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자화상
한 남자가 자신만만한 자세로 나를 마주 보고 있다. 고급스러운 털옷을 걸친 그의 모습은 성공과 풍요를 드러낸다. 머리에는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모자를 썼으며, 한 팔은 정면의 나무 받침(?) 위에 살짝 걸쳐두었다. 만약 그림을 감싸는 갈색 혹은 황금색의 액자가 둘러져 있다면 착시를 일으켜 그림 속에서 나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어오는 느낌일 것 같다. "내가 제일 잘 나가."
백발로 변해버린 노인이 있다. 젊은 시절의 자신만만한 눈빛은 옅어진 듯하다. 피부는 거친 붓터치로 그려져 있어 나이의 흔적과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코는 추위에 시달린 듯 붉고 부어 있는 듯한 표현으로, 그의 고난과 인생의 역경을 연상시킨다. 눈에 띄는 것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자신을 지탱하듯 조용히 내려놓은 자세인데, 삶의 굴곡을 받아들인 뒤의 평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렘브란트의 삶은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번영과 몰락을 반영한다. 그는 아주 인기 있는 초상화 화가였는데, 동시대의 화가들이 그렸던 초상화와 그의 초상화를 비교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는 당시 동일한 주제로 그렸던 집단 초상화와 비교해 개개인의 개성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어 그의 뛰어난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강의자, 수업에 집중한 사람, 시체를 내려다보는 사람, 딴짓(?)을 하는 사람 등 여러 인물들이 다양한 자세와 표정으로 표현된 렘브란트의 초상화에 비해 모든 인물이 정면을 쳐다보는 다소 딱딱한 구도. 돈을 냈으니 내 얼굴도 나오게 하쇼~라는 집단 초상화 의뢰자의 요구는 충분히 충족시킨 것 같다.
렘브란트는 지방 유력 가문의 딸이었던 사스키아와 결혼하며 더더욱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는데, 당시 일반 노동자의 수십 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13,000 길더에 달하는 대저택을 구매하기도 한다. 당시 네덜란드 평균 집값이 1,200 길더 가량이었다고 하니, 평균 집 가격의 10배 이상이 넘는 고급 저택이다. 렘브란트에게는 고가의 초상화 주문이 밀려 있었고 (약 500 길더) 수입 수준을 고려했을 때 충분 히 구매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저택에는 여러 개의 방과 큰 작업실이 있었는데 사치스러운 가구와 장식들이 가득했다. 그림 연습을 한다며 조개껍데기, 로마 시대의 동전, 동아시의 도자기 등 고가의 장식품을 수집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부유한 생활은 지속되지 않았다. 그의 명성은 1640년대에 정점에 달했으나, 이후 작품 스타일의 변화와 비평가들의 혹평, 그리고 1642년의 걸작 <야경>에 대한 혼란스러운 반응 등으로 인해 인기가 급격히 하락했다. 이와 함께 무리한 투자와 과도한 지출로 인해 렘브란트는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저택 구매 시 대출을 통해 구매했는데 당시 렘브란트의 수입을 고려하면 쉽게 갚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인기하락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며 결국엔 파산하게 된다.) 결국 1656년 파산을 선언하게 된다. 특히 사스키아는 사망하면서 그의 이러한 낭비벽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한 번에 유산을 남기는 대신, 매년, 조금씩 아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유산을 남겼다.
같은 사람이 남긴 30대와 60대의 자화상.
가장 찬란한 성공을 누리던 시기와 인생에서 가장 초라했던 순간.
많은 이들은 자신이 가장 빛났던 모습만 남기고 싶어 하며, 과거의 영광 속에 갇혀 살아가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극복 중이라고 믿는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변해있을지, 자신만만하고 사치스러웠던 젊은 시절의 렘브란트는 알았을까. 노년에 이르러 젊은 시절의 자화상을 옆에 두고 비교해 본 적이 있을까?
그의 삶의 굴곡과 이야기를 알기 전까지는 늙어버린 모습이 처량하게만 느껴졌고, '나이 듦'에 대한 공포심까지 느꼈었다. 하지만 자신의 화려했던 시절만 기억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모습도 담담히 마주하고 작품으로 남길 수 있는 그 용기도 '늙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얼굴에 스토리가 담긴 늙은 모습의 자화상에 더 눈길이 간다. (하지만 63세의 자화상은 엽서로 팔지 않았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