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음악에 대하여 모든 것의 시작이다.
베토벤, 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의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그의 음악은 매우 강인하며, 대담하며, 모든 것을 아울러 이루는, 마치 그런 것과 같이 들린다.
그의 전기 곡들은 고전주의 시대의 형식을 엄격히 따랐다. 물론 그 속에 들어있는 그의 음악은 그 무엇보다도 견고한 창이니, 모두가 그 창을 지향할 것이다.
중기 곡들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별에 별 난항을 많이 겪으신 그인지라, 자신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매우 심오하고, 자기 성찰, 자기반성적이다. 실제로 베토벤의 이런 음악 때문에 클래식 공연장이 지금처럼 조용하게 연주를 듣는 문화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전까진 마치 배경음악 같은, 그런 것이 클래식 음악의 연주 형태였다.
매우 개인적인 음악, 이것은 곧 자신을 초월하게 된다. 그의 후기 음악은 종교적인 힘으로 자신의 난항,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는 음악이 보인다. 뭔가 신성하면서, 아픔이 느껴지는. 마치 교회에 나올 것 같은 음악이다.
흔히 베토벤이 없었다면 낭만주의 시대가 없었다고 얘기한다. 바흐가 없었다면 고전주의 시대가 없었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베토벤이 없었다면 낭만주의 시대가 없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쇼팽, 리스트, 슈베르트 등등 여러 작곡가들의 음악이 베토벤이 없었다면 완전히 딴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하면 마치 역사 사건의 명칭을 들이대듯이 말하는 한 단어가 있다. 하모베,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줄임말이다. 세 명 중 가장 늦게 태어난 베토벤, 그는 뭔가 달랐다. 하이든처럼 엄청난 수의 교향곡을 쓰거나, 모차르트처럼 대량의 곡을 즉흥적으로 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 달랐다.
그는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어떤 곡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수정을 했다고 한다. 수정한 것을 또 수정, 그것을 또 수정, 그걸 또 수정... 실제로 그의 작품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이기도 한다.
이것의 영향이기라도 한 걸까, 작곡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의 치밀함과 엄격함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작곡가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완전히 딱 떨어지는 그런 음악을 손쉽게 느낄 수 있다.
베토벤이 없었다면 낭만주의 시대가 없었다, 이 말은 꽤나 강렬하다. 실제로 과장 없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누군가 베토벤을 욕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보자.
"베토벤이 없었다면..."
실제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하면 마치 엄청나게 놀라운 것을 보아 경외심을 느끼듯 갑자기 멈칫한다. ―물론 음악을 하는 사람이 감히 베토벤을 욕하진 않겠지만―
베토벤은 새로운 시도를 한 사람이다. 하이든, 모차르트는 하지 않았던 엄청난 시도 말이다. 그는 그전까지는 쓰지 않던 화성을 썼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준 것이다.
뭔가 말로만 이렇게 하니 위대한 것처럼 보이지 않기는 하다만 이것 때문에 우리가 아는 낭만주의 시대의 곡들이 탄생한 것이다.
만약 체감이 잘 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은 어떠한가?
베토벤이 없었다면 낭만주의 시대가 없었다,
베토벤이 없었다면 인상주의 음악이 없었다,
베토벤이 없었다면 현대 음악이 없었다,
베토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음악이 없었다!
이것이 루트비히가 굴린 스노우볼이다! 그러니 다 같이 지금 이 순간만큼이라도 그의 길을 돌아보며 루트비히에게 감사를 표하도록 하자.
"고통에 가득 찼던 삶, 그러나 얼마나 아름다웠는가"
Symphony No. 9 in D Minor, Op. 125 "Choral": III. Adagio molto e cantabile 읊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