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는 산수유가 피었다고 하지만 꽃샘추위가 싫어 두터운 잠바 걸치고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랑하지도 않은 아버지가 불현듯 나타나 눈은 흐려지고 마음이 갇혀 일터 정거장을 놓쳤습니다.
바보같이 눈망울이 젖고 콧등이 짠해 오는 순간이 정지시키고 싶은 시간이었는지 살아 계신 어머니를 챙기지 못하면서 넋두리 펴는 염치 廉恥는 여전한 자식입니다.
삶이 무언지 모르는 초등학교 시절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병상에서 일어나 씨름판에 우뚝 섰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금호동 단칸방 월세집에서 양동이 몇 개 놓고 떨어지는 빗물 잡느라 밤을 뒤척이는 모습을 못 본 척 아무렇지 않게 아침을 맞는 기억도, 가난함을 눈치 못 채게 등록금 제일 먼저 챙겨 주신 삶의 잣대도, 사랑에 묻혀 건방져 버린 자신이 오늘따라 부끄러워집니다.
금호동 산 14번지 꼭대기 무허가 주택에서 회사 빨래를 도맡아 노동하여 삶의 근간 根幹을 만드신 깊은 정신도 드러나는 자존심에 마음 닫힌 내색을 접었던 그때가 오늘 아버지의 나이에
아버지처럼 살았나? 치열 熾烈하게 살았나? 전부를 던졌나?
부끄럽습니다. 산수유 지고 벚꽃, 개나리, 진달래, 목련 흔적이 남아 있는 다음 달 큰절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