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드디어 시작된 제주 4·3 여행기

by 예지리파파

어느 날 우연히 영상으로 70여 년 전 제주 모습을 봤다. 국내 최고 여행지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흑백 영상으로 봤던 제주는 지금 모습과 많이 달랐다. 벽돌집과 아파트가 아닌 짚단을 엮은 지붕이 보였고,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비포장 흙길이 보였다. 화면 속에 나오는 흑백 풍경은 그 시대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흑백 영상에 나오는 주민은 불난 집 사이를 헤집고 도망가듯,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왜 도망가고, 집이 왜 불탔는지 궁금했다.


사람들이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고 있었다. 그 곁에는 총을 멘 경찰이 서 있었다. 경찰은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서 있었던 것일까? 다른 화면이 나오더니 이번에는 사람들이 줄줄이 끌려가고 있었다. 군인들이 총을 쏘고 있었고 제주 땅에 낯선 미군도 보였다. 주민이 왜 경찰을 피해 도망가야 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화면에 자막이 뜨더니 ‘제주 4·3’이라고 했다. 나는 4·3이 무엇인지 검색했다. 검색 결과를 보고 무척 놀랐다. 검색 내내 경찰과 군인들이 한 짓을 보고 ‘사람이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정부가 국민에게 저질렀던 일이었는지 매우 의심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를 방문했을 때 ‘제주 4·3 평화 기념관’이 생각나 들렀다. 주차하고 기념관으로 들어섰다. 마치 동굴처럼 꾸며진 전시관 입구는 검은 벽과 어두운 조명으로 나를 1947년 당시로 안내하는 듯했다. 굴을 지나는 동안 무척 긴장하며 통과했다.


전시관은 ‘이름 없는 백비’를 시작으로 연대별로 4·3의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전시관마다 해설이 구체적으로 잘 기록되어 있었다. 글자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두 읽었다. 내 머릿속에 섞여 있는 4·3 전개가 전시관 설명으로 정리되었다. 전시관이 끝날 때쯤 당시 제주도민이 겪은 아픔이 분노와 함께 느껴졌다.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4·3을 여행기로 한번 써봐야지‘라고 다짐했다. 책이 만들어진다면, 책이 4·3 유적지 현장 방문 시 유적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참고서 역할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2년이 지났다. 드디어 내가 4·3으로 책으로 쓰게 됐다. 첫 책 도전이라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여행기를 쓰려면 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사진부터 찍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적지마다 사람들은 무엇을 찍고, 어떻게 찍었는지 검색해 봤다. 유적지가 넓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서 대부분 비슷한 사진들이었다.


나는 바로 일정을 확인하고 일정이 되는 날 항공권을 찾아봤다. 내가 원하는 날에 항공권이 있었다. 렌터카를 예약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웬일인지 어느 한 부분 막히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꼭 가야 할 운명인가 보다. 사실 난 혈액투석 환자로서 주중에는 병원 일정이 있어, 주말이 다니기 좋다. 주말 앞뒤로 하루씩 붙여 다니는 것도 힘들고 오직 토요일, 일요일 뿐이었다.


시간이 점점 다가와 내일이면 떠나게 됐다. 저녁을 먹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항공권을 예매할 때도 못 느꼈는데, 카메라 장비를 챙기면서 4·3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면서 확인차 진짜 4·3으로 책을 쓸 건지 나에게 되묻기도 했다. 나는 단호히 ’쓴다‘라고 대답했다.


드디어 당일이 됐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해 몇 시간 못 자고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씻고 다시 한번 짐을 확인했다. 도착해서 빠진 것을 알면 일정이 엉망이 될 게 뻔하다. 깊은 주말 잠을 자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 얼굴을 한 번씩 보고 집을 나섰다. 새벽 고속도로가 참 조용하다. 40분을 달리면 대구국제공항에 도착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등산객들로 청사가 붐비고 있었다.


대구국제공항에서 6시 30분경 출발하는 두 번째 비행기를 탔다. 이틀 밖에 없어서 일찍부터 움직이기로 했다. 유적지가 제주 동서남북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무조건 9시 전, 제주에 도착하려고 계획했다. 부지런히 다녀야지 이틀 만에 사진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창밖으로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섬들이 보였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현수교가 장난감처럼 보였다. 비행기는 어느덧 남해를 건너고 있었다. 내 마음은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제주까지는 한 시간 비행이므로, 남해를 건너는 중 기내에 착륙 준비 방송이 울린다.


