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통을 넘어선 붓질: 역경을 예술로 승화한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by Jieunian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미투(MeToo)’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성폭력과 권력 남용을 고발하는 이 운동은 예술계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사실, 과거 예술계에서도 이러한 불상사는 비일비재했으며, 여성 예술가들은 차별과 억압을 견디며 자신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왔다. 오늘은 개인적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성폭력의 상처를 그림으로 외치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3)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로, 극적인 명암 대비와 강렬한 감정을 담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작품 속 강한 여성상에는 그녀가 겪은 개인적 아픔이 녹아 있다.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여성으로서 성공한 예술가가 되기에는 시대적 제약이 많았지만,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아버지의 후원으로 그림을 배웠다. 아버지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당대 유명한 화가로, 카라바조와도 친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18세 때 아버지의 동료였던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이후 젠틸레스키와 그녀의 가족은 타시를 고소했지만, 법정에서 그녀는 오히려 수치심과 모욕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에는 성폭행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와 결혼하도록 강요받는 경우가 많았으나, 젠틸레스키는 재판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보였다.


재판에서 그녀는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해 극심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며 성폭행의 상세한 내용을 공개적으로 진술해야했다. 법정에서의 쟁점은 타시가 그녀를 강간했느냐가 아닌, 젠틸레스키가 정숙했는가였다. 이는 피해자인 그녀가 오히려 비난받는 구조였으며, 마치 그녀가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이러한 재판 과정은 미투 운동이 활발한 현대에도 여전히 피해자가 의심받는 현실과 연결되며, 젠틸레스키가 이후 자신의 분노와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원동력 중에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의 대표작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Judith Slaying Holofernes, 1614-1620)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유디트는 성경의 외경 중 유딧서(Book of Judith)에 등장하는 인물로, 전쟁에서 패배할 위기에 놓인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시리아 군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그의 목을 벤 여성으로 16세기부터 이탈리아를 비롯해 북유럽에서까지 상당한 인기를 끌던 주제이다.(유대판 논개랄까.)

젠틸레스키_유디트.PNG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614-1620



이 작품에서 유디트는 시녀와 함께 힘을 합쳐 적장의 목을 베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그녀의 칼을 쥔 손에는 단호함과 분노가 서려 있으며 굳게 다문 입과 찌푸려진 미간에서 굳은 결심과 의지가 엿보인다. 같은 주제를 다룬 남성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의 작품과 비교하면,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더욱 능동적이고 강인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성경 속 이야기가 아니라, 젠틸레스키가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저항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유디트_카라바죠.jpg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카라바조, 1598


젠틸레스키가 그린 또 다른 대표작으로 <수산나와 두 장로(Susanna and the Elders)>를 꼽을 수 있는데, 이 또한 성경에 나오는 수산나의 이야기를 그린 내용이다. 유대인 부부 요아킴과 수산나의 이야기인데, 요아킴은 그 시절 유명 인사로 그의 집에는 많은 많은 방문객이 드나들었고 그 중에는 재판관인 두 원로도 있었다.

그들은 수산나가 정원에서 목욕하는 것을 보고 접근하여 성관계를 강요했는데, 수산나가 이를 거부하면 젊은 남자와 간통했다고 거짓 고발하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수산나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억울한 누명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자 두 원로는 수산나가 젊은 남자와 간통했다고 거짓 증언을 했고, 이에 따라 수산나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수산나는 하나님께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며 기도했고, 하나님은 어린 다니엘에게 영감을 주어 수산나의 무죄를 밝히게 하였고, 다니엘은 두 원로를 따로 심문하여 그들의 증언이 서로 어긋남을 밝혀내, 결국 수산나는 누명을 벗고 두 원로는 율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진다는 이야기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성폭행과 협박, 무고죄의 현장이지만 과거의 있는 자들에게는 여성의 누드를 합법적으로 관음할 수 있는 이야기 소재였다.

수산나_틴토레토.PNG 틴토레토의 작품
두 작품 모두 루벤스가 그린 작품


틴토레토가 그린 수산나는 오히려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유혹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루벤스의 수산나는 겁먹은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있다. 희생자인 수산나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은 채 두 노인을 유혹하는 여자, 때로는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모습으로 재현되었던 것이다.


425px-susanna_and_the_elders_(1610),_artemisia_gentileschi_vrhkdtn.jpg <수산나와 두 장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반면 젠틸레스키의 수산나는 불쾌함과 공포가 명확히 드러나는데 경직된 다리 근육과 두려움과 혐오가 교차한 표정이 생생하다. 양팔과 손도 쭉 뻗어 두 노인을 피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수산나는 젠틸레스키의 또다른 페르소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화가로서의 젠틸레스키의 생애는 Long story short, 찰스 1세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는 등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59세에 눈을 감은 젠틸레스키는 어느 날, 그림을 의뢰한 고객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시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관련 기사가 있어 첨부한다. https://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3765


keyword
이전 08화예술은 권력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