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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집

돌봄

by 글임

무심한 주인을 둔 탓에, 겨우내 베란다를 벗어나지 못한 몬스테라가 도저히 못 살겠다며 잎을 한사코 노랗게 만들고 있다. 날이 따뜻해지면 나아지겠거니, 내버려 둔 게 화근이었다. 통풍이 문제였나, 채광이 문제인가, 식물한테도 입이 있어서 “나 여기 아파!”라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아, 그랬더라면 집이 조용할 날이 없었으려나


돌이켜보면, 내가 식물의 표현을 공부할 만큼 사랑했더라면 잎이 축 늘어지는 일은 애초에 없었을지 모른다. ”잎이 왜 이러지, 뭐 때문에 이러는지 모르겠네. “라고 몇 번 말하고 핸드폰을 켰더니, 내 말을 그새 들었는지 식물관리 어플을 추천해 준다. 이토록 내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니, 영특한 녀석. 광고를 유심히 보는데 결국은 돈을 내야 쓸 수 있길래 서둘러 핸드폰을 덮어 버린다. ‘가만 두면 괜찮아질 거야. 이제 날도 따뜻해지는데 뭐’


며칠 후, 햇볕에 비친 초록빛을 베란다에 풍염히 쌓아주던 잎은 노랗다 못해 쪼그라들어 버렸다. 작은 몸피를 보자니 곁에 두고선 무관하게 살았던 지난날이 덜컥 미안해진다. ‘아이고, 미안해. 내가 다른 잎은 잘 살게 애써볼게.’ 이미 물러버린 줄기 끝을 떼어낸다. “미안해서 그래?” 낯빛이 희끄무레했는지, 두 손에 줄기를 들고 쓰레기통으로 가는 나를 본 아내가 알은체 해 준다. “줄기 떼고 나면 나머지는 잘 자랄 거야. 원래 잔가지를 쳐 줘야 잘 자란데.” 그녀의 따듯한 관심에 미안한 마음을 놓는다. 무관심했던 만큼, 오래 관심을 가져야지. 다짐해본다.


베란다 문을 여니 울상인 식물들이 많다. 잎을 만지고, 흙에 손을 넣어본다. 오도카니 보고 있자니, 고마운 얼굴이 떠오른다. 책을 같이 읽자며 건네준 꽃기린, 생일 축하한다며 선물해 온 몬스테라, 좋은 기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들고 온 돈나무, 아들 사는 집에 생명을 선물해주고 싶으셨던 어머니의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때로 일상이 벅차서 무기력이 여울지는 날에, 이들은 나를 돌보았다. 분홍 꽃으로, 초록 잎으로, 신선한 향기로,


돌봄은 돌아온다. 돌봄 받은 집이 때로 사는 이를 돌보듯, 돌봄 받은 고양이가 때로 주인들 돌보듯, 돌봄 받은 아이가 때로 아버지를 돌보듯, 돌보며 쓴 글이 때로 나를 돌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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