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희생자 유족에게 보내는 작가 마음

제주 4.3

by 예지리파파

제주 4·3 유족에게 머리 숙여 무궁한 존경을 표합니다. 잔인무도한 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픔에도, 꾹꾹 눌러 참으셨습니다. 억울해서 죽을 것만 같았지만, 아무 일 없는 듯 모른 척하셨습니다.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애써 입 다물고 계셨습니다. 혹시나 남은 자식들 잘못될까 봐, 알아도 모르는 척,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처음 듣는 척했던 긴 세월이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그렇게 아무 일 없는 듯 지냈던 78(79)년의 세월이 원망스럽습니다.


감히 제가 여러분의 아픈 마음 모두를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취재하면서, 글 쓰면서 감정이입으로 저 또한 아주 힘들었습니다. 분노가 느껴졌고, 슬픔이 느껴졌고, 답답함과 억울함이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섬뜩한 장면들과, 사람이기를 포기했던 잔인한 행태들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있었던 영화 같은 이야기들은 글 쓰는 내내 마음을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정신과 마음은 지쳐갔습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과연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제주 4·3 평화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3·1절 발포 사건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점점 4·3 속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국가와 군경을 보고 어떻게 같은 국민을 상대로 저런 끔찍한 만행들을 저지를 수 있는지, 분노가 차올랐습니다. 일련의 내용들이 전개되는 과정은 매우 놀랐고, 다랑쉬굴을 재현해 놓은 전시관은 과히 충격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평화롭게 사는 것은 제주 4·3과 한국전쟁, 5·18 민주화운동에 희생하고 헌신했던 분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진 세월 잘 견뎌주신 유족 여러분 덕분입니다. 당신들이 계셔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모두 바른길로 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잠시 길을 벗어날 때면, 국민은 용납하지 않고 다시 바른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처럼 순간순간 잘못된 행동을 저지하는 것은 모두 제주 4·3과 한국전쟁, 5·18 민주화운동에서 배운 학습효과입니다. 해서는 안 될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 국가로부터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분에게 배웠습니다.


어쩌면 제주 4·3은 아직도 진행 중인지 모릅니다. 가해자의 사과와 책임은 아직도 없습니다. 엄청난 일로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진심이 담긴 사과로 일을 끝맺을 사람들이 없어졌습니다. 심지어 유족은 시신 수습도 못 했으나, 가해자는 양지바른 곳에 묻혀있습니다. 세월 흘러 잊히니 누워있는 게 편한지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 김대중 정부에서 4·3 특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권력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는,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가 있었습니다. 특별법과 국가의 사과가 유족이 느끼기에 부족하고 의미 없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아버지, 엄마, 내 자식들, 내 형제들이 특별법과 사과로 돌아오지는 못할 테니까 말입니다.


모든 것들이 마음에 차지 않고, 보시기에 부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련의 노력이 있었기에 더 많은 국민적 관심과 따뜻한 위로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러 분야의 노력 끝에 제주 4·3에 대해서 국민적 관심도가 예전보다 높아졌습니다. 이제 4·3은 여러분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많은 국민이 나서 유족과 아픔을 함께하는 든든한 동행을 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유족 여러분!

지난 7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견뎌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화는 모두 여러분 덕분임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