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나이를 먹어 죽음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수록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서양과 동양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서양은 공동묘지가 마을 근처 또는 마을 중심부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요.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죽게 되면 출근길에 혹은 산책길에 자주 오가며 묘지에 가서 인사를 하고 꽃을 놓아주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죠.
“엄마, 안녕. 난 오늘 회사 면접시험이 있어. 잘할 수 있게 응원해 줘.”
“엄마, 나 합격했어. 엄마의 응원 덕분인 것 같아.”
묘지는 늘 평화롭고 아름다운 공원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공동묘지가 대부분 깊은 산속에 많아요.
사람이 죽으면 깊은 산속에 파묻어버는 거죠.
마치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그리고 1년에 한두 번 다녀오기 어렵죠.
공동묘지를 혐오시설이라고 해서 자기 지역에 공동묘지가 생긴다고 하면 머리띠 두르고 반대하기도 하죠.
요즈음은 공원묘지라고 해서 아름답고 보기 좋게 꾸며진 것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부정적이죠.
한국에서 공동묘지는 혐오시설, 서양의 공동묘지는 공원시설.
죽음에 대한 고찰도 다르죠.
서양 사람들은 죽음을 가까운 것, 삶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한국 사람들은 죽음을 먼 것 삶과 단절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 당연히 한국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거죠.
사형수들은 사형 집행일이 가까워 옴을 느낄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떤다고 해요.
하루는 어떤 사형수가 사형장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부식되어 부러지면서 계단에서 떨어졌어요.
벌떡 일어난 사형수가 그랬대요.
“휴~죽을 뻔했네.”
우리나라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죠.
한국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죽음 이후를 무척 어둡고 보고 있죠.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의 공통된 궁금증이 있어요.
"천국은 진짜 있을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하나님 잘 믿고 착하게 살려고 애썼으니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에 천국이 있기를 바라죠.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은 내가 내 멋대로 살았는데 지옥 가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지옥이 없기를 바라죠.
그런데 둘 다 확신이 잘 없어요.
누군가 “천국은 있어.”라고 하면
“니 가 죽어 봤어? ”라고 말할 거예요.
저는 친분이 있는 분들이나 교회 형제들과 관련하여 1년에 수십 차례 장례에 참여하여 집례를 돕거나 화장하기 전 시신을 볼일이 많죠.
죽은 분들뿐 아니라 죽음에 거의 다가간 분들과 만나 상담을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저희 아버지께서 암으로 거의 죽을 뻔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어요.
암증상이 심해져서 물만 먹어도 토하고 음식을 전혀 못 드셔서 며칠만 더 지체했어도 돌아가셨을 거예요.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누워서 일어나는 것조차 어려웠죠.
10kg 이상 몸무게가 줄어들고 뼈만 앙상해진 아버지는 급하게 요양병원에 들어가 응급처치를 하고 겨우 위기를 넘기셨죠.
그러나 의사는 아버지가 전신에 이미 암이 전이되어 수술도 불가능하고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평생 교회를 증오했죠.
아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40년도 더 교회를 다녀 장로가 되고 며느리가 권사가 되어도 교회에 대한 비난과 부정적인 인식은 더해만 갔어요.
“교회는 목사한테 속아서 돈 뜯기는 바보들이나 가는 곳이다.”
“취미 정도로만 다니고 절대 깊이 빠지지 마라.”
“교회 다니는 것들이 더 나쁜 짓 많이 하더라.”
“좋은 목사도 있지만 아주 적어.”
이런 아버지에게 저는 감히 교회 가자는 소리를 해 본 적이 없었죠.
그런데 응급실에 실려 가신 어느 날 불쑥 유언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혼수상태에 빠지거든 절대 연명치료하지 마라. 그냥 죽게 해라.”
아버지는 이미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죠.
그리고 한마디 더 하셨어요.
“근데... 언제... 교회는 한번 가야돼지?”
“네 아버지, 그러시면 좋아요. 퇴원하시고 기력을 회복하시면 그때 모시고 갈게요.”
그러나 아버지가 병석에서 일어나실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죠.
고민 끝에 목사님을 병실로 모시고 와서 침상 세례를 받았어요.
마음이 평안해진 아버지는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셨고 몇 주 만에 퇴원을 하시고 지금은 잘 드시고 산책도 잘하시죠.
암 수치도 떨어지고 의사는 아버지의 상태가 좋아지는 걸 보며 놀라곤 했죠.
아버지는 죽지는 않았지만 거의 죽음 문턱까지 다녀오신 것 같았죠.
퇴원하신 이후 말과 행동이 많이 달라지셨죠.
마치 새로 사시는 것 같이.
