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고 영원한
루이즈 부르주아 ; 덧없고 영원한
~ 2026. 1. 4. 호암 미술관
이번 전시 <덧없고 영원한>은 부르주아의 생애를 아우르는 11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제목은 작가의 글에서 따온 것으로, 심리적 긴장이 담긴 그의 작업은 남성과 여성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동일시의 변증법 속에 위치시킨다.
부르주아의 많은 작품은 통과의례를 겪는 어린 소녀의 관점에서 펼쳐진다.
부모와 관련된 여러 감정과 두려움, 불안과 갈등은 고정된 심리구조를 이루며, 이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투영되어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현재의 경험과 충돌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기억, 사랑, 두려움 그리고 버려짐이란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주제들이 내포된 부르주아의 70년에 이르는 작업들이 이번 전시에서 보여진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났던 2000년 가을, 부르주아의 <기억의 공간> 전의 인상은 강렬했다.
‘여성’ 조각가라는 타이틀이 그랬고 성적 모티브, 여성의 신체가 핑크빛 천으로 꿰매어져 해석된 모습들, 모성에 대한 증오인 듯 애정인 듯 헷갈려 보이는 작품들. 강렬했고 이미 70대인 그때도 너무 멋졌다.
간간이 부르주아의 작품을 보았지만, 오랜만에 초기작부터 말기까지 잘 모르던 부르주아의 작품들 모두를 볼 수 있었다.
호암미술관 도착해서 매표소에서 살짝 뒤돌아 가면 멀찌감치 나무와 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마망>이 서 있다.
볼 때마다 압도하는 느낌에 헉! 하며 보게 되는 <마망>. 저 멀리 나무 사이에 있는 거미는 또 다른 신비로움까지 더해진다.
안개가 낮게 깔린 흐린 날씨에 숲 속에 당당히 자리 잡은 모습은 마망의 당당한 위엄과 동시에 자연을 그대로 포용하는 느낌이 들어 갤러리 안이나 건물 사이 야외에서 보던 압도되는 엄숙함이 느껴지는 익숙한 <마망>의 또 다른 모습이었고 새롭고 아름다웠다.
미술관 앞 야외에 <아이벤치>라는 조각작품이 있다. 살짝 앉아서 저 멀리 호수와 산을 바라볼 수 있고, 벤치의 eye는 미술관을 또랑 한 눈빛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반기는 작품은 천장에 매달린 <커플>이다.
전시의 시작에서 보이지만, 전시의 마지막이기도 한 <커플>은 2003년작으로 모성과 부성을 하나로 아우르려는 부르주아의 후기 커플 모티브 작업 중 하나이다.
본격적인 전시 시작의 첫 작품은 초기작 <도망친 소녀>이다.
<도망친 소녀>는 소녀가 단순히 무언갈, 상황을 피해서 도망을 친다기보다 스스로 오랜 시간 생각하고 판단해 떠나가는 소녀의 모습처럼 보였다. 여리고 어딘가 불암함도 보이지만, 그녀의 그 불확실한 판단이 한 편으론 결연해 보였다. 불안함을 가진 여린 소녀가 아마 작가 평생의 내면이었을 거다.
영화도 책도 그림도 유명한 작가의 초기작은 그만큼 새로운 감동이 있다. 후에 유명해지는 작품들과 다른 어설픔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떠한 욕망이 쌓여져 막 분출되는 에너지가 작가의 가장 솔직한, 거르지 않은 내면이란 생각도 든다.
<성 세바스티엔느> 성 세바스티아노의 여성형. 성 세바스니아노(성 세바스찬)의 그림- 특히 유명한 만테냐, 루벤스, 귀도 레니 등-은 건장한 아름다운 남성의 몸으로 어딘가 성스러움을 가장한 관음과 에로틱함이 느껴지는데, 여성으로 치환한 마치 심장 같은 몸뚱이에 못이 박힌 모습은 화살이 박히고도 너무 숭고하게 무표정으로 있는 성 세바스티아노의 그림과는 다르게 성스럽지 못한 실제적 아픔이 느껴졌다.
<꽃>과 <탄생>.
핏빛 붉은색이 드러내는 여성.
그것은 대다수의 여성들이 공감할 다달이 맞이하는 공포와 그것이 의미하는 생명에 대한 공포도 느껴진다. ‘엄마‘라는 주어지는 이름-사회적인 여러 가지 시선, 은근히 압박하는 규율-전에 ’나‘가 갖게 되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번지는 듯한 붉은 드로잉 선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한 없이 아름다울 수 없는 꽃이지만 그 앞에 가위에 꽂힌 몸뚱이처럼 아프게, 아름답게 보여진다.
오랜만에 루이즈 부르주아는 그랬다.
전보다 더 깊은 공감.
각자가 갖는 경험치와 내면의 모습은 다르지만, ‘여성’이기에 더 깊은 공감과 이해.
보면서 한 켠이 아팠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