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말(馬)관리 · 훈련사(Pferdewirt)_신현준]
"사람들은 독일의 업무 환경에 대해 '워라밸'을 중시한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제가 '워라밸'을 중시하는 순간 제가 책임지고 있는 말(馬)들이 힘들어져요. 그래서 이 부분을 포기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마음이 있어야 말훈련사를 시작할 수 있어요. 살아있는 것을 책임진다는 건 이런 부분 아닐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말은 진정 매혹적인 동물이며, 자연의 기계적 걸작이다." 실제로 말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가진 빼어난 자태와 위용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생물을 길들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적어도 제 개인적인 경험상 그렇습니다. 낯설면서도 가까이 두기 어려운 존재이죠. 특히 한국에서는 말을 접할 기회가 드물고, 그와 관련된 산업이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한 드라마에서 발생한 '말'의 불행한 죽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 촬영 중, 와이어를 이용해 일부러 말을 넘어뜨린 과정에서 말은 심하게 고꾸라졌고, 함께 떨어진 스턴트 배우도 크게 다쳤습니다. 촬영 후 1주일이 지나서 말은 결국 죽었고, 이 사건은 해외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며 CNN과 같은 주요 방송사에서도 보도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물의 목숨이 인간의 목숨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등한시돼서도 안 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에서 나온 인용구를 끝으로, 독일의 말 훈련사 신현준 씨를 소개합니다.
"자연은 모든 인간의 친구이자 교사다."
안녕하세요. 독일 Hengststation Ferienhof Stücker라는 회사에서 말관리 독일 말(馬) 관리 · 훈련사로 일하고 있는 만 28 신현준이라고 합니다. 근무는 올해로 10년 차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 승용마 기준으로 150~170 마리 정도가 있는데 말 관리에서부터 교배종 관리, 승마가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대부분의 과정들을 책임지고 근무하고 있습니다.
https://www.ferienhof-stuecker.de/
그냥 말이 좋아서 시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말을 좋아하게 된 첫 경험은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부모님께서 "승마에 관심이 있니? 배워볼래?"라고 물어보셨고, 방학 동안 말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말에 빠져들었고, 결국 한국의 **승마 전문 산업고등학교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어요.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하지만 그 학교에 입학한 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고, 상담 중에 유럽식 승마 산업을 경험할 수 있는 아우스빌둥 프로그램을 권유받았습니다. 그 기회를 통해 독일로 유학을 오게 된 것 같아요. 아마 독일에서 이 분야를 선택하고 그 시기에 시작한 한국인은 제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시기라 어려움이 많았어요. 다행히도, 예전에 독일에 오셨던 한국인 분이 계셔서 번역이나 통역을 도와주시고, 이메일 지원이나 인터뷰 준비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죠. 그 당시, 2012년만 해도 독일에서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에게는 제 존재가 꽤 신기한 일이었을 거예요. "한국 사람이 와서 아우스빌둥을 한다?"라고 의문을 가졌겠지만, 그래도 한 달 동안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그 기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배우며 신뢰를 얻었어요. 이후 면접을 보고, 결국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업계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인데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종전 후에 지리상 독일이 정중앙이었나 봐요. 그래서 흩어졌던 말들이 막 섞여요. 섞여서 여기 머무르게 되면서 사람들이 마장마술이나 장애물 이런 거를 많이 훈련을 시켰나 봐요. 그래서 능력이 좋은 말들은 투자 목적으로 기르고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가축 개념으로 길렀다고 이야기들을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독일사람들은 7,8세부터 말들을 타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시다시피 독일은 승마의 전통이 깊은 나라예요. 올림픽에서 승마 종목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나라가 독일이기도 하고요.
어려운 점은 개인 시간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일단 월요일부터 토요일 점심까지 근무하는 게 제 계약서에 명시 돼있는데 동물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거의 365일을 붙어 있는 셈이죠. 주말에도 일을 많이 하고, 일요일에 누군가 말이 아프면 돌봐야 하기도 하고, 승마나 라이선스 순발 품평회 같은 행사들도 많아서 준비하느라 일요일에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노동법상 휴가도 명확히 준수되고 있고, 급여도 괜찮은 편이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만큼 이 일이 너무 사랑스럽고, 계속 미쳐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보람 있었던 경험은 수습생 시절에 경매가 있을 때, 경매에 나갈 말들을 제가 관리하는 일이었어요. 그 친구들이 잘 팔려서 유명한 선수들에게 훈련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정말 뿌듯했죠. 몇 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TV에서 활약하는 그 말들을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말이 의외로 정말 똑똑합니다. 개보다 똑똑하다고 해요.
