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한 장면에서 시작된 불안
2025년 7월 5일, 일본 열도에 지진은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고 넓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이라는 흔들림이 있었다.
이날은 오랫동안 일부 예언 신봉자들 사이에서 ‘대재앙의 날’로 불려 왔다.
그 근거는 놀랍게도 과학 보고서나 지진 예보가 아니라, 1999년 출간된 한 일본 만화였다.
만화가 다쓰키 료의 『내가 본 미래(私が見た未来)』에는 "2025년 7월 5일 일본에서 대재난이 발생한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예언은 2020년대 들어 다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부활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암시한 듯한 과거 예언과 겹쳐지면서, 이 날짜는 인터넷과 유튜브, SNS에서 반복적으로 회자되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실제로 오늘 일본에서 재난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목격했다.
예언이 ‘사실’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사건의 여파는 가볍지 않았다.
일본 관광청과 항공사, 호텔 업계에 따르면 2025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일본행 여행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다. 대만, 홍콩, 한국 등 동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여행을 취소하거나 미루는 사례가 폭증했다.
일부 항공사는 수익 악화를 우려해 노선 감편을 결정했고, 도쿄·오사카 도심의 고급 호텔조차 30~50%의 객실 공실을 겪었다.
특이한 점은, 이런 변화가 실질적인 지진 경보나 과학적 분석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정보는 유튜브 영상, 커뮤니티 글, 자극적인 블로그 콘텐츠 등에서 확산됐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혹시 몰라서” , “진짜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들이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지배했다.
불안을 자극하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더욱이 우리가 살아가는 정보 생태계는, 이런 감정적 메시지에 취약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지진", "예언", "7월 5일"과 같은 키워드를 묶어, 사용자에게 더 많은 유사 콘텐츠를 보여준다.
SNS는 불안을 공유하는 이들을 연결하고, 검색포털은 클릭률 높은 글을 상단에 노출한다.
결국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불안을 공유하는 세계’ 속에 들어간다.
사실 확인은 점점 어려워지고,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런 구조에서는 예언이 틀렸는지 여부보다, 그 예언이 확산되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사회적 변수가 된다.
일본 기상청과 지진 전문가들은 수차례 공식 발표를 통해
“지진은 날짜 단위로 예측할 수 없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지방 정부도 관광 위축을 우려하며, 허위 정보에 휘둘리지 말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 느렸고, 너무 조용했다.
사람들은 이미 유튜브 썸네일 속 자극적인 문장에 노출된 뒤였고,
그 감정적 경험은 논리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됐다.
공포는 논리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더 넓게 퍼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의 영향 아래, 실제 행동을 바꾼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신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정확한 사실보다도, ‘많은 사람이 믿고 있다는 분위기’가 더 큰 영향을 끼친 사례다.
우리는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공유되는 감정에 더 쉽게 반응한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구조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플랫폼은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상위에 배치하며,
더 많은 ‘불안 콘텐츠’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든다.
그 결과, 예언은 단순한 이야기에서 ‘경제적 파장’을 일으키는 힘으로 성장한다.
이제 개인은 단순한 정보 수신자가 아니다.
우리는 정보를 걸러내고, 판단하며, 비판적으로 소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예언을 믿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예언에 흔들리는 나 자신의 심리 상태를 인식하고, 감정에 대한 자각과 통제력을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2025년 7월 5일 일본은 조용했다.
그러나 오늘, 인터넷 속에서는 수천만 명이 조용히 불안해했고,
현실에서는 수많은 소비 결정이 바뀌었으며, 기업은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예언은 틀렸지만, 그 불안을 소비하고 유통한 우리 모두가 현실을 바꾸었다.
진짜 재앙은 지진이 아니라, 사실보다 불안을 먼저 믿는 우리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또 다른 예언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예언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