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할 일이 생기고, 매번 시간이 없다.
대학생 때는 하루가 딱 25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ㅡ 그렇다고 '내 몸이 열 개였으면'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해야 할 몫이니까.
과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끝나면 또 새로운 과제를 스스로 만들었다.
조금만 쉴 틈이 보이면 요가든 취미든 뭐라도 끼워 넣었고,
‘나만의 루틴’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었던 적도 있다.
ㅡ 물론 그 루틴은 한 번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적 없고, 늘 나의 죄책감 제조기였지만.
그렇게 매번 바쁘게 살다 보니 생긴 부작용 하나.
“내가 뭐 하는 사람이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
처음 배우를 시작했을 땐 열정으로 불탔다.
매일이 최선에 가까운 에너지였고, 그만큼 기대와 실망도 함께 커졌다.
이렇게 해선 오래 못할 짓이다 싶어서 길고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배우라는 일을 중심에 두면서
그 겉에 아르바이트, 취미, 연애, 운동 같은 활동들을 덕지덕지 붙였다.
그렇게 에너지를 여러 군데 분산시키다 보면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집착이 줄어들 것 같아서.
그러나 어느새 배우라는 카테고리는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고,
정신 차려보면 “저… 배우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에요”라는 말도 못 할 것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최근 한 유튜버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지루함과 친해지세요.”
우리는 ‘무(無)’와 친하지 않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아무 소리, 아무 자극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본 적은 또 얼마나 될까?
나는 지루함이 싫었다.
그건 내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었으니까.
내 모습, 내 불안, 내 부족함을 돌아보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뭐라도 붙여서 나를 크게 보이게 만들고,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라는 착각을 유지해 왔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험을 했다.
내가 싫어하는 추적추적 비 오는 날, 일부러 자주 가지 않는 카페를 찾았다.
평소 같으면 앉자마자 노트북, 연기노트, 스케줄러를 꺼냈겠지만
오늘은 그냥 10분 동안
- ‘아무것도 안 하기’.
커피만 홀짝이며 타이머 10분을 맞췄다.
(솔직히 5분으로 할 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처음엔 괴로웠다. 하지만 1분쯤 지나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카페 안에 퍼진 원두향이 우드 인테리어랑 어우러지며 공간이 달리 보였다.
앞에 있던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식당 플라스틱 물컵 두 개 붙여놓은 것 같은데? 용접하면 가능하나?’
용접도 못하면서 혼자 웃음이 났다.
시야를 조금 옮겨 이번엔 카페 사장님이 보였다.
사장님은 낮은 테이블에 상체를 불편하게 기대고 휴대폰을 보고 계셨다.
'앉아 계시지..'
그러더니 갑자기 테이블 밑으로 쏙 들어가 눈만 내놓고 이번엔 더 불편하게 쪼그려 앉으셨다.
'저렇게까지..? 의자 둘 공간이 없으신가..' 싶던 순간,
손님 한분이 들어오셨고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환하게 맞으셨다.
아, 오픈형 키친 카페라 그러셨던 거구나.
그제야 사장님의 ‘불편한 자세’가 이해됐다.
ㅡ 작은 카페의 프로페셔널리즘.
처음엔 내 테이블만 보였다.
그러다 앞의 화분, 옆의 카페 사장님, 손님들, 그리고 카페 전체로 시야가 확장됐다.
10분이 빠르게 흐르진 않았지만,
분명히 뭔가 새로운 걸 경험한 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나였지만 보이는 것이 달랐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해본 작은 ‘지루함과의 마주침’이
생각보다 나를 두렵고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루함'이라는 것은
평소에 나에게 가까워질 틈도 없던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즐거운 낯섦'은 아닐까.
앞으로 공간이 바뀔 때마다 급하지 않다면
하루에 5분에서 10분 , 지루함 타이머를 켜두려 한다.
나를 더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니까.