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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by Jieunian

얼마 전 재미있게 본 2023년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드라마 속 연쇄 살인마는 살해 현장에 성냥갑과 함께 쪽지를 남겨 놓는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고.

이 문구는 독일 작가 슈테판 볼만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3세기부터 21세기까지 독서의 역사를 그림으로 풀어낸 책이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제목만으로도 그 의미가 가슴에 와닿는다.


"책 읽는 여자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녀들은 좀 더 영리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또 단지 이기적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녀들은 혼자서도 아주 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혼자 있는 것, 자신의 환상과 작가의 환상만이 만나게 되는 것이 독서가 주는 커다란 기쁨 중의 하나다. 가사, 남편, 경우에 따라서는 애인조차 잊어버린다. 오직 책만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엄마 순애는 전교 1등에 취미로는 소설을 쓸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아이지만 당시 시골에서 흔히 그래왔던 것처럼 남동생의 교육을 위해 본인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결혼 후에는 남편 뒷바라지, 집안일, 자녀 교육 등에 시달려 그 좋아하는 책 한 장 읽을 여유가 없지만, 자신의 딸만큼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독서할 수 있도록. 설거지는 기꺼이 자신이 감당할 어머니로 남는다. (드라마 스토리는 큰 반전이 있다. 꼭 한 번 보길!)


독서는 소수의 특권에서 모든 이의 취미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종교개혁 시기 인쇄된 성경은 성직자의 독점에서 벗어나 누구나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책으로 변화했다.




19세기 북유럽 화가들이 인상주의를 배워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빛이 적은 곳에 살던 북유럽 화가들은 프랑스 인상주의의 화려하고 밝은 색채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들 고유의 차분하고 내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9월 도쿄 우에노 미술관에서 만난 빌헬름 하메르스회이의 작품 스트란데가 30번지 실내. 그림 속 여성은 혼자만의 방에서 집중하고 있다. 그녀가 책을 읽는지, 편지를 쓰는지는 모호하다. 하지만 그녀의 고요한 집중은 누구도 쉽게 말을 걸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책 읽는 여자는 자기만의 세상을 가진다.



올해 5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 국립 미술관 컬렉션'에서 만난 Laurits Andersen Ling의 <At Breakfast>. 북유럽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왜 이 엽서를 샀냐는 물음에 "제 추구미예요"라 답했는데, 이 그림 속에 비치는 여성의 고요하고도 강인한 내면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책 읽는 여자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자기만의 방. 그 안에서 피어나는 고유한 힘은 시대를 초월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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