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한 가지 더 바뀐 게 있다면, 내 잘못이나 타인의 잘못으로 인해, 또는 상황에 의해 멀어진 지인 3명에게 먼저 연락해 인연을 이어간 것이다.
첫 번째 인연은 가장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친구 C이다. 내가 만난 학창 시절 친구 중 가장 코드가 잘 맞았으며 공부도 잘해 성적 면에서 목표가 되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반도 나뉘고 대학도 지역이 멀어져 결국엔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인연의 끝인가 보지 뭐.’하고 연락처나 소식을 알아볼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알게 되어 연락을 했고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다.
두 번째 인연 또한 학창 시절 친구이다. 이 친구와는 졸업 후에도 꽤 오랜 기간 연락을 주고받았다. 내가 첫 직장에서 퇴사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이 친구는 혼자 타 지역에서 자취하며 공부 중이었다. 그런데 외로웠는지 나와 함께 지내자고 했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룸메 생활도 했고, 그 이후로 텀이 있었으나 연락을 계속 주고받았다. 각자 사는 지역이 멀어져 직접 만난 지는 꽤 오래됐지만, 그래도 알고 지내던 시간이 길어 그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쉬던 중 시간이나 금액 모두 여유가 있어 만나려고 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나는 친구와 만나기 위해 몇 달 동안 꾸준하게 먼저 연락을 했고, 안전하게 백신을 맞고 만나자는 말에 동의하여 오랜 기간 기다렸다. 하지만 보자는 말이 없어 내가 만날 수 있는 날짜를 먼저 제시했으나 이마저도 무시당했다. 나는 대놓고 이유를 묻기보단 체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간접적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뭐. 연락은 해도 직접 만나는 것 까진 싫은가 보지. 얘 상황도 좋지 않을 텐데 굳이 만나지 말자.'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직접 만난다는 말에, 이 친구와 인연을 더 이어가는 것에 굳이 노력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이 이후 연락을 일절 하지 않았다. 웃기게도 친구 또한 연락을 하지 않아 손절 아닌 손절 상태가 되고 말았다. 나도 새 직장에 들어가고 적응하기 바빠 친구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하루 정도 고민하다가 다음날 바로 연락을 했다. 할 이야기가 많을 듯해 전화로 그동안의 이야기를 했고, 일정이 있다는 친구의 말에 다음을 기약하며 통화를 마쳤다. 하지만 또 다시 연락은 오지 않았고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몇 개월 뒤 삶이 한가해졌을 때 소식이 궁금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마 이 친구와는 이런 상태가 꽤 오래 갈 듯싶다.
세 번째 인연은 글 초반에 나왔던 A씨이다. A씨는 20대 초 첫 직장에서 만났지만 사람 자체가 좋아 연락을 꾸준히 주고받은 사람이었다. 각자의 삶을 살아오다가 우연한 계기로 같은 직장에서 일을 했고, 퇴사 후에도 연락을 자주 했었다. 그러나 전화나 만남에서 계속 들려온 회사의 소식에 계속 지쳐갔다.
'회사 이야기 듣는 거 정말 지치는데. 듣기 힘들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런데 A씨와 가장 친한 사람도 이야기 들어주기 힘들다고 얘기했다는데, 나까지 들어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가 몸 상태까지 좋지 않아버리자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A씨가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을 때, 또 회사 이야기를 듣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연락처를 차단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처사. 나는 마지막까지도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괜찮아지면, 견딜 수 있게 됐을 때 다시 연락을 하자.'
하지만 인연을 완전히 끊을 생각은 전혀 없어,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태까지 내가 해온 선택 외에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이 생각 그대로 지내왔다.
새 직장에 적응하고 문득 A씨가 떠올랐지만, 아직은 연락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계속 외면했다. 그러나 괜찮을 리가 없었다. A씨가 한 생각이나 행동들을 잘 소화하여 활용하는 나를 보며 그가 생각났고, 타인의 행동에서 과거의 내가 보이자 A씨가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했고, A씨가 나오는 꿈도 종종 꾸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와 인연을 끊은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또는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에 지인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힘들어한다고 말했을 때 인연을 끊어버리라고 말했다.
그동안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텀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어떤 상황이나 관계가 힘들어질 때 잠깐 벗어나는 좋은 방법도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상황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상황을 잠깐 멈추게 하는 법을 말이다. 그리고 글을 써야겠다 다짐한 후로 전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A씨 생각이 감당할 수 없이 많이 났다.
'지금이 연락할 때구나’
이전에 생각했던 '내가 괜찮아지면.‘같은 게 조건이 아니었다. 인연을 다시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확실하게 생길 때가 타이밍이었다. 아무튼 다시 도망치려는 하는 마음을 붙잡고 A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직접 만나 내 행동에 대해 사과를 했다. 이후 지금 회사의 이야기와 이전과 달라진 나의 행동에 대해 말을 하니, A씨가 이렇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전 회사에서 버텼던 거야?"
그땐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너무 둔했다고, 그렇지만 지금은 A씨 덕에 알아차리는 게 빨라졌다고 얘기했다. 이 이후 인연을 끊어버리라고 조언했던 지인들에게도 내가 말을 잘못했었다고 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생기면. 연락을 끊으라고 말을 한 게 잘못된 거다 싶더라고. 상황을 해결하기보단, 연을 끊으므로써 내 마음만 편하게 되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내 성격이나 행동이 개선된 게 그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건데, 그런 사람들이 포기했으면 나는 전혀 바뀌지 않았을 텐데, 그런 이들의 마음을 무시한 셈이니까. 그래서 앞으로 그런 상황에 온 사람들한테 말도 다르게 하고 내 생각도 더 바꿔나가 보려고!”
이젠 '이게 불편한데.'라는 게 보이면 마냥 참지 않고 "우리 이렇게 해보자"라고 한다. A가 한 말 중에 가장 좋아했던 "그럼 이렇게 얘기해 보자."를 내 식으로 변형한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중 특히 좋아는 건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내 삶에 스며든 사람들이 다시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펼칠지가 궁금해 가끔 그들의 안부를 물어본다.
이전에는 내가 먼저 연락을 한 적이 몇 번이고,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인지 등에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내 삶이 안정되어 타인과의 소통을 즐길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럴 마음의 여유나 상황이 되지 않아 연락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여유가 있는 사람이 먼저 나서는 게 서로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그냥 내가 연락하고 싶으면 한다. 이게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하고, 먼저 연락을 잘 하지 못하는 친구라고 하면 이해하고 거리낌 없이 말을 건다. 나는 이제 내 감정들을 좀 더 빠르게 캐치할 수 있고, 힘든 상황이 생기면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 그들이 생각 날 때 묻는다.
"잘 지내고 있어?"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들어주고, 아니면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하고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