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라오의 대신전
아스완을 방문한 목적은 단 하나였다.
아부심벨 신전
아부심벨 신전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파라오인 람세스 2세의 권력 과시와 그의 신성함을 선전하기 위해 나일강 서안의 누비아 지역에 세워진 신전이다.
아부심벨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
아부심벨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이 크게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1960년대, 아스완의 하이댐 건설로 인해 나일강 수위가 상승하여 신전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을 때, UNESCO가 국제적인 구조 프로젝트를 주도하여 약 4년 동안 신전 전체를 조각조각 잘라서 현재의 안전한 장소로 이전했다는 사실이다.
이집트는 댐 건설 당시, 아부심벨이 수몰될 걸 알고 있었으나, 유럽 많은 국가에서 이집트 문명과 유적, 유물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 것을 노려 이집트 정부의 노력 없이도 누군가는 옮겨줄 거라 믿고 댐을 건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번째로는, 아부심벨 내부에 신을 모시기 위해 마련한 신성한 공간인 '지성소'이다.
람세스 2세는 어둠의 신 프타, 최고 신 아문-라, 태양의 신 라-호라크티 3명의 신과 자신의 석상을 나란히 앉혀 자신을 신으로 격상시키고자 하였고, 이 지성소는 매년 2월 22일, 10월 22일 단 두 번만 태양빛이 신전 입구에서 지성소 깊숙이 들어오도록 설계하였는데, 이 두 날은 각각 람세스 2세의 즉위 기념일, 하나는 그의 생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추가로, 단 2번 지성소를 비추는 그 빛은 어둠의 신 프타에게만 닿지 않도록 설계한 것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신전을 옮기면서 이 현상을 동일하게 재현하지 못하여 현재는 인공 빛으로 프타를 제외한 지성소를 비추고 있는 모습을 아부심벨을 방문하면 확인할 수 있다.
아부심벨은 아스완에서도 차로 왕복 6~7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고, 이집트의 최남단이기 때문에 한낮은 매우 더우며 관광객들로 북적여서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관행인 듯하였다.
그래서 전날 카이로에서 1시간 30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아스완으로 넘어가 1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 4시 반쯤 아부심벨로 떠났다.
유일하게 한국에서 미리 기사를 섭외한 관광지가 아스완-아부심벨 투어였는데,
아스완 공항이 바가지로 악명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래와 같은 일정이 모두 포함된 투어(가이드 미포함)를 2명이서 약 150달러의 가격으로 기사와 협의를 마쳤었다.
1) 아스완 공항 > 아스완 숙소 이동
2) 아스완 숙소 픽업 > 아부심벨 왕복 투어
3) 아스완 시내 > 룩소르 이동
하지만 이 일정이 굉장히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아스완 여행이 끝이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우선 1번 아스완 공항 > 아스완 숙소 이동 때에는 기사가 본인의 동생을 보냈는데,
택시에 타서 숙소가 어딘지 위치도 물어보지 않고 달리다가 우리가 숙소 위치를 알려주지 않은 것을 인지하고 알려줬음에도 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고,
결국 3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하였다.
또한, 아부심벨에서 아스완을 거쳐 룩소르로 가는 일정도 거의 7~8시간 소요되는데, 이미 하루 종일 차로 이동을 많이 한 상태에서 이집트 사람들이 운전도 그리 조심스럽게 하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극심한 멀미에 시달렸다.
다음에 갈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공항에서는 그냥 인드라이브 택시를 불러서 숙소에 가고, 고버스가 차체가 커서 오래 이동하더라도 멀미는 덜 하기 때문에 룩소르 이동은 고버스로 할 것 같다. 아부심벨 투어만 미리 기사를 구하면 이번에 진행한 투어 비용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투어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스완 여행에서의 아쉬운 점은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오직 아부심벨만을 위해 아스완에 방문하여 1박만 머물다 간 사실이다.
전날 카이로에서 아스완에 도착한 시간도 늦은 저녁이었고, 다음날은 새벽부터 아부심벨을 다녀온 후 바로 룩소르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아스완 시내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아스완은 아부심벨을 가기 위한 경유지 정도이고, 그 외 구경할 것이 별로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해 룩소르에 일정을 더 투자하기로 한 것이었다.
아스완에는 누비안족이라고 하는 아프리카계 원주민이 아직도 살고 있는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 이루어진 아스완이라는 도시가 그렇게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할 줄은 몰랐다.
아스완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온통 하얀 옷에 하얀 두건을 쓴 누비안족들이 늦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집 앞에 나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과 아스완 숙소의 루프탑에서 마주한 누비안족들, 그들의 전통악기 연주를 들으며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였다.
