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paganda 천재 Jaques-Louis David
예술은 늘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때로는 아주 노골적으로 권력을 말한다.
2024년 겨울 파리 루브르를 방문했다. 총 38,000점을 소장하고 있는 이 거대한 박물관은 소장품 1점 당 1분씩 관람해도 모든 작품을 살펴보는데 약 26일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로 바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거대한 사이즈로 관람자들을 압도하는 그림이 있다.
가로 9.8미터, 세로 6.2미터의 초대형 캔버스에 펼쳐진 이 장면은,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관을 쓰고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우는 순간을 극적으로 연출한다. 전통적으로 프랑스의 왕들은 랭스 대성당에서 교황이 직접 왕관을 씌워주는 대관식을 거쳐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대관식 당일 교황이 왕관을 씌우려 할 때 갑자기 벌떡 일어나 교황이 든 관을 스스로 써버렸다. 유럽을 제패한 황제로서 스스로 정통성을 부여한 순간인 것이다. 다비드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이 부인인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워주며 그의 권위를 한층 더 드높이는 장면을 캔버스에 담아 나폴레옹이 원하는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역할을 뺏겨버린(?) 교황 비오 7세의 힘없는 표정도 보는 재미가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잘 알려져있지만 프랑스 혁명 - 나폴레옹 제국 - 왕정 복고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에서 예술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왕정시대 루이 16세의 궁정화가였던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 시 자코뱅당의 일원으로 국민공회 의원을 지냈으며, 혁명가 마라의 죽음을 성인처럼 그린 <마라의 죽음>은 정치적 순교자 이미지의 상징이 되었다. (이 그림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은데 다른 글에서 다루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혁명의 종말과 함께 다비드는 새로운 권력자인 나폴레옹에게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혁명기의 '순결한 시민 영웅' 대신, 이제는 '제국의 위엄'과 '황제의 카리스마'를 그려내는 화가가 된 것이다.
다비드의 뛰어난 '브랜딩' 능력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1800년 이탈리아 침공을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그렸는데, 백마 위에서 당당하게 전장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영웅' 그 자체이다. 그림 왼쪽 아래에 '보나파르트'라는 나폴레옹의 성이 새겨져 있고, 과거 알프스를 넘었던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과 신성로마제국의 샤를마뉴 대제 등 전설적인 영웅의 이름이 흐릿하게 새겨져 있어 그 장면 자체로 뛰어난 영웅들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시각화하며, 나폴레옹을 새로운 신화로 만들어나가는 연출이다.
실제 나폴레옹은 키도 작고 안전을 위해 백마가 아닌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고 한다. 다비드가 추운 날씨에 덧입은 방한복과 모자, 현실감 있는 자세, 긴 여정으로 지친 표정으로 회색 노새에 앉아 있는 모습과 같이 현실적으로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면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비드의 그림은 정치적 프로파간다 였다면, 델라로슈의 그림은 역사화의 탈신화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늘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때로는 노골적으로 권력을 말한다. 루브르에서 마주한 거대한 그림들은, 그 시대가 어떤 이미지를 꿈꿨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