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행복한 친구 만들기.

by 박철

"주위에 친구가 몇 명쯤 있어요?"


초등학교 때 가장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는 동네 친구들과 해가 지도록 구슬치기, 딱지치기하던 기억이에요.

온 동네 아이들이 수십 명씩 모이면 다방구, 술래잡기, 망치 치기, 오징어게임, 땅따먹기, 잣치기를 하며 하루해가 저물었죠.


서쪽 하늘이 노을에 물들면 집집마다 대문 앞에 나와 고함을 쳤죠.


“철수야 밥 먹어~”


“영희야 밥 먹자~”


집집마다 굴뚝에 밥 짓는 냄새가 온 동네에 구수할 때쯤 아이들은 하나씩 골목에서 사라졌죠.


흙장난에 손은 늘 거칠었고 겨울이면 장갑도 없이 흙을 파고 놀아서 손등이 거북이 등 껍질처럼 갈라져 피가 나기 일쑤였죠.

좋은 로션이 잘 없던 시절, 엄마는 나에게 대야에 오줌을 누라고 하시고는 트고 갈라진 두 손을 뜨끈한 오줌에 한참 담그고 있으라 했어요.

아마도 무슨 민간요법 같은 것이었나 봐요.

몇 번만 담그면 손에 새살이 돋고 깨끗해진다고.

너무 더럽고 냄새가 났지만 엄마의 눈초리가 무서워 꼬박 한 시간씩 담그고 있었죠.

근데요, 제 기억에 큰 도움이 없었어요.

진짜 더럽고 짜증만 났죠.

그래도 다행인 건 남의 오줌이 아니라 내 오줌이라는 거.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자전거를 타는 게 너무 좋았죠.

동네 언덕을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내달리면 그렇게 신나고 즐거웠죠.


하루는 전속력으로 언덕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반대편 차선의 트럭이 불법 유턴을 해버려서 나는 그만 트럭 옆을 들이받고 하늘로 튕겨 올랐죠.


"쿠쿵"


그리고 일순간 자전거와 함께 도로 위로 나뒹굴었죠.


다행히도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트럭 기사님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죠.

무릎이 좀 까졌지만 그것보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더 무서웠죠.



또 한 번은 친구와 골목길을 자전거로 달리는데 집을 나서는 나이 80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를 정면으로 들이받았죠.

나도 넘어지고 할아버지도 넘어지셨죠.

이런 소란에 할아버지 자식들이 뛰어나왔는데 그날이 하필 할아버지 생신날이라 자식들이 다 모인 날이 더라고요.

십여 명의 어른들이 저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난 괜찮으니 보내줘라.”


할아버지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아마 몇 대 줘 맞았을지도 모르죠.


고등학교 때 어느 날, 친구가 어디선가 오토바이 한 대를 끌고 왔어요.

그런데 말이 오토바이지 백미러도, 전조등도 없는 완전 고물 오토바이였어요.

딱 굴러만 가는.


친구는 잘 아는 선배에게 싸게 샀다고 했어요.

친구를 졸라 오토바이를 몰아보게 되었어요.

한 번도 오토바이 운전을 안 해봤지만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한 나는 친구를 뒤에 태우고 한적한 도로를 신나게 달렸죠.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십여분 차도를 달리고 있는데 곡선 도로 반대편 차로에서 갑자기 버스 한 대가 클랙슨을 크게 울리며 마주 달려오고 있었어요.


"빠앙~"


운전이 서툴렀던 나는 코너링을 잘 못한 나머지 그만 차선을 넘고 말았던 거죠.


뒤에 앉아 있던 친구가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죠.


“악~~~~!”

간신히 버스를 스치듯 피하고 도로 한편에 오토바이를 세웠죠.


뒤에서 내린 친구는 내게 소리쳤죠.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때문에 뒤질 뻔했잖아.”


그날 이후 다시는 친구의 오토바이를 몰 수 없었죠.


고등학교 여름방학 어느 날.

동네 친구 아홉 명이 인근 학교운동장에서 온종일 축구를 하고 다니던 교회 마당으로 갔어요.

온몸이 땀에 젖은 우리는 교회 마당 식수대에서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려고.

그런데 친구 한 명이 교회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더니 올라오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친구를 기다리다 궁금해서 내려갔죠.

