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테르메르호의 마지막 항해> 윌리엄 터너
영국 20파운드 지폐에는 영국인들이 사랑한 화가, 윌리엄 터너와 그의 대표작인 <전함 테르메르호의 마지막 항해>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마주하였을 때는 희끄무레하고 명확하지 않은 색채와 윤곽 표현에 다소 당황스러워지는데, 인상주의의 시초가 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를 처음 마주했던 19세기 프랑스 사람들의 당혹감이 공감되기도 한다.
테르메르호는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 해군과 맞서 영국의 승리를 이끈, 영광의 시기를 이끈 유명 전함이다. 40여 년이 지나 노후된 이 범선이 퇴역하게 된다는 얘기를 듣고 터너는 이 전설적인 전함이 철거를 위해 항구로 예인 되는 마지막 순간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림 속 테르메르호는 황금빛 석양 아래로 조용히 끌려가고 있다. 작은 증기선에 의해 끌려가는 웅장한 범선은, 과거의 영광과 시대의 쇠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Circle of life: 영광과 쇠락의 순환
과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물리치고 새로운 해양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어서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하며 영국을 패권국으로 이끈 테르메르호이지만 산업혁명의 새로운 기술 발전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런데 그림 속 증기선은 기술 혁신과 산업 발전의 상징물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영국에서 발명된 것 아닌가! 이 작은 증기선은 일견 과거의 영광을 밀어내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영국에서 만들어낸 성취의 결과물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동시에, 영국의 기술력과 혁신에 대한 자부심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듯도 하다.
제목(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o to be broken up, 1838)을 보면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지만, 배경의 일렁 일렁한 햇빛이 떠오르는 태양인지 저물어져 가는 일몰의 장면인지는 보는 사람의 해석에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터너의 색채와 빛의 독창적 사용은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클로드 모네는 터너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후 인상주의의 탄생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초창기 인상주의는 무시와 조롱을 받았지만, 세상의 찬사를 받기까지는 채 50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삶은 인생의 어디쯤 와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