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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2)

인/의/예/지/신 유교의 오행으로 완성된 한양도심 ~

by JINOC


1편에서 숭례문에 연결된 4대문의 이름유래를 알아봤고 <인의예지신>에서 <신>은 보신각 종에 붙였다고 했는데, 좀 이상하지 않아? 4대문의 중심은 경복궁이었는데 중심이 되려면 경복궁 궐 내에 <신>이라는 글자로 뭔가 상징을 해야 하지만 , 되려 종각에 있는 보신각쪽에 <신>이라는 글자를 붙였을까?이건 왕권과 백성의 관계와도 관계가 있는데, 궁궐은 왕이 머무르는 공간이기에 <인의예지>가 강조되었고, <신>은 왕의 권위보다는 왕과신하 또는 대중과의 신뢰를 의미하는 개념이었지.


해서 원래 <신>이라는 글자는 현재의 (창의문:아래사진)이 <신>의 위치로 설계되었다고 하는 해석이 있어. 창의문이 임금과 신하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자하문쪽이 <신>의 위치였다는 말도 있고,다른 의미로는 <신>은 공간적 배치보다는 개념적 사고로 작용해서 일부러 배치하지 않았다고 하기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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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는 것은 두루 모든 방면에 깔려있는 배경음악과 같은 것이고, 나머지 인의예지는 상징적으로 방향을 배치한거지..물론 이에 대한 상징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하여 사소문 (사대문과 다른 또다른 기능의 4개의 문) 중 창의문에 그 <신>의 의미를 부여했다는 설도 많은데 명칭이나 그 유래에서 실제 <신>과 연관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기록적으로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 이후에 조선후대에 나라의 국운이 지속적으로 쇠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조선왕조에서 <신>의 위치를 잡고 이를 통해 나라의 정신적 사상 "유교"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로 현재의 종루를(보신각)이라고 명명하면서 그제서야 <인의예지신>이 완성된거야.



그렇다면 왜 종루에 <신>을 붙이게 되었을까? 종루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하는 건축물인데, 시간이라 함은 서로의 약속이라는 기반이었고,자연의 일정한 시간처럼 서로에게도 항상스러운

<신뢰>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인해 종루를 보<신>각 으로 명명하게 된거지.

국보 1호 숭례문은 시리즈는 여기서 마치고^^ 국보 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에 대해 다음편에 계속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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