아스완에서 머문 숙소의 이름도 '누비안 킹덤 하우스' 였는데,
저렴한 숙박비에 시설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후기가 너무 좋았고,
특히 루프탑에서 누비안족과 대화를 나누며 보낸 시간이 너무 좋았으며 그들은 매우 친절했다는 후기가 많았다.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큰 기대는 없이 숙소에 들어갔는데 이집트+중동+원주민스러운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지만 전혀 인위적이지 않은 인테리어에 1차로 반하였고, 루프탑에서 마주한 누비안족과 따뜻한 웰컴티, 그들이 부르는 음악에 아침부터 메르사마트루에서 카이로로 이동하고 다시 짐을 찾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아스완에 오고, 공항에서 숙소까지도 1시간이나 걸려 상당히 지친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누비안족의 노래를 들으면서 친구와 이곳에 더 머물지 못함을 아쉬워하다가 다음날 새벽부터 아부심벨로 가야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방으로 들어와 씻고 잤다.
아부심벨에 가기 위해 일찍 나선 새벽 시간에도 누비안족의 노랫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는데, 그들은 잠을 자지 않는 건지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건지 궁금하였다.
아부심벨로 가는 길
4시 반에 기사가 우리를 픽업하기로 하였으나, 이집션 타임으로 5시쯤 기사가 숙소 앞에 왔고 아부심벨로 출발하였다.
아스완 숙소에서는 일찍 나가는 숙박객을 위해 조식을 테이크아웃으로도 제공하기 때문에 만약 이곳에 방문하고, 또 조식시간 이전에 숙소를 떠나야 한다면 전날 미리 말을 해두어야 냉장고에 조식을 챙겨놓아 준다.
아부심벨로 가는 차 안에서는 친구와 나 둘 다 지치고 졸렸는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자면서 갔다.
그러면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기사가 필요물품을 사거나 주유를 위해 중간중간 어딘가에 들렀었는데,
아부심벨에 도착해 보니 기사가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아부심벨에서 룩소르로 가는 길에도 기사가 몇 번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룩소르에서 아스완으로 다시 돌아올 때 교대하기 위해서인지 누군가 동승해서 같이 타고 가기도 하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날 총 3번 정도 기사가 바뀌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자다 보니 아부심벨에 도착하였고, 관광을 마친 후 차로 돌아오기 10분 전에 왓츠앱으로 연락을 남기라고 한 뒤 기사는 잠시 어딘가로 갔다.
람세스 2세의 대신전, 아부심벨 투어
탁 트인 길과 기념품샵 거리를 지나 아부심벨 신전 매표소에 도착하였다.
아부심벨 신전 입장에 있어 유의할 점이 하나 있다.
“Ticket”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과 긴 줄을 보고 의심 없이 줄을 섰는데,
알고 보니 입장 대기줄이었고 줄 앞쪽으로 한참 가면 입장문 좌측에 티켓오피스가 따로 있었다.
결국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한참 서있던 입장줄에서 빠져나와 다시 티켓오피스로 갔고,
다행히 우리가 입장을 할 때쯤엔 사람이 많이 빠져서 긴 대기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오전 9시경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은 아부심벨 신전의 뒷모습이고 나일강을 따라 걸으며 앞쪽으로 가면 람세스 2세 대신전과 네페르타리 소신전이 차례로 보인다.
네페르타리 소신전은 람세스 2세가 그의 아내 네페르타리를 위해 건립한 신전으로 정면의 여섯 개 조각상 중 네 개는 람세스 2세, 두 개는 네페르타리의 모습이다. 이집트에서 여왕의 조각상이 왕과 거의 같은 크기로 조각된 건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한다.
앞에 있는 람세스 2세 대신전에 먼저 들어갔다.
입구에는 시기별 람세스 2세를 표현한 석상 4개가 줄지어 있고,
두 번째 석상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졌는데, UNESCO에서 신전을 이전하면서 이것도 동일하게 복원하였다.
입구의 바로 윗편에는 호루스 신의 모습이 조각되어 마치 좌우에 있는 람세스 2세를 호루스 신이 수호하는 듯한 형상이다.
내부에는 람세스 2세의 석상과 벽화들로 가득했고, 중간중간 있는 내부 공간들은 목적과 용도는 모르겠지만 바닥을 제외한 사방에 벽화가 있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지성소를 보았다.
내부를 들여다보자 수천 년의 시간을 머금고 있는 그 신성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대신전을 나갈 땐 앙크 모형을 들고 있는 현지인이 있었는데,
강제로 앙크를 손에 쥐어 주며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앙크 사이의 공간에 해가 들어오도록 포즈를 취하라고 했다.
얼떨결에 벌어진 일이라 그렇게 사진을 찍었는데, 역시나 팁을 요구하였다.
그때는 작은 단위의 현금이 없었어서 사실대로 말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쿨하게 보내준다.
여기서 앙크는 고대 이집트에서 생명과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난 이 문양이 꽤나 마음에 들어서 앙크 모양의 반지와 알라바스터(석고)를 구매하기도 하였다.
대신전에 이어 네페르타리 소신전 구경도 마친 후 기사가 우리를 내려준 곳으로 돌아갔다.
확실히 이집트의 다른 곳 보다도 햇빛이 강렬하고 날씨가 더워서 오래 돌아다니지 못하였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기념품샵 거리도 구경하였다.
