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여.

by 박철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나요?

유년기?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대학시절?

사람마다 행복했던 시절은 다 다를 거예요.

저는 유년시절이 가장 행복했어요.

특히 처음 해삼과 멍게를 먹었을 때의 기억이에요.


아마도 저의 나이 5살쯤 되었을 때예요.

어느 무더운 여름, 아주머니 한분이 커다란 양동이에 갖가지 해산물을 담아서 팔러 다니고 있었어요.

여러 가구가 모여사는 다세대 셋방 마당에 해산물을 풀어놓자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해삼, 멍게, 오징어, 고등어 등을 한 두 마리씩 샀어요.

난생처음 그런 해산물을 보았죠.

가난한 형편에 애가 셋이나 되는 우리 어머니는 차마 한참을 바라볼 뿐 선뜻 사지 못했어요.


시간이 한참 지나 사람들이 다 사가고 양동이의 물건들이 다 팔릴 때쯤 어머니는 집주인아주머니에게 돈을 좀 꾸어 해삼과 멍게를 한 마리씩 샀어요.

그날 오후 땀에 젖은 몸으로 퇴근을 한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반찬으로 해삼과 멍게를 올렸죠.


그런데 썰어 놓으니 몇 점 되지 않더라고요.

식구는 다섯인데 한 점씩도 돌아가지 않을 만큼.

평소 같으면 자식부터 먹이시던 어머니는 그날만은 단호했어요.


“아빠 먹게 니들은 이거 손대지 마.”


어린 우리는 신기하고 호화로운 음식에서 눈을 못 뗐어요.

아버지는 한 점 드시더니 접시를 자식들에게 밀었어요.


“맛이 별로네. 애들 먹여.”


그래서 해삼, 멍게는 지금도 내 인생의 최애 음식이 되었죠.


그런데 이상해요.


요즈음은 아무리 좋은 자연산 해삼과 멍게를 먹어보아도 그때 그 맛이 않나요.

별로예요.


어린 시절 내가 먹었던 것은 해삼과 멍게가 아니라 행복이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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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요?


겨울이면 단칸 셋방에 외풍이 세서 겨우내 콧물을 줄줄 흘리고 창문이 없어서 늘 어두운 방안이었지만 가장 행복했죠.


초등학교 때는 엄마가 만들어 주는 닭도리탕(닭볶음탕)이 어찌나 맛있던지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죠.

엄마가 닭 요리를 하는 날이면 부엌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웃었죠.


방학 때 강원도 홍천 외가에 가면 할머니가 끓여주신 호박 된장국이 끝내줬어요.

싸리 담장을 호박 넝쿨이 칭칭 감았고 막따온 호박에 된장만 풀고 별 양념이나 조미료 없이 끓여낸 호박국에 8살 손자는 밥을 세그릇이나 먹었죠.


막내 이모는 이런 저를 보며 이렇게 말했죠.


“야, 어린애가 무슨 밥을 이렇게 많이 먹니?”

생각해 보니 내 어린 시절의 행복은 늘 맛있는 음식과 함께였어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다니기 시작했고 집안 형편은 좀 나아진 듯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은 이혼을 하고 더는 어머니의 음식을 먹지 못했죠.

한여름 차가운 우물물을 길어와 무릎을 꿇고 남편의 땀내 나던 발을 씻어주던 어머니의 사랑을 무엇이 훔쳐갔을까.

도대체 무슨 대단한 것이...


어머니의 음식이 더 이상 없던 시절이 나는 가장 불행했죠.

죽고 싶을 만큼.


왜, 돈이 많아질수록 불행했을 까요?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벌지만 정작 그 돈 때문에 불행이 시작되죠.

만약 하나님께서 내게 돈이 많고 불행한 것과 가난하면서 행복한 것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무조건 가난 한쪽을 택할 거예요.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불행한 것과 세상적으로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행복한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성공 없는 행복을 택할 거고요.

요즈음 사람들을 보면 어른이나 애들이나 참 열심히는 살아요.

그런데 행복한 사람 보기 어렵죠.

난 자녀들에게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요.

피곤하면 쉬고, 놀고 싶으면 놀고, 자고 싶으면 자라고 해요.


서울대 어느 강의실에서 조차 행복을 가르쳐주지 않죠.


언젠가 어느 목사님께서 대뜸 내게 물으셨어요.


“왜 사세요?”


와~ 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아무 말도 못 하겠다라고요.

열심히 살면서도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한동안 나 자신에게 묻곤 했죠.


“난 왜 살지?”


어느 날 그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행복하려고요.”


비록 나는 많은 행복의 기회를 놓쳐버렸을지라도 나의 자식, 나의 아내, 나의 형제, 나의 이웃들에게는 행복을 조금이라도 나눠주는 인생을 살아보려고 해요.


저랑 같이 가 보실래요, 그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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