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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by 김원호

가족이란 무엇일까. 피를 나눈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관계일까? 아니면 그저 익숙함에 기대어 서로를 다치게 하기도 쉬운, 너무 가까워서 더 아픈 관계일까.

요즘 우리 집은 중학교 2학년 딸아이와 엄마의 다툼으로 하루하루가 조용할 날이 없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부딪히고, 그 끝은 언제나 상처뿐이다. 엄마는 늘 아이가 너무 제멋대로라며 걱정하고, 딸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도 달라서 오히려 아픔이 되고 만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사춘기니까 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아져.”
하지만 그 말을 믿고 가만히 기다리기엔 내 마음이 너무 무겁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감정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시간’은 상처를 지우는 약이 아니라, 더 깊이 새기는 칼날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가족이란 서로를 감싸주는 울타리여야 하는데, 왜 이렇게 쉽게 서로를 찌르고, 상처를 남길까. 어쩌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너무 쉽게 서로를 판단하고, 기대하고, 실망하는지도 모른다. 타인에게는 하지 않을 말도 가족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그 말들이 날카롭게 꽂힌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말이다.

딸은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반항처럼 보이는 말과 행동도, 그 속엔 자기를 지키려는 간절한 몸부림이 숨어 있을 것이다. 엄마는 그 과정을 사랑으로 도우려 하지만, 방식이 서툴러 서로의 마음에 멍이 든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언젠가 둘이 이 시간을 돌아보며 서로를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이 관계의 다리 위에서 둘의 마음을 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툰 사랑이더라도, 진심은 결국 통하리라고.

가족이란, 어쩌면 그런 존재 아닐까. 서로에게 상처를 줄 만큼 가까운 만큼, 누구보다 깊은 이해와 용서를 배워가는 사람들. 완벽하진 않아도, 그래도 결국 서로를 붙잡고 있는 마지막 이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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