기사는 도착하기 10분 전에 연락을 남기라더니, 한참 뒤에야 연락을 보았고, 지금 가겠다는 답장을 준 이후에도 15분은 지난 후 약속 장소에 왔다. 이제는 익숙하다. 그저 햇빛이 안 비치는 그늘이나 찾아 앉아서 쉬면 그만이다.
아부심벨에서의 점심, 나일강에서 잡은 생선
이제 아스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기사가 여기서 식사를 하겠냐고 물어봤다.
내리기 전에 차에서 간단하게 조식을 조금 먹었고, 아부심벨을 구경하면서 더위도 조금 먹어서 딱히 밥 생각이 없었지만 룩소르로 가는 길에 사막 로드를 타야 해서 아스완 시내 쪽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먹을 거면 여기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룩소르로 갈 때까지 굶을 수는 없기에 결국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기사가 데려다준 식당은 마침 정전이 나서 플래시에 의지하여 메뉴판도 보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메뉴가 너무 많아서 고민을 하다가 미트요리나 이집트 전통 요리는 조금 물렸기 때문에
필라페?라고 하는 친구왈 단백질이 많은 생선요리를 하나 시켰다.
뭘 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식당 사장님의 추천을 받았는데, 나일강에서 바로 잡은 생선이라고 매우 신선하고 맛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주문하였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친구와 1개만 주문하고 셰어 하려고 했는데,
비록 한참을 기다려서 받기는 했지만 생선, 밥 전부 2세트를 주셨다.
프레젠또라고 말하셨지만 포스트잇에 수기로 적어온 영수증의 음식 가격과 산출근거를 알 수 없는 팁을 보니
아까 메뉴판에서 본 생선 1개 가격의 거의 2배는 되는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은 조용히 집어넣었다.
밥을 먹고 룩소르로 이동하기 위해 출발하였고, 중간에 콤옴보 신전도 들려서 구경하였다.
이 때는 차 내부도 너무 덥고 멀미가 점점 심해진 상태였기에 거의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차로 돌아왔던 것 같다.
나일강 크루즈 투어를 하는 승객들이 중간에 많이들 방문하는 장소여서 마침 나일강 크루즈 승객들도 관광을 하고 있었고, 8~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아이가 기념품을 팔거나 팁을 얻기 위해서 졸졸 쫓아왔다.
본인만 믿고 따라오라는 식으로 어린아이가 당차게 말하는 게 웃겼다.
룩소르로 가는 길에는 다른 기사도 동승하여 같이 갔는데, 사막 로드를 달릴 때는 둘이 얼굴을 마주 보며 얘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자율주행 차인가 착각하게 만드는 애티튜드를 보여주었다.
정말 이러다 사고 나는 거 아닐지 걱정이 되다가도 그렇게 운전을 하면서도 태평한 그들의 얼굴과 이미 멀미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버린 컨디션으로 그들의 안전불감증을 신경 쓸 힘도 남아 있지 않아서 계속해서 잠에 들었다.
나중에 친구한테 듣기로 그 사막 로드는 일차선이지만 원웨이가 아니고 반대편에서도 차가 오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서로 비켜주면서 길을 가는데, 한 번은 엄청 큰 트럭이 반대편에서 와서 우리 차가 상향등을 계속 깜빡이며 신호를 줬지만 본 건지 못 본 건지 피하지 않은 상태로 점점 가까워졌기에 친구는 정말 사고 나는 줄 알고 겁을 먹었다고 했다.
비록 그 위험천만한 상황을 목격하지는 못하였지만 별 일 없이, 무사히 룩소르에 도착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다.
하루 종일 차만 15시간 정도 타고 나서야 드디어 룩소르 숙소에 도착하였다.
룩소르는 이집트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숙소 가격이 높은 편이었는데,
굳이 좋은 숙소에 머물지 않아도 되는 친구와 나의 성향으로 저렴하지만 후기가 나쁘지 않은 호스텔을 예약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묵은 숙소 중 가장 넓고 좋은 컨디션의 방을 가진 곳일 줄은 몰랐다.
비록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었지만 어딜 가나 숙소 사장님 혹은 직원이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집트에 오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아부심벨이었지만 컨디션 이슈 때문인지, 그에 비해 감수해야 할 것(거리)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지 그렇게 큰 감흥은 얻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온 곳이었다.
이집트에 갔으면 아부심벨은 보고 돌아와야지!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차라리 아스완 시내를 더 둘러보고 누비안족들과 이야기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게 개인적으로는 더 의미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 늘 컨디션이 좋을 수도 없으며, 상상도 못 한 변수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게 여행의 단점이자 묘미인데, 별다른 사고나 문제없이 계획한 바를 이루고 왔음에 만족하려고 한다.
아스완 시내와 누비안족을 더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그 아쉬움대로 나의 아스완 여행을 살짝은 미완인 상태로 마무리 지었다.
얇은 천을 두른 박스 안에 넣어서.
은은하게 가려져 실루엣만 보이기 때문에 더 궁금하고 아름다운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