을까? 싶은 것들에 깊이 파고드는 과학자들의 세계는 경이롭다. 전형적인 문과 기질의 나는 수학과 과학이 무서웠지만, 유일하게 지구과학은 너무 사랑했다. 가장 좋아했던 지리 과목과 겹치는 부분들부터, 조금 접할 수 있었던 지구과학은 신비로움 그 자체.

지극히 앉아서 연구하는 것이 나와는 잘 맞지 않았겠지만, 작가님이 말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나 역시 동경한다. 그리고 응원한다, 열렬하게.



같은 해 태어난 국민 중 팔 할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을 배우러 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다음 중학교에 갔고, 중학교 다음 고등학교에 간 것과 같이 고등학교를 마쳤으니 대학에 진학할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학비보다 열 배는 비싼 등록금이요. 모두가 입어야 하는 교복 대신 모두가 가져야 하는 스펙을 등에 업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심채경 교수님으로서 대학교라는 교육체계에 많은 의구심을 품은 부분들을 솔직하게 표현해 주신 내용이 책 속에 제법 담겨있다. 스펙과 출신을 위해 진학하는 대학이라는 교육체계. 정말 어떤 학문을 진지하고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니깐 당연히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고등학교 다니면서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을 전공으로 고르고 공부하게 되었다.


정말 진지하게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는 지리학이었지만, 과연 그쪽으로 진학을 했어도 내가 지리학자가 되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배우는 교양이라는 과목에 천문학이 있어 다양한 형태로 알려주는 교수님을 만났던 학생들은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좋은 선생(교수)님을 만나서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 늘었으면.. 하는 기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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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대단한 계기로 천문학을 선택한 것도, 어릴 때부터 오매불망 천문학자가 되기만을 그리다 마침내 꿈을 이룬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각자 인생의 흐름이 있는 것이고, 나는 삶을 따라 흘러 다니며 살다 보니 지금 이러고 있다. 어느 분야로 가든 대학원은 다닐 생각이었기 때문에, 평행우주 속 나는 지 금쯤 생물학자 거나 영문학자 거나 고고학자일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큰 열망이 있었던 소수가 아니라면, 작가님 역시 천문학자가 꿈은 아니었다. 주어진 삶에 충실하다 보니, 어느덧 천문학자로 흘러들었고 그곳에서의 삶에 더더욱 충실한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인생에 처음부터 주어지는 답은 없다. 날 때부터 '나는 과학자'라고 명찰을 달고 있진 않으니깐. 원하는 방향으로의 삶을 계속해서 꿈꾼다. 그렇게 흘러가고, 때론 떠돌다 보면 가까워질 그런 날들을 그려보면서.



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빠르게 돈다. 한 시간에 15도, 그것은 절대로 멈춰 있지 않는 속도다. 별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을 휘둥그레 떴던 밤을 기억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 살아 움직이며,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 내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


실제로 내 몸이 움직이거나 땅이 움직이는 게 아니니깐, 평소엔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그렇지만 시간으로 정의된 것이 흘러가고, 그런 시간이 모이고 모여 나의 삶을 이루고 있다. 내가 잠시 생각하는 틈에도 계절은 지나간다는 사실. 때론 철학적이고 과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모든 생각이 모여 결국은 사람이 될 테니까.

태양계와 늘 함께인 오늘 밤하늘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 그러곤 또 사람을 떠 올릴 테지.




BOOKMARK



- 국내 천문학계는 대단히 좁은데, 천문학의 범위는 천문학적으로 넓어서 관심을 줄 대상이 너무 많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은 외롭지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 호주 밤하늘의 남십자성은 우리 밤하늘의 북두칠성에 견줄 만하다.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보이는 별을 주극성이라고 부르는데, 호주에서는 남십자성이 주극성이라서 생일이든 아니든 매일 밤 볼 수 있다.


- 기본 천문학 강의는 "천문학이란 미래에도 변함없이 살아남을, 시간에 무관한 기본 지식"이라는 멋진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 어린 왕자는 해지는 광경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한다.


- 특히 여름철 지루한 장마 끝의 노을을 사랑한다. 마치 솜사탕을 여기저기 헤쳐놓은 듯 색깔도 높이도 서로 다른 구름 층이 여러 갈래로 휘몰아치다 갑자기 멈춘 듯한 하늘. 그 역동적인 하늘에 내려앉는 노을은 어찌나 붉고 또 어찌나 강렬한 황금색인지. 그렇게 황홀한 황혼은 태양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렵다. 지구에서 태어난 나를 칭찬한다.


- 걷거나 의자를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해지는 광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성이다. 그곳의 하루는 아주 길어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88일이나 걸린다. 해가 지고 나면 다시 88일간의 긴 밤이 시작된다.


- 초승달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상현달과 보름달도 꽤나 사랑받는다. 그러나 밤하늘에 하현달이 보이는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 그믐달은 밤을 꼴딱 샌 사람들, 혹은 한밤중에 일어나 태양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보는 그런 달이다.


- 나중에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특출 난 것 없는 연구자, 특별한 계기나 인상적인 에피소드 하나 없이 과학자가 되어 그저 그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 그런 평범한 과학자는 더 많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 자신과 꼭 닮은, 소소한 에세이를 쓰는 과학자 한 명쯤 더 있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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