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
글을 쓰려할 때면 나는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오디오선을 연결하고 유튜브 뮤직을 열어 저장해 둔 재생목록을 튼다. 가사가 없는 곡을 모아뒀는데 근래는 전진희 님의 ‘Breathing’ 앨범을 주로 듣는다.
꾸준히 쓰다 보니 ‘씀’이 가져다준 변화가 눈에 밟힌다. 글은 읽는 이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쓰이지만, 아마 쓰는 이에게 도 흔적을 남기는 듯하다.
교회로 가는 길, ‘나를 위한 추천음악’을 재생했다. 클래식이며, 재즈며, 잔잔한 음악들이 즐비하다. 읽고, 쓰고 있는 근래에 가사 없는 곡과 가까워진 덕인지 연주곡을 모아둔 목록이 날로 풍성해지는 중이다. 말없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이야기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엄마가 줬다는 장난감을 꼭 안고 있는 동생,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가에 핀 개나리, 널어둔 옷들 사이로 흔들흔들 불어오는 바람, 그 모든 소란을 가만히 멈추어 살핀다. 좋은 글감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 온다. 화려하지 않기에 아름답다.
나는 메모장에 차곡하게 쌓아놓은 문장들을 통해 때로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는다. 그날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건네는 말과 마주하면 나는 아주 낯선 이와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날의 고민은 오늘의 위로가 된다. 그러니, 아주 슬픈 날도 적어두면 가히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 “교수님 같은 분위기네” 라던지, “진지해진 것 같아.”라고 건네는 말들이 재밌다.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모습이 바뀌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좋은 책들을 더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낮과 밤의 온도가 남다른 것을 보니 봄을 지나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한 해의 첫 계절에 더러 설레고, 기대한다. 내일은 새벽의 커튼 너머에 있으니 말이다.
우리네 삶은 때로 따뜻하고 금세 차갑기도 하겠다. 모든 날이 마음에 쏙 들 순 없다. 비 오는 날 신발이 젖어서 싫고, 눈 오는 날은 발이 미끄러져 싫다. 그럼에도 우산을 쓰고, 눈을 치워가며 조심스레 내디뎌야 않겠는가?
매 순간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기보다 나는 나에게 마음껏 솔직해볼까 싶다. 때론 화도 내고 슬퍼하며, 또 행복하고 기뻐하면서, 나의 모습으로, 참 자기의 모습으로 말이다.
봄에는 크로커스가 핀다. 들가에 핀 보라색 꽃을 보게 된다면, 방글방글 바라보다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