처음에 두 살짜리 말들이 초원에서 들어오면, 진짜 난리가 납니다. 그 아이들이 다 자기가 해본 걸 하고 싶어 하죠. 다들 이전에는 혼자서만 지내왔으니까요. 처음에는 사회화가 잘 안 되기도 하고, 대들기도 하는데, 그 초반에 잘 잡아줘야 해요. 그렇게 운동을 하면서 점차 몸이 풀리고 힘들어지면, 점점 차분해지죠. 그러면서 나중에는 잘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혈통이 좀 드센 말들은 끝까지 그런 성격이 남아 있고, 처음부터 잘 배우는 말들은 금방 잘 따르게 돼요. 저는 일을 하면서 아직 차인 적은 없어요. 앞발로 밀치는 경우는 있었는데, 뒷발로 차는 일은 없었고, 말을 타다가 떨어진 적은 있지만, 크게 다친 적은 없어요.
저희가 훈련시킨 말들은 보통 7월에 처음 와서, 5개월 정도 지나면 혼자서 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두 달 정도 동료와 함께 기초 훈련을 하죠. 그 정도 시간이 지나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돼요.
훈련할 때는 그 말이 나를 무서워하는지, 아니면 대들려고 하는지를 알아보는 게 중요해요. 그런 드센 말들은 첫날, 이틀 안에 기선 제압을 해야 해요. 채찍을 쓸 수도 있고,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죠. 그걸 잡아야, 말이 사람이 들어오면 "이 사람이 나보다 우위에 있구나"라고 인식하면서 조금 긴장하게 됩니다. 말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그걸 잘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일반적인 승마장을 예로 들면, 지금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배울때 기간중에서는 마주가 와서 말을 타려고 하면 보통 개인 승마장들이 서비스업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돼요. 마주가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말은 그 시간에 맞춰 준비가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마주가 12시에 온다면 그 시간까지 말을 준비해 놓고, 마쥬는 와서 타고 내리면 되고, 말 준비부터 관리까지는 아래 직원들이 다 해줘요. 마방까지 다시 데려다주는 일도 직원들이 처리하죠. 그런데 여기 독일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없어요. 보통은 말이 개인적으로 관리되니까, 말을 준비하는 것도 본인이 해야 하고, 타고난 뒤에도 말의 관리까지 다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런 차이가 비용에서도 큰 차이를 만들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말 타는 것이 사실상 더 비싼, 귀족 스포츠처럼 느껴지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서비스를 받지 않아도 비용이 덜 드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한국은 말 볏짚이나 풀, 건초를 생산할 수 없어서 다 수입해야 한다는 거예요. 건초는 수입을 하고, 마방 바닥에 깔리는 톳밥 같은 것은 한국에서 구매하는데, 그게 싸지만 건초는 가격이 비싸요. 이렇게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결국 가격에 영향을 주게 되죠. 독일은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근처에서 필요한 것을 바로 구할 수 있어 가격 차이가 나고, 한국에서는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독일에서 말 운영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말 운영하는 것이 더 비싸지죠.
또 다른 점은 한국은 초원이 부족하고, 말들이 먹는 풀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어요. 제주도 같은 곳에는 초원이 있지만, 돌이 많아 말들에게 좋지 않죠. 그래서 한국에서 말에게 적합한 풀을 수입해야 하므로, 그로 인해 가격이 오르고, 말들에게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요.
승마와 관련해서, 한국은 땅 크기가 작다 보니 말을 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방목하는 게 어렵고, 대부분 승마장들이 그런 공간이 없어요. 말들은 계속 마방에 갇혀 있거나, 잠깐 타기 위해 나와서 돌아가곤 해요. 하지만 말은 움직여야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24시간 마방에 갇혀 있거나 잠깐만 나오는 것만으로는 건강에 좋지 않아요. 스트레스가 쌓이고, 결국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반면에 독일은 워킹 머신이나 패독, 초원에서 뛰어노는 방식으로 말을 자주 운동시키고, 스트레스를 풀어줘요. 한국은 이런 시스템이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 안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승마 관련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 여기 독일의 승마 학교로 현장 체험 학습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어요. 만약 그런 학생들이 진짜 독일에 관심이 있고, 졸업 후에 오는 친구들이 많아지면, 한국에서 승마와 관련된 일이 좀 더 알려지고, 더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3년에서 4년 정도 뒤에 기회가 된다면, 제 승마장을 임대하거나, 승마장의 마방을 활용해 손님을 받아 훈련을 맡기고, 라이선스 대회를 준비하는 시스템을 차려보고 싶어요. 그게 시작이 될 것 같고요. 추가적으로 한국에서 손님이 와서 독일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하면, 한 달 정도 훈련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이 와서 훈련하는 동안 레슨을 해주거나, 서류 작업을 해서 독일 대회에 나갈 수 있게 준비해 주는 거죠.
그리고 저는 아우스빌둥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MEISTER(장인) 자격은 없지만, 그런 방향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단기적으로 한 달을 배우고 가는 게 아니라, 3년 정도 독일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MEISTER KLASSE는 유럽 내에서 인고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꿈을 펼치고 있는 한인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