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곰리전
안토니 곰리
~ 11. 30. 뮤지엄 산
뮤지엄 산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과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동시에 자연이라는 완벽한 공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솔문화재단에서 건립한 곳으로 종이 박물관, 개인 컬렉션에서 시작된 미술관으로 이루어진 종합 뮤지엄이다.
산과 자연의 아늑함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그대로 어울리는 건축물들이 있고, 그 사이사이 의외로 많은 수의 조각작품들이 자연 속에서 같이 어우러져 볼 수 있는 곳이다.
안토니 곰리; Drawing on Space
뮤지엄 산 미술관에서는 현재 안토니 곰리의 전시를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드로잉의 선으로 인체를, 공간을 표현한다.
“작품들은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오브제가 아니라 작품을 담고 있는 공간의 건축, 관객의 몸과 반응하며 감각적 경험을 생성하는 ‘촉매’로서 역할한다”는 곰리의 설명은 전시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었다.
대략 190cm의 크기들로 기포의 형태로 전환된 인체의 형상은 고정된 자세로 보게 되는 드로잉회화와는 다르게 작품을 둘러보며 좀 더 자유롭게 다양한 형태를 느낄 수 있었다.
가볍고 둥글게 모두 연결되어 보이는 선 들은 그 사이사이의 공간과 함께 보이며, 나도 그 공간 안에 같이 연결된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곰리의 단색조의 회화들도 그렇고 나선형의 선으로 가득 채워 관람자를 그 공간에 참여시키는 조각도 그랬고, -진지하게 깊이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가벼운 명상의 시간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각과 마주 선 나 사이로 공기가 흐르고 그 순환된 흐름이 공간을 채우고… 그랬다.
Ground
안도 타다오와 안토니 곰리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소수의 사람들이 입장하고 말없이 공간을 느껴달라는 주의만큼 완벽한 공간이었다. 시간별로 제한된 인원수만 들어갈 수 있어 그 시간 동안은 온전히 그 공간을 누릴 수 있다.
‘Ground’는 전시 공간이며, 작품이고 둘러싼 자연도 하나의 작품으로 포괄한다.
둥근 천장의 작은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반원의 입구에선 바깥공기와 바람, 새소리가 들려오는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녹슨 철 조각 좋아한다.
철은 금방 녹이 슨다. 녹이 슬어 붉은 갈색의 매끄럽지 않은 옷을 입은 철은 처음 대했을 때의 차가운 느낌이 아니라, 마치 흙과 나무가 된 듯 그렇게 약간의 따스함을 입니다. 그래도 철인지라 나무와는 다른 시크함을 품어 녹슨 철 좋아한다.
그 철 조각이 웅크려 앉아서, 누워서, 어정쩡이 서서 말을 건다. 하늘과 산만이 보이고 포근하게 감싸는 반원 공간 안에서 ‘나’에게 말 걸어 보라고, 웅크리고 눕고 어정쩡이 서 있는 나에게만 집중해 보라 한다.
제임스 터렐관
제임스 터렐관은 네 가지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익숙한 듯 낯 선 공간에서 오롯이 나의 감각만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공간이었다.
‘바라본다’는 시각적 감각이 얼마나 속이기 쉬운 감각이며 동시에 내 몸과 행동을 지배할 수 있는 지도 느낄 수 있었다.
어른이 되곤 너무 많은 걸, 여러 가지 들을 ‘봐’ 버려서 새로운 공간이나 체험에 대한 호기심, 두려움에 살짝 무덤덤한데, 낯 선 공간에서 촉각, 청각, 시각 여러 감각으로 느끼는 체험은 신기하고 조심스러움이 많았던 어릴 때의 모습으로 살짝 돌아간 듯했다. 그런 여러 감각들로 느끼면서 나를 더 열고 온몸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었다.
본관에서 돌의 정원 쪽으로 나와 처음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조지 시걸의 등을 어슷이 맞대고 대화 중인 남녀이다. 빈 벤치였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앉았을 듯한 자세로 자연스레 본관 건물과 9개의 돌무덤이 눈에 들어오는 조각 정원을 연결해 준다.
돌무덤들은 안도 타다오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의 각 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 신라 고분을 형상화한 돌무덤 주위로 곡선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다른 조각작품들도 같이 감상할 수 있다.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오면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가느다란 틈새로 내려오는 자연의 빛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명상 공간 ‘The Space of Light’도 있다.
언제나 청춘을 꿈꾸는 안도 타다오의 풋사과 조각도 있고, 회화로만 만났던 르누아르의 조각까지 은근 정말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뮤지엄 산이 좋았던 건 멋진 건축을 보고, 작품을 보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그래서 만은 아니었다.
그 곳에 그 공간, 그 장소에서 호흡하며 ‘바라보는 나’가 아닌 ‘같이 있는 나’,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