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에서 초기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by 얕은

인상주의에서 초기모더니즘까지- 로버트 리먼 컬렉션

~ 2026. 3. 15. 국립중앙박물관



미국 금융가 로버트 리먼이 수집한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에서 20세기 초 모더니즘에 이르는 프랑스 회화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19세기 후반 일상의 풍경을 밝은 색채와 특유의 붓놀림으로 그린 독창적인 화풍들은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모더니즘의 문을 열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가운데 회화와 드로잉 81점이 전시되어 있다.




마치 19세기 공연장 같은 붉은 실내와 커튼이 드리워진 입구 정면에 작은 그림이 있다.

<레이스를 뜨는 여인>. 페르메이르 작품을 모사. 살바도르 달리.

약간의 당황(사실 많이 당황). 전시에서 처음 맞이한 작품이 모사작이고 심지어 달리가…

옆 벽면에 살바도르 달리에게 이 작품을 의뢰하는 리먼의 편지가 빼곡히 쓰여 있다. 리먼은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수집하지 못했고 아쉬움에 마침 달리가 페르메이르 작품의 복제품이 걸린 집에서 자란 것을 알고 리먼 컬렉션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의뢰하였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당황스러운 조합. 붉은 커튼과 더불어 당황스러우면서도 그만큼 큰 흥미를 갖고 전시장 안에 들어서게 된다.




처음 맞이하게 되는 그림은 편안히 기대앉고 누워있는 마티스와 발라동의 누드화이다.

쉬잔 발라동의 <누워있는 누드>.

쉬잔 발라동은 프랑스국립예술협회가 정회원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여성화가이다. 발라동은 르누아르, 로트렉, 드가의 모델이었으며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은 없으나 로트렉을 만나고 정식화가가 되었다.

발라동의 그림에선 당당함과 힘이 느껴진다.

풍부한 색감과 거침없이 그리면서 동시에 사실적인 인물묘사, 그리고 종종 보이는 인물의 확고한 검은 윤곽선. <누워있는 누드>는 그의 특징이 다 도드러보이면서 톤 낮은 녹색의 소파와 푸른 눈, 왠지 어울리는 듯 아닌 듯 어색한 밝은 브라운의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발라동이 동시대의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나 메리 카사트와도 다른 점은 아마 삶의 경험치가 달라서였을 것이다. 상류 중산층이 아닌 노동 계급의 지위가, 화가들의 모델로서의 경험과 교류가 그의 그림의 주제들에서 그 만의 색을 내었을 것이다.

마티스를 무척 좋아하는데 마티스와 발라동의 두 누드화 앞에선 그렇게 발라동의 그림만 바라보았다. 그 당당한 푸른 눈빛이 자꾸 눈길을 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 중 두 작품을 꼽으면 그중 하나가 이 작품 메리 카사트의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이다.

그냥 마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 행복한 그림. 발그레하고 통통한 볼의 소녀가 재밌게 뛰어놀다 잠시 멈춰 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느낌의 이 그림은 소녀의 붉은 원피스, 대조되는 초록빛 배경과 톤을 맞춘 짙은 초록의 모자,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 부분이 한 군데도 없는 그런 그림이다.

메리 카사트는 상류층 집안이었고 그래서 그녀 또한 취미가 아닌 자신의 일로써 화가의 길을 선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메리 카사트는 보여지는 여성이 아니라 그냥 생활하는 여성을 그렸다.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하는 살아가는 여성. 그 모습을 너무나 예쁜 색감으로 담아 그렇게 행복하면서도 가끔 한 켠은 찡한 그림을 그렸다.




좋았던 또 다른 작품이 카미유 피사로의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 대로>이다.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아침 거리, 곳곳에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모습은 그대로 차가우면서 곧 메워지고 바빠질 거리의 잠시 간의 고요함이 느껴진다.

피사로는 낮, 밤, 계절, 기후 변화에 따른 몽마르트 대로를 연작으로 그렸다.

피사로의 풍경화는 특유의 따뜻함이 있다. 바라보는 그대로의 자연이나 거리에 피사로의 따뜻함이 한 스푼, 과하지 않게 딱 그만큼만 더해진 그 색감.

이 작품에서도 차가운 입김이 느껴지지만, 그 안에 살짝 숨겨진 그의 색감이 그리 차갑지만은 않게 차분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에두아르 뷔야르의 <점심 식사>.

작은 사이즈에 가로로 긴 독특한 구성의 작품으로 식탁에 앉은 어머니를 그렸다.

뷔야르는 재봉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섬세하고 보호한 여성의 심리에 관심을 갖고 실내에서의 여성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실내의 모습이지만 다양한 벽지와 옷의 무늬와 색감, 그 안에서의 여러 일을 하는 여성의 모습은 적극적이며 경쾌하고 밝은 생활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약간 비스듬히 놓인 그릇들, 몸의 2/3 가량 듬뿍 햇살을 받고 있는 어머니, 풍성한 화병, 그 모든 것들이 그만큼 따스하고 평안한 한 때를 느끼게 해 주며 동시에 가로로 긴 독특한 구도로 경쾌함도 주어 좋았다.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 귀스타브 모로의 <살로메>, 드가의 풍경화, 쇠라의 <그랑자르트 섬의 일요일 오후> 습작, 전시장 입구 르누아르의 <해변의 사람들>, 그리고 전시 초반 시선을 사로잡는 피에르 오귀스트 코의 <봄>등 정말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초반 드로잉 작품들도 많고 어찌 보면 전시 구성은 좀 산만하지만, 그래도 놓치면 아쉬운 그런 전시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