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불안장애

심리상담 이야기

불안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설명하기 난감하다. 두려움은 대상을 갖는다. 비좁은 공간, 어둠, 혹은 누군가의 적대적인 표정. 공포는 그 대상을 선명하게 지목할 수 있다. 그러나 불안은 모호하다. 그저 심장이 빠르게 뛰고, 가슴이 조여들며, 근거 없는 불길한 예감이 목덜미를 스친다. 이유를 설명해보려 하면 어딘지 말이 꼬이고, 마치 구름을 쥐려는 듯 감각만 남고 의미는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불안은 언제나 감정의 이름으로 불리기엔 어딘지 불편하고, 설명의 언어로 붙잡히기엔 너무도 허공에 떠 있다.


나는 종종 상담실에서 “선생님, 불안해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말은 언제나 그 사람의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온다. 마치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증폭될 것 같다는 듯. 불안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금기어다. 우리 사회는 불안을 병리화하고, 빨리 없애야 할 증상으로 취급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불안을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 잃어버림은 더 큰 고립을 만든다. 불안을 느낀다는 사실이 문제인 게 아니라, 그 불안을 들여다볼 공간과 시간을 허락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불안장애라는 진단명은 그런 점에서 사회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병리적 불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강박적인 사고, 이유 없이 덮쳐오는 공포, 몸을 마비시키는 불안 발작. 이런 고통을 치료하고 다루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자주 잊고 있는 것은, 불안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정동이라는 점이다. 애초에 우리는 불안 속에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품을 떠나면서부터, 존재와 소멸의 경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품고 살아간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감정을 말해왔다. 어떤 이는 존재의 본질이라 했고, 어떤 이는 신과의 단절에서 비롯된 공허라 했다. 하지만 굳이 철학의 언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깊은 밤,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볼 때, 문득 찾아오는 그 막막함.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이유 없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이 어딘지 낯설어 보일 때의 소스라침. 불안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심리학은 불안을 객관화하려 한다. 뇌의 편도체와 자율신경계, 호르몬 변화와 같은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려 애쓰고, 인지적 왜곡이나 과거의 트라우마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물론 이런 설명들은 일정 부분 유효하다. 하지만 설명한다고 해서 불안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불안은 정보가 아니라 감각이고, 의미가 아니라 몸의 떨림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지식을 동원해 불안을 설명하며 그 감각을 피하려 든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불안을 없애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그 자리를 지키게 만든다. 따라서 상담에서 중요한 건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감각을 함께 견디는 것.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언어로 붙잡히지 않는 떨림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일이다.


불안은 존재의 가장자리에서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불안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삶의 생동감도 함께 사라지는 일일 것이다. 사랑할 때의 설렘, 새로운 시작 앞의 긴장, 뜻밖의 상황에 흔들리는 마음. 그 모든 것도 불안의 한 형태다. 우리는 흔히 불안을 부정적인 감정이라 여기지만, 불안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기대하거나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불안은 언제나 양가적인 감정이다. 두려움과 기대, 공포와 희망이 뒤섞인 감정의 결. 문제는 이 감정의 흐름을 차단하거나, 지나치게 통제하려 할 때 발생한다.


누군가는 불안을 회피하려 하고, 또 누군가는 불안을 마비시키려 한다. 약물, 폭식, 관계 중독, SNS 몰입, 과도한 업무. 모두 불안의 감각을 잠재우기 위한 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회피는 일시적인 위안일 뿐, 근본적인 치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억압된 불안은 다른 방식으로 돌아온다. 신체화 증상으로, 알 수 없는 우울로, 또는 타인에 대한 분노와 비난으로. 상담실에서 자주 보는 것도 이런 모습이다. 사람들이 자기 안의 불안을 견디지 못해 외부로 투사하거나,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


그래서 불안을 다룬다는 건 불안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불안을 환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불안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숨쉬는 법을 익히는 것. 마치 깊은 물속에 들어갔을 때, 억지로 빠져나오려 하지 않고 물과 함께 움직이며 호흡을 조절하는 것처럼. 불안이라는 정동도 그렇게 우리 안에 존재하도록 두어야 한다. 그것을 견디는 법을 익히고, 그 감각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듣는 것. 나는 상담이라는 작업이 결국 그걸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믿는다.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 사라지기를 기대하기보다, 그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때로는 그 불안이 우리를 쓰러뜨리기도 하겠지만, 또 어떤 때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세상의 어떤 장면 앞에서 진심으로 떨리게 만들 것이다. 불안을 사랑하라는 말은 할 수 없다. 다만 불안을 미워하지 말자는 것. 불안은 나 자신을 보호하라는 무의식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안이 온다면,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보는 것. 어쩌면 그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가장 조용하고도 중요한 감정의 기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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