임사체험(臨死體驗, 영어: near-death experience, NDE)이란 말을 들어봤나요?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죠.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심장정지 상태에서 소생시킨 사람의 4~18%가 임사 체험을 한다고 해요.
1982년 갤럽 조사에서는 당시의 미국에서만 임사 체험자의 총 수는 수백만 명에 이르 렀다고해요.
많은 전문가들이 연구를 하기도 했죠.
1918년에, 이탈리아의 의사 봇트노(it:Ernesto Bozzano), 1923년에, 영국의 물리학자인 윌리엄 플레처 바렛트등.
1975년에 의사인 엘리자베스 큐브라-로스와 의사 및 심리학자인 레이몬드 무디가 연달아 저서를 출판하면서 주목받게 되었어요.
큐브라-로스의 저서 '죽는 순간'(1975년)에는 약 200명의 임사 환자에게 직접 경험을 듣고 집계한 것을 근거로 사례에 관한 통계나 과학적 접근이 시작하기도 했죠.
1982년에는 의사인 마이클 세이봄도 조사결과를 출간하기도 했어요.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인생에 다음과 같은 많은 공통적인 변화들이 생긴다고 해요.
1. 자기 수용
2. 다른 사람에서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게 된다.
3. 다른 사람에 대한 염려
4.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증대한다.
5. 생명에 대한 존경의 생각
6. 특히 환경문제나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강해진다.
7. 반경쟁주의
8. 사회적인 성공을 위한 경쟁에 대한 관심이 약해진다.
9. 반물질주의에서 정신성으로의 이행
10. 물질적인 보수에 대한 흥미는 희미해지고 임사 체험으로 일어난 정신적 변용에 관심이 이행한다.
11. 지식욕구
12. 정신적인 지식에 대한 강렬한 갈증을 기억하게 된다.
13. 목적의식
14. 인생은 의미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인생에는 신성한 목적이 있다는 의식이 자란다.
15. 죽음의 공포의 극복
16. 죽음에 대한 공포는 완전하게 극복된다. 죽음의 과정 자체에 대한 공포는 남는 경향도 있다.
17. 사후의 세계의 확신이 나 환생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신뢰가 자란다.
18. 자살의 부정
19. 빛에 대한 신뢰
20. 자기 초월
21. 작은 자기라는 껍질을 찢고, 우주 전체로 열려 가는 마음의 성장을 바란다.
22. 초능력자현상
23. 힐링·예지·텔레파시·투시 체험
참 아이러니하죠.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소중함과 기쁨,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게 되니까요.
얼마 전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셔서 갑자기 회덮밥이 드시고 싶다는 거예요.
아버지 집에서 10분 거리의 동네 횟집에 회덮밥을 드시고 싶다는 거예요.
제가 수원시내에 진짜 좋은 일식집으로 가자고 해도 싫다고 하시면서 꼭 그 집을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무슨 대단한 맛집인 줄 알고 아버지를 모시고 가봤더니 동네의 허름한 식당이더라고요.
회덮밥에 튀김 두 조각, 미역국 한 그릇과 김치까지 전부 합쳐 1인분 만원.
음식이 나왔는데 별로 대단치 않았죠.
생각해 보세요.
만 원짜리 동네 식당 회덮밥이 뭐 그리 대단한 게 있겠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무척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비우시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웬만한 고급 요리를 드셔도 “별로네.”라고 퉁명스럽던 아버지는 변하셨죠.
돈은 제가 냈는데 부담 없어서 좋긴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죽음을 준비하실 때 저도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죠.
장례식장은 어디로 할까?
장지는 어디로 할까?
화장을 하면 어디다 뿌려 드릴까?
아버지 유품은 어떻게 정리를 할까?
그러면서 죽음을 깊이 생각했고 나 역시 삶을 다시 살기로 했죠.
아버지처럼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위해서 살지 말고,
아버지처럼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만 하지 말고,
아버지처럼 맛있는 거 못 먹고 아끼지 말고,
아버지의 후회를 나의 후회가 되지 않게 해야지.
돌아보니 50 중반의 나이, 단 한번 도 행복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내 인생은 정말 허망하고 엉망이었죠.
하루, 단 한순간도 불행을 짝하지 않기로,
슬픔을 친구삼지 않기로,
걱정을 달고 살지 않기로,
인상 쓰고 성질내지 않기로.
행복이 별건가요?
먹고 싶은 것은 그날 먹고,
가고 싶은 곳은 최대한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다 만나면서.
조금 느려도 좋고
조금은 허술해도 좋은.
내 다리가 떨리는 날이 오기 전에
내 심장이 뛰는 삶을 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