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많이 욕 먹은 여자

<풀밭 위의 점심식사> 속 빅토린 뫼랑을 기억하며

Dec 19. 2024

19세기 프랑스에서 성공한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살롱전에 입상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1863년과 1865년에 연이어 화단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화가가 있다. 물론 나쁜 의미로.

1863년에 공개된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살롱전에 전시를 거부당해 이른바 '낙선전'에 전시되었는데, 마네는 당시 부르주아들의 퇴폐한 일상을 잘 차려입은 부르주아 신사들과 알몸의 여성이 풀밭에 앉아 있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그려냈다.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의 앞에는 벗어놓은 옷가지가 보이고 원경의 여성도 속옷을 입은 채로 몸을 씻고 있다. 옆집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여성이 접힌 뱃살을 드러내며(저 정도 뱃살은 모두 있지 않나!) 관람객을 빤히 바라보며 '나는 네가 지난 휴일에 한 짓을 알고 있다.' 같은 눈빛을 쏘고 있으니 그림을 보러 온 신사들이 지팡이나 우산으로 그림을 찔러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작품은 전시장 높은 위치로 옮겨지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에두아르 마네. 1863

당시에 여성의 누드는 비너스와 같은 여신의 몸을 빌려 이상적인 미로만 표현될 수 있었는데 마네는 이를 완전히 뒤엎는 방식으로 그려냈다. 특히 이 작품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두 작품을 살펴보자.

<전원음악회> 티치아노, 1508~1509

이 작품은 두 명의 남성이 전원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그 옆에 음악의 영감을 상징하는 뮤즈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티치아노는 인간과 초자연적 존재를 자연스럽게 통합하며, 옷을 잘 차려입은 두 남성과는 대조적으로 나체의 두 여성을 그렸지만 여성들은 남성과 상호작용하기보다 고요히 물을 따르거나 시선을 자연스럽게 흩뜨리고 있어,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이상적 조화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알몸은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음악의 요정(?)인 뮤즈로, 즉 예술적 영감과 자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라이몬디가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을 본떠 제작한 동판화, 1534

라이몬디가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을 본떠 제작했다고 하는 동판화인데, 특히 오른쪽 하단 부분에서 볼 수 있는 나체의 여신들과 포즈는 마네가 여성의 구도와 태도를 설정하는 데에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2년 후인 1865년, 마네는 <올랭피아>를 살롱전에 전시하며 다시 한번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번에는 그림 속 여성의 포즈와 배경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비슷한 자세를 취한 이 여성은 여신을 떠올리게 하는 누드와 자세를 취했지만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현실 속 매춘부를 묘사한 것이었다. 우선 그림 제목인 <올랭피아>는 당시 매춘부 여성들이 흔히 예명으로 사용하던 이름이었고, 흑인 하녀는 손님에게서 도착한 꽃 선물을 가져다주고 있다. 목에 둘러져있는 초커도 당시에는 매춘부들이 즐겨하는 액세서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 속 그녀는 당당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발치에는 매춘부를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관객들은 이 작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마네의 도발적인 표현 방식은 여전히 큰 논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