그런데 친구 녀석이 교회 지하 식당 주방에서 뭔가를 먹고 있었어요.


“야 너 뭐 먹냐?”


“어... 솥에 소고기 뭇국이랑 밥이랑 김치가 잔뜩이야.”


“주일도 아닌 평일에 왜 이렇게 음식이 있지?”


장로님의 아들인 친구가 말했어요.


“아마 주일날 교인들이 먹고 남은 음식일 거야.”


“그래?, 그럼 어차피 버릴 거니까 먹어도 되지 않을까?”


“그러게~”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커다란 솥의 소고기 뭇국과 밥솥에 가득한 밥, 김치통의 김치를 먹어 치워 버렸어요.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하고 식당을 빠져나왔죠.

증거를 없앤 건지도 모르지만.


평일 낮이라 그런지 교회에는 아무도 없었죠.


그러나...

다음날 교회가 발칵 뒤집혔죠.


바로 그날 수요일 저녁 예배 전 여전도회 성가대 30여 명이 먹을 저녁밥을 누군가 다 먹어버린 거죠.

CCTV 나 물증은 없었지만 교회 모든 어른들은 범인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죠.

그런 짓 할 놈들은 교회 안에 뻔했으니까...


다음날 장로님 아들인 친구는 관리 집사님께 불려 갔어요.

평소 너그러우셨던 집사님은 그날만큼은 무척 화를 내셨어요.


“니들이 정신이 있는 놈들이냐? 당장 물어내!”


착한(?) 친구는 순순히 자백을 했고 고민 끝에 자기 집 쌀통에서 쌀을 몰래 퍼다가 관리 집사님께 가져다 드렸어요.

물론 집사님은 됐다며 그냥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착한(?) 친구는 쌀을 두고 도망치듯 교회를 빠져나왔죠.


그런데...


그다음 날은 그 친구네 집이 발칵 뒤집혔어요.


밥을 하려고 집 쌀통을 열어본 친구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소리치셨죠.


“어머, 여보 집에 도둑 들었나 봐요. 쌀을 반이나 훔쳐갔어요.”


결국 친구는 부모님께 실토를 하고 그날의 사건은 추억 속으로 지나갔죠.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킥킥대곤 하죠.

지금은 모두 한 가정의 아버지요, 기업의 사장이고, 선생님이 된 친구들은.


최진실을 아세요?


예전에 최진실이라는 매우 유명한 여자 배우가 자살하기 전에 썼던 일기의 내용이 공개된 적이 있어요.

“엄마… 미안해! 약에 취해, 약 먹은 사실을 까먹고, 또 입에다가 한 움큼 물구. 눈은 반쯤 감겨서. 나 죽으면 그냥 흰 천에 둘둘 말아 갠지스강에 띄워 달라고…”

“환희야. 수민아. 나의 아들. 나의 딸아. 엄마 어떻게 하면 좋아? 너희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구나. 엄마는 지금 너무 막막하고 무섭고 너희를 지푸라기라고 생각하고 간신히 너희를 잡고 버티고 있단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나는 말 상대가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고독하고 외롭다."

마당발이라고 할 만큼 많은 연예인 동료들이 있었고 수십만 명의 팬을 거느렸던 만인의 연인 같았던 그녀는 오히려 늘 외로웠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들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일은 없었을 것을...


단 한 명의 친구


63TmnYejYlI.jpg

지난날의 행복은 늘 친구들과 함께였죠.


친구들과 함께 놀았고 친구들과 함께 배고팠으며 친구들과 함께 먹고 친구들과 함께 사고 치고...

친구가 없었다면 그 혼란스럽고 거칠기만 하던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요.

친구가 없는 추억은 상상할 수조차 없죠.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필요하죠.

꼭 동갑이나 같은 직업이 아니고 나이가 많아도, 조금 어려도 다 친구가 되죠.

원래 나이를 먹으면 위아래 10살은 말이 통하죠.

힘들 때는 힘들다고 심심하면 심심하다고 놀러 갈 친구가 있다면 인생의 더욱 행복하죠.


제가 좋아하는 유안진 선생님의 수필이 떠오르네요.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후략)



keyword
이전 14화14편. 죽음이 나를 부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