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게 주위에 신경을 닫아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이런 강제 스위치 off 에도 돌연 on을 시켜주는 순간들이 생기는데 이번주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병렬의 on이 있었다.
밤새 희고 말랑히, 나의 애착 구스이불처럼 포근히 내려온 눈은 삭막히 굳어진 표정에 아주 미세하게라도 미간 물결을 드리웠다. 예견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행복은 이처럼 순수하고 말갛다.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은
2025년 만다라트 계획을 세워보자는 친구의 제안을 받았다. 연꽃이 피는 모양을 뜻하는 만다라트. 거미줄처럼 이어 이어지는 목표들을 세우는 거라고 한다. 올 한 해는 무엇을 이루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 속에서 찾은 정답들은 지난 일 년 간의 나와는 다른 모습. 마치, 호박마차 앞에서 비비디바비디부! 를 외친 마법사할머니 지팡이 끝에 매달린 것 처럼 짠-하고 드레스를 바꾼 채 나타났다.
" 나 언니가 에세이 읽는 거 처음봤어." 최근 회사 후배인 수형이에게 들은 말인데, 이 말을 듣고 오히려 더 놀란 '게 눈'을 한 쪽은 나였다. 나는 원래 인문학, 고전, 에세이, 그리고 철학을 좋아했는데? 무슨 소리람. 하고 회사 책장을 들추니, 뒷 칸에 있는 것은 ‘자전거 여행, 소피의 세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요 책상 위에 있는 것은 온통 경제와 투자관련 책이었다.
내가 정의해 온 '나'라는 사람을 규명지었던 것들이 어느새 뒤로 물러나 있었구나. 조용히 뒷 칸의 책들을 챙겨 가방에 담았다. 너넨 이제 내 머리맡이 네 집이다.
새로운 포만감이다
최근 들어 혼자서 주말을 알뜰히 보내는 시간이 주어지니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사뿐사뿐히 다시 챙기고 있거늘, 한 참을 멀어져 두 손을 뻗고 무작정 데리고 와야 하는 취미들이 제법 있었다. 뭘 해야 하지?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수능 끝나고했던 것처럼 그림이나 그려." 라는 친구의 말에 갑자기 미소가 띄워졌다. 그래, 원래 내가 좋아하던 일이었는데.
그 때처럼 매일 장미를 물고 있는 해골만 그리지만 않았으면 좋으련만
단번에 스케치북과 아크릴 물감, 수채화와 만년필을 장만했다. 무작정 걸어다니는 걸 좋아하는 내게 작은 새 헤드폰도 선물해봤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해 평소에 눈독만 들이던 아이폰16을 무이자 12개월로 질러봤고(여전히 큰 돈 쓰는 건 어렵다), 향기가 기분까지 바꿔주는 걸 새로이 알게 되어 우롱차 향이 미지근하게 나는 향수도 새로 들였다. 멈춰졌던 삭막이 번지르르한 소망을 담고 있는 모양새로 살포시 모양 바꾸고, 넙대대하게 궁둥이를 흔든다. 새로운 포만감이다.
그리고 나서 깨달은 것 한 가지, 나는 아직도 단단하지 못하고 메마른 상태이며 취약하구나. 보호 갑옷을 입어야만 상처를 수용하지 않고 그제서야 튕겨낼 수 있는 아주 조막만한 사람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이기려고 하지 말자. 누구의 말마따나 누구의 탓도 하지 말되, 상대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의 구분을 지으면 된다. 난 나의 일을 하면 된다.
도망치는 것은, 도움이 된다.
" 왜 그렇게 해야만 했어? " 라고 닿지 않을 돌멩이를 던지는 것보다, " 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구나." 로 나에 대한 정의를 한 줄 더 써내려가는 것이 이롭다. 특히나 지금처럼 박약한 상태에선 더 그렇다. 간혹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이번 주말은 카페에서 잔잔히 글을 쓰다 더러 행복해졌고, 더러 불안해졌다. 그러다 '불안'은 뭘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불필요하게 많은 사고들이었다. 특히 '만약에'로 시작되는 일반적이면서도, 내 감정을 중화시키려하는 문장들은 오히려 내가 해가 되고 있었다.
계속해서 어디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혹은 아예 인과관계라는게 존재하지도 않았을 원인과 결과의 실타래를 찾으려고 발버둥을 쳐보아도 광활한 우주 속에 망원경 하나 든 과학자의 꼴이다.
여전히 내가 알 수 없다. 물어도 알 수 없고. 정교하게 끊어진 실타래를 이을 수 있는 어떤 설명이 술기운을 감싼채 들어온다 해도 섭씨 1,800도로 달궈진 후 차게 식은 프레임을 19도의 주류 따위가 바꿀 수 있을까. 담아지고 흘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