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쓰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쓰고 살아간다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나는 그리는 일에 무력하고, 쓰는 일에 인색해했다. 어느 날부터 글을 쓰려고 앉으면 두 문장을 이어가는 게 어색했고, 따라 그릴 사진을 찾고 있는 내가 더러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 그림을 그리고, 내 글을 쓰고 싶었으나 이렇다 할 내 모습을 찾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의식의 저면에는 ‘나는 전문가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깔려있었겠다.
친구가 생일선물로 뭘 줄까 묻자 내 그림을 달라고 했다. 그림이 충분한 선물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선 듯 주겠다 말했다. 그림을 전해주고, ‘작가님 잘해드려.’라는 말까지 전해 들었다.
이기주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그의 책인 언어의 온도에서는 사람은 저마다 ‘인향’ 이 있다는데, 내가 쓴 글이 걸어가 읽는 이에게 잔향을 선물하길 바랐다. 누구나 포착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삶에서의 장면으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글을 쓰는 걸 퍽 좋아했다.
사람의 손을 통해 뻗어나간 선은 나름대로의 생명력이 있어서 글자로, 문장으로, 때로는 그림으로 모여 저를 바라봐주는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덕분에 나는 일러스트작가가 되었다가, 마케터가 되었고 열두 동생들의 보호자가 되었다.
책상 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책을 편다. 평범 함중의 장면을 그리고, 쓰고, 살아가는 삶 나는 다시 내 나름의 장면집을 써 내려가겠다.
그리고, 쓰고, 살아갑니다.
살아갑니다.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