기내에서 착륙 알림이 울리고 승무원의 ‘우리 비행기 잠시 후, 제주국제공항에 착륙 예정입니다. 좌석 등받이를 당기고 안전띠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창밖을 보니 멀리 한라산이 보였다. 보기에는 완만한 능선처럼 보이지만 결코 쉽게 오를 수 없는 제주도민의 영산(靈山)이다. 흑백 영상으로 본 한라산이 떠올랐다. 영상으로 본 한라산은 무시무시한 곳이었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한라산은 평화롭게만 보였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쯤 창문으로 아래를 보니 활주로가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활주로를 본 나는 이곳도 한라산만큼이나 무시무시한 곳임을 알고 있었다. 활주로가 가까워져 비행기 바퀴가 닿을 때쯤 나는 눈을 살짝 감았다. 그리고 등을 등받이에 바짝 붙이고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바퀴가 활주로에 닿고부터 커지는 엔진음과 앞으로 쏠리는 몸을 버티려고 그랬다. 사실 나는 착륙할 때 느끼는 충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행기 처음 타는 것도 아닌데 우습다.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캐리어를 찾으러 컨베이어 벨트 앞에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1박 2일 일정이어서 캐리어까지 필요 없었다. 카메라 백 남는 공간에 옷가지들을 쑤셔 넣어도 충분했다.


제주는 관광 도시이자 국내 최고의 휴양 도시다. 나는 제주 방문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적지도 않았다. 당연히 올 때마다 들떠있었고 설렘이 가득했었다. 그게 정상이고 제주는 그렇게 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잠시 그랬어도 ‘오늘은 아니야’라고 스스로 세뇌했다. 도망 다니던 주민을 떠올리며, 오늘만큼은 평소와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공항 청사 안을 걷고 있는 내 마음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조금 전 착륙을 앞두고 본 활주로를 보며 생각했다. 그때 사라진 주민이 여기에 묻혀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청사 아래 묻혀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내가 앉아 있는 곳, 내가 서 있는 곳, 내가 숨 쉬는 곳, 이곳 모든 것이 그날 일과 연관되게 느겨졌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청사를 벗어나 렌트카 셔틀구역으로 이동했다. 공항을 자꾸 밟고 다니는 것이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5분 정도 이동하니 에스컬레이터가 보이는 렌터카 주차장에 셔틀버스가 나를 내려줬다. 역시 대기업에서 운영하니 달랐다. 돈이 최고는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돈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렌터카에 앉자마자 직접 만들어 온, 이틀 동안 다닐 유적지 지도를 꺼냈다. 짧은 시간에 열다섯 곳을 다녀야 하므로, 나름 동선과 시간대를 최단 코스로 만들었다. 사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행 계획서 만드는 것이다. 여행 동선을 짜다 보면 내 안 어딘가에 있는 세심함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한다.


4·3 유적지 동선을 짜다 보니 유적지가 상당히 많았다. 나는 그나마 당시 흔적이 많거나 형체가 남아 있는 곳을 골랐다. 그리고 ‘다랑쉬굴’처럼 내 마음이 아파 끌렸던 곳을 선정해, 열다섯 군데를 추려 동선을 만들었다. 동선을 만드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열다섯 곳 유적지를 검색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읽다 보니 마음이 무거워서였다. 반면 빨리 내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한 나는, 커피 한잔 사서 컵홀더에 꽂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사실 일부러 스스로에게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다. 커피 한잔에 마음이 흔들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유적지 사이사이에 카페를 넣어 죽치고 앉아 있을까 봐 일부러 그랬다. 카페에 시간이 많이 쓰이면 이틀 안에 유적지 모두를 못 봐서, 올라가는 내내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4·3 첫 유적지는 제주국제공항 인근에 있는 ‘도령마루’였다. 공항에서 2km 남짓한 거리지만 마음이 바빠서인지 가는 길이 상당히 멀었다. 도령마루 유적지는 주차할 공간이 없다. 유적지를 지나니까 우측에 상가가 보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다행히 문이 닫혀 있었다. 상가에 주차하고 카메라를 챙겨 유적지로 걸어갔다.

사진으로 보던 유적지가 맞았다. 도로보다 아래에 있어 밖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난 들어가기 전 도로 위에서 유적지 전체를 한번 훑어봤다. 마음을 가다듬고 경사로를 내려갔다. 마음이 찹찹해졌다. 나의 <제주 4·3 여행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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