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필사하기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은 늘 산맥처럼 출렁거렸다. 겨울이면, 병영 담벼락에 걸어놓은 시래기가 토담에 쓸렸고, 포구에 묶인 배들은 밤새 바람에 삐꺽거렸다. 바람이 몰려가버린 빈자리에 밀물로 달려드는 파도 소리가 가득 찼다. 바람의 끝자락에 실려, 환청인가, 누에고치에서 실 풀려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바다에서는 언제나 그랬다. 바람이 아니라, 파도에 실려서 수평선을 건너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메뚜기떼가 풀숲에서 서걱대는 소리 같기도 했고, 먼 곳에서 쥐떼가 씻나락을 까먹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환청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또렷했지만, 들리는가 싶으면 물소리에 묻혀버렸고 몰려가는 바람의 뒤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바람이 잠들고, 달빛 스민 바다가 기름처럼 조용한 밤에도, 사각사각사각, 그 종잡을 수 없는 소리는 수평선 너머에서 들려왔다. 아마도 식은땀의 한기에서 깨어나는 새벽의 환청이 밤이나 낮이나 나를 따라다니는 모양이었다. 어둠 속에서 고개를 흔들어 그 종잡을 수 없는 소리를 떨쳐내면, 다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그 소리는 되살아났다.
포구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물길을 따라 물러설 자리가 없는 포구야말로 가장 위태로운 숙영지였다. 한바탕의 싸움이 끝나고 인적 없는 섬의 포구로 살아남은 병력을 물려서 배와 병졸들을 재우는 밤에 그 환청은 보이지 않는 눈보라로 내 마음에 몰려왔다. 그리고 식은땀에 뒤채는 새벽에 그 환청은 캄캄한 수평선 너머에서 내 피폐한 연안으로 다가오는 수천수만 직선들의 노 젓는 소리로 들렸다.
다시 귀 기울이면, 그 눈보라와도 같은 환청은 수평선 너머 대마도 쪽 바다에서만 몰려오는 것이 아니라, 압록강 물가 의주까지 달아난 조정으로부터도 몰려왔다. 사각사각사각. 환청은 압록강에서 남해안까지 반도의 모든 산맥과 강들을 건너서 눈보라로 밀려왔다. 바람 거센 밤이면 포수에 묶인 배들이 서로 부딪혔다. 나는 잠든 병졸들을 깨워 갯가로 내려보냈다. 병졸들은 선창에서 부딪히는 배들을 뭍으로 끌어올려놓았다. 바다에서 나는 늘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했다.
정유년 여름에, 경상, 전라, 충청도의 삼도 수군 연합 함대는 거제도 북쪽 칠천량 앞바다에서 전멸되었다. 그해 초봄, 나는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었다. 가덕 방면 전투는 헐거웠다. 적의 전투의지가 내 몸에 전해지지 않았다. 전투라기보다는 부지런히 잡초를 뽑는 농사일 같은 느낌이었다. 가덕 해역으로부터 함대를 철수시켜 한산 통제영 모항으로 돌아오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의금부 도사는 선착장에서 나를 묶었다. 포승은 뼈를 파고 들 듯이 억새 었다. 의금부 도사에 따르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죄목은 조정을 능멸했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조정의 기둥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서울로 가는 함거에 오르기 전에 나는 내 후임자인 원균에게 함대, 병력, 군량, 총포, 화약, 창검, 포로 그리고 행정 사항을 인계했다. 원균은 나를 실은 함거가 어서 떠나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는 실물의 수량과 보존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인수서에 도장을 찍었다.
개전(開戰) 이듬해인 계사년 여름부터 나는 한산 통제영에 주둔해 왔다. 내가 원균에게 인계한 병력과 장비는 한산 통제영에서 삼 년 반 동안 확보한 군비의 전체였으며, 조선 수군 총군비의 팔 할이 넘는 것이었다. 그 팔 할이 칠전량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그 팔 할이 불탄 널빤지와 목 잘리고 코 잘린 시체로 물 위에 흩어졌다. 하룻밤 하룻낮의 전투였다.
나중에 들으니, 적선 천여 척이 방사대형으로 날개를 펴면서 덜려 들었고, 한산 통제영에서 거제도 앞바다까지 하루 종일 배를 저어온 피곤한 군사들을 원균은 적의 방사형 대열 중앙부에 일자진(一字陣)으로 집중시켰다는 것이다. 나는 안다. 원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고 아무도 말리지 못할 무서운 적의를 지닌 사내였다. 그 사내는 모든 전투가 자기 자신을 위한 전투이기를 바랐다. 그는 전투의 결과에 돋을 것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때때로 수많은 적의 머리를 주워서 그를 달랬다. 그의 활화산 같은 적의와 분노가 날개를 펴고 달려드는 적의 방사진 앞에 장졸과 함대를 집중시켰던 것이다.
갑옷마저 잃어버린 원균은 거제도의 산속으로 달아났다. 그는 칼 한 자루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나무 그늘 아래 주저앉아서 그 뚱뚱한 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뭍까지 쫓아온 적의 칼을 받았다. 전라 우수사 이억기도 죽었고 충청 수사 최호도 배가 부서질 때 바다에서 죽었다.
함거가 통제영을 떠날 때, 격군(格軍)과 군관 들은 길을 막고 주저앉아 통곡했다. 원균이 쓰러져 우는 군사들을 채찍으로 때려서 길을 열었다. 원균은 소리쳤다.
―울지 마라. 적들이 듣겠다.
원균은 내 함거 위에 서울의 요로에 보내는 진상품 보따리를 실었다. 말린 홍어와 미역이었다.
―갈 길이 멀겠소.
―무운을 비오.
원균과 나의 작별은 그토록 무덤덤했다.
함거를 끄는 소는 아흐레 밤낮을 걸어서 북으로 갔다. 금부나 졸들은 끼니대가 되면 연기 나는 마을을 찾아들어가 먹을 것을 빼앗아왔다. 연기 나는 마을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나졸들은 다음 끼니까지 빼앗아 함거에 실었다. 의금부 도사는 심하게 길 재촉을 했고, 함거는 밤에도 이동했다. 조정은 시급히 나의 죽음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포승에 묶인 채 함거 위에서 흔들렸다.
조정을 능멸한 죄, 조정의 기둥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 나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죽음은 적벽처럼 혹 실했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문과 문초가 길지 않기를 바랐다.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나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길은 산맥의 저편으로 돌아나가 굽이친 저쪽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 그 길의 끝에 임금과 조정과 사직은 있었다. 나의 전쟁은 나의 죽음으로써 나의 생애에서 끝날 것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분명한 끝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귀 기울이면, 사각사각사각, 어두운 수평선 너머에서 내 적들이 노 저어 다가오는 소리는 또렷이 들려왔다. 함거가 마포나루를 건너 서울로 들어갈 때 나는 자꾸만 고개를 흔들어 그 환청을 몰아내곤 했다. 서울에는 봄비가 내렸고 한강 밤섬에는 안갯속에서 살구꽃이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